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함의 색깔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가치 있음

by Summer Breeze

몇 년 전 라섹을 하러 갔을 때 의사 선생님이 나는 남들보다 동공이 넓다고 했다. 동공이 넓으면 그만큼 눈이 빛을 많이 담는다는 건데 그래서 남들보다 말 그대로 조금 더 밝은 세상을 보고 있나 보다.


대학 때 콘텐츠에 대한 관심으로 PD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수업 마지막 날 연사님은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격려 말씀을 해주셨는데 나한테는 내가 남들보다 따뜻한 시선이 있다고 하셨다.


그때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철저하게 일 중심이고 이성적이라 오히려 차갑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회사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섬세하게 챙겨줘서 고맙다는 피드백을 많이 들었다. 처음엔 책임감 때문에 한 행동이 긍정적으로 평가된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르며 내가 남들과 달랐단 걸 알게 됐다. 작은 것들이 내겐 중요했고 큰 목표를 위해 간과되지 않길 바랐다. 그래서 힘이 닿는다면 작은 것의 편에 서고 싶었다. 나도 몰랐던 나를 파악하신 걸 보면 PD 수업 때 연사님은 몇 수를 앞서신 건지 알 수 없다.


몇 년 전 작성했던 자기소개서 중 직장생활의 의미를 물어보는 질문이 떠오른다. 회사도 제대로 다녀보지 않은 막 학기 대학생은 ‘직장생활은 돈 벌려고 하는 거지’란 생각에 500자 넘는 칸을 어떻게 채울지 한숨만 푹 푹 쉬었더랬다.

지금 다시 그때 그 질문을 받는다면 나의 여러 답 중 하나는 ‘반복 속에 스스로를 알아가는 길’이라 답할 것 같다.


온갖 미디어 속 직장생활은 꼰대 상사와 야근,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스트레스 그 자체로 묘사된다. 난 이 모습이 두려웠고 현실적으로 취업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회사를 다녀보니 예상했던 익숙했던 장면들과 함께 미디어 이면 의외의 모습도 만날 수 있었다. 자신의 일에 진심을 다하는 사람들, 생각보다 젊은 생각을 가진 리더, 감사하단 인사에 느끼는 보람 등등.

직장생활은 호러일 줄 알았는데 코미디도 있었고 가끔 감동도 느껴지는 드라마였다.


희로애락이 녹아있는 드라마처럼 매일 사소함에 짜증 나기도 하고 미소 짓기도 한다. 출근 전 급한 업무 연락이나 연착되는 지하철에 기분이 나빠졌다가 우연히 발견한 좋은 노래에 금세 기분이 좋아지듯이.


아주 작은 색깔 점이 모여 그림으로 완성되는 점묘화처럼

사소함은 미약할지라도 끝은 의미가 된다.

사람들과 부대끼며 싫고 좋은 일을 반복하며 남들과 다른 관점을 알게 된 것처럼.



사소함까지 밝게 보여서 작은 것들까지 중요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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