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 자존심을 건드릴 때 거는 마법의 주문
살면서, 특히 회사를 다닐 땐 자존심을 깎아 먹는 일이 생긴다.
공들여서 만든 보고서를 전부 수정하라는 피드백을 받을 때라든지,
열심히 해도 경쟁자보다 좋은 성과를 받지 못했을 때라든지.
하지만 이렇게 원인이 나한테 있는 경우엔 자존심은 망가져도 억울하진 않다.
문제는 원인이 나한테 없을 때이다.
내가 한 일도 아닌데 지적을 받는다라든지,
내 잘못도 아닌데 사과를 해야 한다라든지.
답답하지만 뭐라 말도 못 하는 정말 답이 없는 상황이다.
되도록 이런 상황이 없길 바라지만 누군가는 더러운 일이라고 말할 정도로 남의 돈을 버는 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잊을 때면 한 번씩 생긴다.
특히 이런 일들은 대개 주님과 건물주님을 잇는 광고주님 같은 고객사님과 함께 일할 때라든지,
내 평가를 손에 쥐고 있는 상사님과 함께 일할 때 생기다 보니 억울하다고 나서서 해명하기도 애매하다.
처음엔 억울하고 곧 화가 나고 곧 ‘이놈의 회사 내가 때려치워야지’라는 생각에 회사를 그만둘 수백수천 가지의 이유를 떠올린다.
하지만 모든 직장인이 그렇듯이 우리의 월급은 작고 소중하다. 다음 달 나갈 월세, 카드값을 생각하면 사직서를 꺼내던 당당한 손은 이내 공손해진다.
을 아니 병은 넘어 ‘정’ 정도의 위치에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공격적으로 싸울 수 없다.
사실 이길 수 없기 때문에 공격적으로 싸우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하지만 적어도 지지 않을 수는 있다.
방법은 단순하다.
‘내가 귀여워서 그래’라고 생각하는 것.
하늘이 나를 너무 아껴서 너무 귀여운 탓에 세상 사람들이 질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 때 짤로 많이 돌기도 했고 다소 웃기기도 한 이 말은 예상외로 효과가 좋다.
기분 나쁜 일이 일어난 이유가 내가 못나서가 아니라, 갑 같은 존재의 비위를 맞춰야 되는 피할 수 없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내가 너무 잘났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다.
마법의 주문처럼 자존심에 상처가 나지 않도록 막아주는 방패를 만들어준다.
생각해보면 인생은 길고 회사는 나의 인생의 아주 작은 한 부분 중 하나일 뿐인데 아무도 진실을 몰라주는 상황에서 날카로운 말에 나만 상처 받는 것은 매우 아깝다.
그리고 특히 그 말이 상처를 내려고 의도한 말이라면 더더욱.
오늘, 누군가가 당신의 자존심을 할퀴었다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자.
“모두가 당신의 귀여움을 질투하고 있는 것뿐”
우리는 절대로 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