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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와 시누이의 정체

by 지푸라기

인간관계를 맺을 때 두 얼굴을 드러내는 사람을 극혐 한다. 본인의 다른 얼굴을 상대방이 모르게 한다면-언젠가는 들킬 가능성 99.9%지만-오케이 그게 아니라면, 내 기준 앞으로 두 번 다시 볼 얼굴들에서 그 누군가는 영구적으로 아웃이다. 그런데 결혼 후, 이 내 평안한 삶을 위해 나름 수많은 경험치들에 의해 세워진 룰이 깨져버렸다.


Episode1 더 예민한 쪽이 패자

남편을 포함한 시댁 식구들은 하나뿐인 조카-시누이의 아들-를 한없이 안타까워했다. 그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선천적으로 약하게 태어나서 자주 아팠고, 학교에서 못된 친구들로부터 바보 소리를 듣기도 했으며 학교 학습을 따라가기 버거울 정도로 이해력이 부족하다고 시부모님께서 매번 말씀하셨다. 나도 그 가족의 일원으로서 또 같이 부모 되는 입장에서 시누이와 조카가 물론 딱했다. 우리 아들의 초음파 사진을 들고 즐겁게 시댁을 방문한 날, 마침 와 있던 시누이와 시어머니께서 함께 사진을 보시면서 내 아들에게 처음으로 감히 해대던 청천벽력의 한 단어가 난 꽤나 잊히지 않는다.


"아니, 왜 이렇게 바보같이 생겼어?"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는 웃어? 시어머니께서도 듣기에 좋은 단어는 아니니 내 눈치를 슬쩍 보시며 "얘는" 툭 시누이를 치셨지만, 그녀의 입가에도 역시 웃음이 띄워져 있었다. 그곳에서 웃지 못했던 사람은 오로지 나뿐이었다. 결혼 후, 처음으로 남편을 포함한 그들이 한패처럼 느껴졌던 순간임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녀가 자식을 위해 그 단어를 던진 이들을 처단했듯이 나도 직접 시누이에게 대놓고 따지지 못해 후회되는 아니, 평생 원통할 순간이 되어버렸다. 모두의 평화를 위해 선택한 내 행동은 순전히 나만의 착각이었고, 자신의 아들에게 진심으로 하는 말이 아니었을 거라며 누나를 두둔하기 바쁜 남편에게 내가 그 과정에서 감내한 것쯤은 요만큼도 보이지도 않았던 것이다. 울며불며 한바탕 속마음을 쏟아낸 뒤, 남편이 내가 시킨 대로 메시지를 전달하자 돌아온 그녀의 대답은 남편의 반응과 동일했다.


"장난으로 한 건데, 걔는 뭘 그렇게 예민하게 구니?"

그녀는 내 기준 상식이하 내로남불형 인간이었다. 그녀가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로맨스를 두 번은 참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그들에 대한 경계심을 바짝 세웠다.






Episode2 투명인간

무엇이든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쉬운 법. 또 그 두 번은 그렇게나 빠르게도 찾아오더라. 그리고 내 예상대로 그녀의 두 번째 비상식적인 행동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아들을 출산한 후, 몇 개월이 지나 육아에 푹 찌든 몸과 정신상태로 미뤄뒀던 힘든 시댁에서의 1박을 감행했다. 시누이의 저녁 등장부터가 참말이지 말썽였던 것이 '안녕하세요' 하며 고개 숙인 내 인사가 씹혔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거실에서 앉아 티브이를 보면서도 다들 한패거리가 되어 웃고 떠드는데 다시 나만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상황, 또 맞닥뜨려버렸구나! 이번엔 그녀는 나를 투명인간 취급했다. 나를 사이에 두고 남편 하고만 아이컨텍을 하며 시종일관 대화를 했고, 자기 와이프가 이런 대접을 받고 있는 것도 모른 채 멍청이 같은 남의 편 놈-더한 말을 진작 쓰고 싶지만, 나중의 어마어마한 일을 앞두고 단계조절 상 아끼겠다-은 누나의 갑질을 열나게 도와주고 있었다.


여자의 육감은 거의 정확하다. 특히 여자가 여자의 마음을 꿰뚫는 일은 속한 곳의 공기를 맡기만 해도 쌉가능한 것. 분명 그녀는 내게 쌓인 것이 있고, 그것을 부지불식간에 표 나게 행동하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그때 내 마음 둘 곳은 오로지 아들뿐이었다. 네가 있어서 너무 다행이야. 일찍 재워야 한다는 핑계를 앞세워 안방으로 들어가 차디찬 바닥에서 홀로 아들을 토닥이며 재우는데 서러움에 복받쳐 눈물이 흘렀다. 여전히 들리는 그들의 잔망스러운 웃음소리가 내게 살이 째지는 고통을 선사했으니 반드시 그 여자와 그 남자에게 그 책임을 묻겠다!



기껏해야 시누이에게 다이렉트 문자로 내 기분이 안 좋았었다 알린 정도였지만, 그녀 같은 사람을 상대하기 위해 내가 더 이상은 미덥지 않은 남편을 중간에 놓지 않겠다며 어금니를 악물었다는 아주 큰 뜻이 있다. 사람이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본다고 요즘 같이 별별 사람이 공존하는 세상에서는 결코 인내만이 답이 아니다. 본인이 부당하게 느끼는 것을 한 번 참아 주는 것은 상대방의 배려차원에서 할 수 있지만, 두 번부터는 참았던 한 번이 힘을 더해 줄 것이니 당당하게 이의제기를 하면 된다. 그녀의 대답은,


"내가 가기 직전에 남편과 대판 싸웠거든. 그 상황에 억지로 너한테 인사받고 얘기할 기분이 되겠어?"


30여 년 다른 환경에서 살다가 들어온 남을 제일 만만하게 여기며 서로 맞춰가는 방식이 아닌 내가 자기에게 맞춰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강요하고 있는 사람-이때까지만 해도 한 명인 줄 알고- 이 내 시집식구라니 배신감이 밀려왔다. 이 배신감이 비록 뒷북 사과를 하느라 정신없는 남편이지만, 그로 인해 더 이상 커지지 않길 기도했다. 너,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할 것 같아!


"그래도 형님, 다음번에는 인사만이라도 받아주세요. 그 이후에는 제가 눈치 봐서 형님 기분 알아차릴게요."세 번 참은 것과 진배없다. 더 이상은 못 해먹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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