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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온유 Oct 17. 2024

동경


열아홉의 나는 스물의 나를 많이 동경했어, 그때의 내게 비친 스물은 환상적이고, 이상적이었어.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 겪어본 적이 없으니까, 드라마에 나오는 모습들만 봐왔으니까.

로맨스 드라마 속에서, 보통 20대 어른들은 낭만적이고 아름답게만 그려져.

상처받고 힘들어하고, 커다란 일들을 겪다가도, 씩씩하게 금방금방 일어나 뚝딱뚝딱 힘든 일들을 쳐내고, 척척 멋지게 커리어를 쌓다가, 결국엔 성공해서 아름다운 누군가와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지.  


음, 글쎄. 드라마와는 달리, 스물둘의 나는, 그리 아름답지 않았어.

나의 옛날 속엔 예쁘게 편집된 부분들만 있는 게 아니었거든.

그때의 나는 숨통을 죄이는 집채만 한 고민들 사이에서 하루하루 깔려가고 있었고, 사랑에도 완전히 실패한 상태였으니까.


지금도 마찬가지야, 열아홉의 내가 스물의 나를 갈망하고 동경했던 만큼, 나는 완벽하지 못해.

다만 나는 나의 어디가 못났는지 알고,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들은 받아들이고, 당장엔 바꿀 수 없어 보이는 부분들은 점차점차 바꿔 나가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야.

나는 그런 나를 인정하고, 나를 더 사랑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지켜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어.


요즘은 모두들 정신이 없어. 갈수록 현실은 점점 삭막해지고, 사람들은 내면을 돌아보는 것을 힘들어하고 있지.

이런 현실 속에서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계속 찾아내지 못한다면, 결국 나는 물에 빠진 사람을 이끄는 게 아니라, 깊은 수렁 속에 함께 빠지는 삶을 살게 될 거야. 그러고 싶진 않더라.


동경, 요즘 내 머릿속엔 동경이란 단어가 자주 스치고 지나가고, 때문에 나는 이 감정이 무얼까 자주 곱씹고 생각하곤 해.

예전의 나는 동경을 지나치게 이상적인 감정으로만 바라봤어. 상대의 단점이 없다고 판단될 정도로 상대를 바라보게 되었을 때 드는, 순간적인 감정이 동경이라고 생각했지.

지금의 나는 동경이란 감정이, 단점이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닮고 싶어 하게 될 때, 그리워하게 될 때, 바라게 될 때, 애틋함을 느낄 때 갈망하게 되는 감정이란 걸 알아.


우리의 삶에서, 완벽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말야. 특히, 사람이란 존재는 더 그렇고.


요즘의 나는 자주 상상한 것과 어긋나버린 것들을 동경하곤 해.

어긋나 버린 나의 이상과 관계 사이에서, 나는 가끔 갈피를 잡지 못하고 털썩 주저앉아 버리곤 해,

그러나 이런 과정들이 계속 반복되고 나면, 나는 결국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될 거야.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실수들과, 기억하는 나의 실수들이 있지만.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고, 결국에 뒷걸음질을 할 수 없기에, 나는 나의 삶을 사랑해야만 할 거야.

좋아하는 프랑스어 노래, 'va va vis'에는 이런 가사가 나와.

'우리 눈 깊숙이 잉크를 떨어뜨려, 항상 앞을 보게 해야 해. 시간은 절대 널 기다려 주지 않아.'


가만히 숨을 쉬는 동안에도, 깊은 잠에 빠져드는 순간에도, 어느새 나는 서른의 나를 향해 달려가고 있어, 느린 거북이의 걸음을 걷는 것 같지만,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순식간에 그 걸음은 토끼의 뜀박질로 바뀔 거야.


요즘의 나는, 서른의 나를 '동경'하고 있어.


우리의 크고 작은 문제들은 완벽히 해결될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지만,

그러나, 그런 내가 갈수록 깊어진다면, 그래서 바쁜 나의 삶 속에서 지쳐있는 누군가에게 조용히 손 하나 가만히 얹어줄 수 있다면, 삶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일 거야.


서른의 나는 누굴 만나고 있을까, 어떤 친구들이 곁에 있을까. 어떤 생각을 할까, 지금과 얼마나 많이 달라져 있을까,


어쩌면, 모르지.

열세 살의 내가, 스물셋이 되어서 열세 살 때 사이가 안 좋았던 친구와 자연스럽게 화해했던 것처럼.

많은 것들이 달라져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아니 어쩌면,

서른의 나는 지금의 나를 동경할까, 그럴까.


조금 더 무모했던 나를 말이야.


사실 아직은 잘 모르겠어, 그러나 확실한 건-


지금의 나는, 최대한 많은 것을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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