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이야기는 여전히 터부인가?
터부(Taboo) : 특정 집단에서 어떤 말이나 행동을 금하거나 꺼리는 것
누구나 결혼을 할 때 지금 내 배우자와 백년해로며 고슴도치 같은 아이들을 낳고 행복하게 살기를 꿈꾼다.
어느 누가 '나는 시월드에 시달릴 거야' '나는 이혼할지도 몰라'라는 생각을 갖고 결혼을 선택할까?
그녀의 결혼 또한 마찬가지였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했던가?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결과는 탄탄한 부부 사이를 만들지 못했고, 남편의 외면과 치우 져짐은 시부모와의 문제로까지 이어져 결국 이혼 도장을 찍었다.
'아! 이렇게 흘러가기도 하는구나!'
어렵게 역경을 헤쳐나가 힘들게 결실을 맺었던 결혼이었던 터라 쉽게 포기하지는 않겠다는 의지도 결국, 가부장제의 안에서의 역할 강요와 남편의 외면 속에서 무너져 내렸다.
갑자기 유명 미국 드라마인 '섹스 앤 더 시티'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많은 남자들과 섹스를 즐기며 사는 사만다는 한 남성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다. 자유로왔던 그녀에게 어느 순간 그녀의 삶이 그에 대한 집착으로 바뀌고 걱정과 근심으로 살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의심의 의심을 하던 사만다는 호텔의 그에게 찾아간다. 엘리베이터는 고장 났고 비상계단을 통해 온갖 상상을 하며 그가 있는 곳에 도착한다. 그녀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이렇게 말한다.
"난 당신을 사랑해요. 하지만, 난 나를 더 사랑해요." 그에게 받았던 반지를 건네며 뒤돌아선다.
그때는 이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랑한다면서 왜 헤어짐을 택하는 거지?
하지만, 지금은 당신을 사랑하지만 나 자신을 더 사랑한다는 말의 의미를 알 것 같다.
왜 그녀가 이별을 고했는지...
누군가 결혼은 사랑을 바탕으로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된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녀 역시 그를 사랑하기에 그를 위해 희생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착각이었고, 알콩당콩 결혼생활을 꿈꿨지만 결코 둘만의 문제가 아니며,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결혼과 동시에 며느리란 역할이 부여되고 예상치 못했던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의 간섭이 시작된다는 걸 예상하지 못했던 실수였다.
어느 책에서 읽은 문구였다.
' 이혼 이야기는 여전히 터부로 취급된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꺼내려하는 건 사람들이 말하는 남들과 똑같이 평범하게 살아갈 거라 생각했던 그녀의 일상에서 누구에게나 일어날 법한 일들이 일어났고 누군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이다. 또한 10쌍중 3-4쌍이 이혼을 하는 요즘 사회에서 이혼이 더 이상 '터부'가 아닌 드러내어 이야기되어야는 하는 것임을 알리고 싶다.
아마도 누군가에겐 '신의 한 수'였고 누군가에게는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을 수 있는 그것에 대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