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로 시작해 메시지로 끝내진 싸움은 난생 처음이었다. 이런저런 싸움 겪어봐야 내공이 쌓이겠지만 찝찝한 기분은 그리 좋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나는 최선을 다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누이와 지속적으로 통화시도를 했었다는 것이다. 순간의 흥분을 제어하고 자존심을 먼저 내려놓고 행동하는 사람이 후에 더 용맹스럽게 자기의 옳고 상대방의 그름을 따질 수 있는 법. 여기에 그동안 시누이와 관련된 여러 일들을 견디어 오면서 쌓인 무기들이 더해지니 나 홀로 그녀와 직접 만나거나 통화를 하게 된다 해도 세상 무서울 것이 없다.
앞문에서 시누이와 한바탕 진 빠지게 다투고 나니 뒷문으로 시어머니가 나 좀 보자며 들어오시네! 설상가상이 따로 없다. 안 그래도 시누이의 이간질에 사실확인을 하고 싶던 차였다. 나는 시어머니께 며느리가 어디가 얼마나 마음에 안 차신 건지 그리고 어머님께서 극구 말리셔서 설거지를 안 했던 건데, 왜 시누이는 시댁 와서 설거지도 안 하는 나쁜 며느리라며 내 뒤통수를 후려친 건지 따져 여쭸다.
"개가 시댁에 가서는 일을 엄청 하고 오니깐, 개 눈엔 네가 그렇게 보여서 그래."
내가 이해하라고요? 시어머니께서는 딸의 그런 유치한 언행을 당연지사라 여기는 듯했다. 내 눈에 비치는 상대의 상황이 나보다 나아 보여 그 사람을 멋대로 못된 사람으로 둔갑시키는 짓은 여자의 질투이다. 설거지는 그저 구실일 뿐 난 그녀가 나한테 이렇게까지 모질게 하는 이유를 그제야 찾았다.
인간의 질투는 자연스럽다. 사람들 속에 부대끼며 살면서 질투 안 느껴 본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러나 관건은 본인의 질투를 얼마나 잘 다룰 줄 아느냐인데 이 여부에 따라 그 사람의 인격이 달라진다. 나의 경우, 여자로서 질투를 느끼면 일단 내가 한없이 작아지기에 깊이 빠지기 전에 어떻게든-주로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 감정의 시선을 돌리거나 종교의 힘을 빌어 내가 믿는 그분께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소서' 지속해 나직이 기도한다. 이런 노력을 해야 내 감정이 질투에 놀아나지 않는다. 그리하여 난 시어머니처럼 그녀의 막무가내 딸에게 관용을 베풀 마음이 조금도 없다.
곧 시누이 편에 선 시어머니로 인해 2차전이 시작되었다. 아마도 곁에서 딸이 알뜰살뜰 챙기니 같은 자식이라도 더 예뻤을 테지만 그 어머니는 동시에 딸자식을 애지중지 키워 주셨다.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사이와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기만 혹은 주기만 하는 사이는 감정의 기류가 다르기에 이런 싸움에서 편을 가르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선택이다. 나보다 한참 더 긴 세월을 사신 분께서 부모로서 '중립'이 아닌 자신이 더 끌리는 쪽에 홀라당 서니 고작 그 집에 들어온 지 2년 남짓 된 며느리에게 그 얼마나 몹쓸 짓인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상식 이하이다. 아무래도 결혼 잘못한 것 같다.
