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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 Sep 18. 2023

03_맘고생 강제 다이어트

권하기는 힘들지만, 효과는 만점

 갑자기 크게 살이 빠지면, 몸이 힘들거나 마음이 힘든 거라던데... 내 경험으로 몸이 힘들어서 빠지는 살은 몇 킬로그램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몸이 힘들다고, 조금만 더 먹어도 금방 요요가 와서 다시 원상복구 되어버리기도 하고. 



 나의 경우, 신혼 때 자궁 수술을 하게 되면서 살이 좀 붙기 시작했다. 연애시절 마음이 편해지며 조금 살이 붙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통통해진 것은 수술 후 뱃살이 찌기 시작하면서부터였는데 이때 처음으로 일명 '똥배'라는 것을 느껴보았다. 그리고, 몇 년의 회사 근무 후 첫째를 임신하면서 살이 찌기 시작했는데 입덧이 심해서 초기에는 엄청 빠지더니 막상 입덧이 끝나고 당기는 대로 먹다 보니 정말 많이 살이 쪘다. 첫 아이는 4킬로가 넘는 우량아였는데 아이를 출산하고 나서 빠진 내 몸무게는 3킬로에 불과했다. 엄청난 부종으로 퇴원할 때에는 신발이 맞지를 않아서 내 평소 신발 사이즈보다 3센티나 더 큰 신발을 사서 신고 퇴원 했을 정도였다. 그러고 나서 회사를 퇴사하고 (당시만 해도 대기업에도 육아휴직이란 단어가 생소하리만치 사용하기 힘들었다.) 본격적인 육아를 시작하며 힘에 부치지만, 살은 빠지지 않았고 아이가 첫 돌을 맞이하며 조금 잠을 잘만 해지는 거 같길래 운동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보름 만에 둘째가 찾아왔다. 나는 전혀 (어쩜 오히려 만삭보다 늘어난 몸상태에서) 빠지지 않은 몸무게에서 둘째를 임신하고, 출산했고 처음에 얘기했듯이 투잡, 쓰리잡을 하며 나를 돌볼 겨를이 없다는 자기 위로로 매번 다이어트를 시작하면 정말 작심삼일이 되곤 했다. 수없이 많이 다이어트를 시작했으나 결혼 전처럼 2-3시간씩 매일 운동하던 사람이 운동을 쉬니 정말 쉽게 빠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많이 먹으면 억울하지도 않았을 텐데 나는 라면 하나를 겨우 먹어내는 양에, 밥을 말아먹는 건 상상하기 힘든 양을 갖은 타입이니 사실 살이 안 빠지는 건 좀 억울한 면이 많았다. (물만 먹어도 찌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먹는 만큼 찌는 게 아니었음은 온 가족이 인정)


 아무튼 이 와중에도 지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그만큼 안 먹어도 안 빠지던 살이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고부터 2-3개월 사이에 20킬로그램이 빠져버렸다. 의도치 않게 다이어트는 성공적. 

맘고생  다이어트를 당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사람이 기운이 없다. 걷다가 쓰러져서 상처가 났는데 한 달이 넘도록 낫지를 않을 만큼 먹을걸 먹지 못했다. 정신과에서 항우울제와 항불안증제제와 식욕촉진제를 처방해 주고, 주위에서 늘 먹기를 강요하고, 먹이려고 노력해도 먹을 수가 없었다.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정말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밥을 2-3일에 한번 정도 먹을 수 있는데 그마저도 몇 수저가 다였다. 사실 외도사실을 알자마자 못 먹은 것은 아니었다. 이미 짐작? 여자의 촉? 그런 것들이 있으면서 시간을 보냈었기에 울고불고하던 시절부터 잘 먹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그때에는 그래도 뭔가 먹긴 해서 그저 3-5킬로 빠졌을 뿐이었는데 알자마자 그냥 자고 일어나면 막 쭉쭉 빠지기 시작했다. 

외도의 흔히 말하는 [빼박증거]를 알게 된 것은 아침이었는데, 정말 아침부터 그날 저녁까지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한 기분이었고, 그로부터도 대략 2주간은 아무것도 현실감이 없고, 꿈속을 사는 기분이었다. 내게 일어난 일에 대해 인지하지도, 믿어지지도, 어떤 걸 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주위에 이런 일을 겪었던 지인들을 2-3명 본 경험은 있었으나, 나는 한결같이 '알면 같이 못살지'라는 원칙을 갖은 사람이었고, 배신을 참고 살 이유가 뭐가 있나를 확신하는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그 빼박증거를 받아 든 날 오후에 나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남편에게 너의 죄를 사하노라를 외쳐버릴 만큼 이성적 판단을 하지 못했다. 현재는 그날로부터 백일즈음 지나고 있다. 현재는 그의 죄를 사한 것은 취소이다. 2주쯤 지나니 내가 당한 일에 대해 실감이 나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한숨도 못 자고, 울거나 멍하니 넋을 놓으며 정신과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외도]라는 것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용서라는 것은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고, 한 올의 티끌만큼도 의심이 없고, 확실해야만 가능한 것인데 외도라는 것은 한번 겪으면 그런 확신은 평생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용서라는 표현보다는 덮고 산다... 혹은 그냥 산다라는 말이 맞다. 

 

 그럼 현재의 나는 덮은 것인가? 아닌가? 궁금할 것이다. 그것은 차차 이야기할 부분이다. 

아직은 빼박 증거를 알던 그날의 아침과 다를 바 없이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나의 내일에는 무슨 일이 생길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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