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섬세하고 따뜻하지만, 쿨하진 않아
토막 에세이-일상
8년 지기 밀키 언니와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다가 들은 말이었다. 맞는 말이었다. 언니의 기준에서 쿨한 사람이란, 상대의 잘못을 그냥 넘어가는 것을 넘어 완전히 잊어버리는 사람을 뜻했다. 나는 언니 정도의 위인은 못되었고 언니는 나에게 그러니까 너는 너를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 해, 포용력이 좋고 마음이 넓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상하게 언니의 그 말이 참 좋았다. 그러니까 너는, 그만큼 민감하지만, 좋은 점도 많다는 말 같아서. 너는 좋은 사람을 만날 자격이 있다는 말 같아서. 언니는 나와 상담할 때마다 나의 문제를 정확히 짚어 조언해 주고, 나는 그 조언을 삶에 적용해 본다.
밀키 언니와는 카페에 앉아서 잠깐만 멍 때리자, 하고 한숨을 내쉬고 있다가도 어느새 보면 이야기를 하다가 한 시간이 훌쩍 넘어가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늘 버스로 10분 거리 동네에서 만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다가 자연스레 깊고 무거운 주제를 나누고, 그러다가도 다시 유치한 이야기들을 하고. 노래방에 가면 맨날 같은 노래를 부르다가 가끔 다른 노래를 부르고, 매번 비슷한 방식으로 놀다 가끔가다 새로운 것들을 시도하지만, 나는 거기에서 오는 안정감들이 참 좋았다. 그리고 우리가 나누는 삶의 문제들은 항상 바뀌었다.
삶은 항상 변화했고 나와 언니도 더 이상 고등학생 때의 우리가 아니지만, 서로의 바운더리를 존중하고 적정거리를 유지한 까닭에 우리는 8년 지기 친구로 잘 지내고 있다.
생각해 보면 언니와는 유독 사랑에 대한 상담을 많이 했다. 동네의 본죽 집에서, 그리고 바로 옆의 햄버거와 치킨을 파는 집에서, 이번엔 길 건너 건너 카페에서 나는 언니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혼자 열띠게 흥분해 말을 이어가기도, 언니의 의견을 숨죽여 듣기도, 생각 없이 깔깔 웃기도 했다. 나는 왜 이렇게 언니와 사랑에 대한 고민 상담을 많이 할까, 내가 말했고 언니는 웃으면서 그건 네가 나를 전문가라 생각해서야, 자기 일에 대해 상담하려면 한 명한테만 말하면 안 된대, 여러 명에게 물어야 한대라고 답했다.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값비싼 음식들을 같이 먹어도, 먹다 체할 것 같은 사람이 있고 길거리의 분식집에서 간단하게 우동을 먹어도 5성급 호텔 요리가 부럽지 않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 있다. 나는 요즘 그냥 그런 게 좋았다. 나를 단순하게 만들어 주는 사람들. 완전히 편안하진 못하더라도, 어느새 보면 성인답지 못한, 한없이 유치한 말들을 하고 노래방에서 막춤을 추게 해주는 그런 사람들이.
언니와 같이 마주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상하게 기분이 나빠 입맛이 없다가도, 그렇게 배가 고팠다.
그날,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다 집에 돌아와 가만히 생각했다.
나는 마주 앉아 밥을 먹을 때 행복한 사람을 만나야겠다고, 기왕이면 목으로 넘겨지는 밥알들만큼 좀 따뜻한 사람이면 좋겠다고.
쿨하지 못한 사람의 단점은 꽤나 까다롭다는 것이고, 장점은 감동받았던 일을 마음 깊이 오래오래 기억한다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쿨하지 못하고, 서투를 때가 많지만.
이런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에게, 참 감사하며 살아가야겠다. 단점보다 장점을 봐주는, 그런 사람들이 나는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