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쓸 때 누워서 쓰는 경우가 많아요. 컨디션이 메롱이어서, 잠깐 눈붙이고 싶은데 이상하게 잠은 안 오고, 생각들은 들어차 있는 날들이 꽤 있거든요.
그럴 때면 나는, 에세이든, 시든, 소설이든. 어떨 땐 컴퓨터를 켜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일마저 귀찮아서, 휴대폰을 켜곤 노트 바탕에 쓱쓱 떠오르는 생각들을 담아 한 번에 쭉 정리해 적어버려요.
사실 처음부터 작정하고 열심히 글을 쓴 건 아니었어요, 뭐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공허해서. 그 느낌이 끔찍해서, 어떻게든 그걸 덜어보려고. 그저 생각나는 대로 아무렇게나 글을 적으면서 그날그날의 머릿속에 꽉 들어앉아 나를 괴롭히는 생각들과 감정들을 배출해냈어요. 테스트해보니까, 그걸 '승화'라고 하더군요. 승화라는 건 고등학생 때 많이 이름 들어본 한용운 시인이나, 백석 시인같이 대단한 시인만 하는 건 줄 알았는데, 글을 끼적이면서 감정을 배출하는 이 모든 행위가 자연스럽게 승화가 되는 건지 몰랐어요.
글을 쓸 때는, 숨이 쉬어지는 느낌이었어요. 갑갑한 상황. 벗어나고 싶은 충동. 그다지 좋지 않은 생각들. 그런 것들을 모두 녹여내 적었고, 하루에도 몇 번씩 글을 쓰다 보니까 이제는 바빠도 며칠에 한 번이라도 글을 안 쓰면 손이 근질근질하더라구요. 나는 어쩌다 보니 글이 좋아져서, 그래서 계속하게 된 건데, 사람들이 그걸 보고 '꾸준함'이라 해줬어요. 기분이 좋더라구요.
글이 너무 넘쳐나니까, 어디 한군데에 이걸 정리해서 좀 더 편하게 보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했는데, 마침 어느 출판사에서 개인 책 낼 작가모집을 하고 있는 거예요. 아무것도 몰랐지만, 이상하게 숲에서 날아오르는 듯한 고래 모양의 로고와 포레스트 웨일이라는 이름이 참 좋았어요. 정신을 차려보니까, 내가 그곳 단톡방에 들어가서 여러 이야기들을 하고 있고, 정리되지 않은 부분들을 쭉 적어 목차를 만들어 냈더라구요. 계약서를 받아 들고 싸인을 할 때쯤엔, 제가 책을 냈다는 게 사실 좀 안 믿어졌어요. 나 같은 사람도 책을 낼 수 있구나, 싶었는데. 여기저기에서 축하를 해주더라구요. 그 때 쯤에야 깨달았어요, 나는 글과 떼어놓을 수 없는 삶을 살겠구나, 하고. 사실 책을 내기 전까지만 해도 글은 그냥 취미로 쓸 예정이었어요. 반대도 심했고, 네가 무슨 글이냐, 배고파 굶어 죽을래, 너는 현실성이 없다, 한국에서 작가로 이름나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 같은 이야기들도 수두룩하게 많이 들었고. 그런 말을 듣기 전부터 난 이미 현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요, 죽어도 못하겠더라구요. 나랑 안 맞는 병원에서 계속 가면을 쓰고 뛰어다닐 바엔, 성공이 불확실하고, 성공 전까진 돈을 적게 번다 해도.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맞겠다고 생각했어요. 겪으면 겪을수록. 창조적이지 않고 사회의 부품이 되어 억지로 굴러가는 삶은 저랑 안 맞는다고 느꼈거든요. 기왕 부품이 될 거. 물처럼, 어느 모양이나 잘 맞추어 변신하는 멋진 부품이 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글'이라는 안정적인 틀 안에서, 나는 무엇이든 될 수가 있잖아요. 꼭 정해진, 작가로서의 유온유가 아니라, 현장에 나가면 이 상황 저 상황을 지시하며 후배들을 꼭 한 번씩 울리곤 하는 깐깐한 라디오 PD도 될 수 있고, 가끔은 시인이 되기도 하고, 에세이 작가가 될 수도 있는 거구요.
사람 일이란 게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말, 어릴 때 사실 잘 안 믿었어요. 스물 세살에 좋은 출판사를 만나 300페이지에 가까운 글귀 집을 낼 수 있을 거다, 라는 생각은 상상도 못했구요. 그런데, 어쩌다 보니 저는 이렇게 되었네요.
그러니까 말이에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여러분도 여러분만의 가슴이 뛰는 일을 꼭 찾아가라는 거예요. 다만 그 방식이, 누구의 것도 아닌 자신에게 가장 편안하고, 알맞은 방식이어야 해요.
남은 아무리 입었을 때 예쁜 옷이라 해도, 막상 내가 사 입으면 재질이 너무 까끌까끌하거나 어딘가 끼어서 불편한 경우 있잖아요. 남들이 하는 대로, 안 맞는 일을 억지로 해 나가는 건 그것과 똑같은 거예요.
그러니 꼭, 가슴이 시키는 일, 가슴이 뛰는 일을 찾아가도록 해요. 가슴이 뛰는 일을 찾고, 나를 발전시키고. 다시 나의 부족한 부분들을 발견하고,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보완하고. 내가 잘하는 쪽을 개발하고 깊이 파고드는 삶을 반복하다 보면. 그것이 쌓여, 자연스럽게 그걸 꾸준함이라 하는 거래요.
당신만의 꾸준함을 계속해서 발견하고 가꾸어나가는 삶. 함께 상상해 봐요. 생각만 해도, 가슴 설레이는 일이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