시누이와 사건이 터진 그날 이후부터 신랑과 나는 거의 1년을 시댁일로 매일 싸웠다. 지금 결혼 14년 차, 남편과 싸우는 게 너무 신물이 나게 역겨울 정도라 웬만한 일 아니면 다툼을 하지 않는다. 그때, 결혼 이후 처음으로 남편 숨소리로 살인 충동을 느껴봤다면 말 다한 것 아닐까! 남편은 매일 사고를 치고 다니던 형을 보면서 자연스레 불쌍한 부모님께 무조건 순종하는 게 몸에 밴 사람이다. 설사 어르신이라도 비상식적인 언행이나 행동을 하면 인상 팍 쓰고 서슴없이 바른말을 하는 사람이지만, 자기 부모의 것들은 전혀 객관화시킬 수 없는 것이 그의 치명적인 단점이다. 적어도 내가 그들의 억지스러운 주장에 울분을 터뜨리며 너무한 것 아니냐 서러워할 때에는 당시 내 감정에 동의는 해 줬어야 했다. 하지만 남편은 그 잠시라도 자기 부모가-그저 불쌍하니- 나쁜 어른이 되는 것을 허락지 않았고, 그로 인해 나는 그에게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부모 -더 엄밀히 말하면, 시어머니- 가 취해야 할 '중립'을 남편이 취하고 있는 상황에 내가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어떻게 내 삶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모든 순간이 짜증범벅이었다. 남편 숨소리를 듣지 않아야 -나아가 면상까지- 보지 않아야 조금은 차분해질 법 한데, 엄마 껌딱지인 아들을 두고 그 자리를 뜰 배짱은 없었다. 자식이 뭔지... 내가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 새끼를 품고 있는 내 모습이 나는 너무 애처로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가까이에 맘 터 놓고 얘기할 수 있는 이 하나 없어 멀리 떨어져 있는 지인-미선아, 매일매일의 내 전화를 받아줘서 너무 고마웠어-에게 전화할 수 있는 저녁시간만 기다리는 것이 내가 위로받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내 혈육인 친정 부모님조차 딸이 남의 눈에 허점으로 비치는 '이혼'을 정말이지 하게 될까 봐, 내 생채기 난 마음을 어루만지기보다는 '아랫사람으로서 어른한테 한 번은 져야 한다' 라며 훈수를 두시기 바쁘셨다. 그러니 당연히 그들과의 전화통화도 꺼려졌다. 철저히 혼자인 것 같았다. 그때부터 결혼 후 내 외로움이 시작되었다. 가족이 있는데도 외롭다니 지독하게 아이러니하네.
이혼하자. 이런 시댁과 더 이상 가족으로 엮이고 싶지 않았다. 시누이과 시어머니 성격이 보통이 아니라는 걸 알았기에 그들에게 변화는 있을 수 없다고 나는 판단 내렸다. 그들이 원하는 며느리와 올케 상은 자신들의 말에 고분고분 나긋나긋한 여자 -정작 본인들은 그런 성격의 여자들도 아니면서 바라기는- 였으나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건넜으니 더 이상 해결될 게 없다고 생각했다. 설사 이번을 덮고 넘어간다 해도 분명 이 같은 일은 또다시 발생한다고 확신했다. 극단적인 내 카드에 한껏 놀랐는지 -진작 정신 차렸어야지- 신랑이 여느 날처럼 나와 심히 끝으로 치닫는 -때리지만 않았을 뿐- 감정싸움을 한 후, 밖으로 나가 이 싸움의 시초인 시누이에게 '누나 때문에 이혼하게 생겼다' 라며 울먹였던 모양이다. 다시는 연락하지 말고 그런 애 너나 데리고 잘 살라던 그녀가 내게 역시나 문자로 '내 동생이 이혼하게 생겼다고 화를 내네. 미안하다.' 얘기해 왔다. 아들을 방치한 후, 혼자 방에 처박혀 역시나 꺼이꺼이 눈물콧물 쏟는 와중에 그 문자를 봤던 순간의 내 감정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자기 맘대로 상처 주고, 자기 맘대로 없던 일 하자니 참 쉽다.
떠밀리는 마음으로 한 사과는 받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엔 내 인생 처음으로 칮아온 아픔의 시간이 너무 지옥 같았기에 난 진정성 있는 사과 -그래도 풀릴까 말까인데- 를 받고 싶었고, 그녀에게 마음이 가라앉으면 연락하겠다고 답했다. 내뱉은 막말은 어쩌고 연락을 하셨냐며 따지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지만 또 참았다. 그리고는 한참 동안 난 그녀에게 연락할 수 없었다. 나도 시누이가 됐으니 자기를 이해하게 될 꺼라던 그녀의 당당한 말과는 다르게, 내가 시누이이기 때문에 그녀와는 다른 더 조심스러지는 말과 행동을 장착하게 된 나로서는 나와는 다른 결의 인간과 다시 관계를 회복하는 일은 내 가치관을 뒤흔드는 일이었다. 정말 최소한의 양심이라도 있는 사람들이라면 내 상처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돕거나 내게 그럴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 진정한 사과라고 생각했다. 남편과 시누이와는 그녀의 진정한 사과가 있기 전까지는 풀지 않겠다며 시누이와의 관계회복은 앞으로 남편에게 전권 위임하며, 자식 된 도리로 시어머니께는 이 흉흉한 사건의 일원으로서 무릎 한 번은 꿇며 사죄드리겠다고 합의했다. 오로지 내 아들을 위해서였다. 아들에게 아빠는 행복의 필수불가결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단락되나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후 남편과 내가 시누이에게 연락하지 않는 시간 -동시에 우리 부부 사이의 관계회복하는 시간- 이 길어지자 평화로이 시댁만 방문하는 꼴이 볼썽사나웠는지 시어머니께서 역정을 내셨다. 시누이와 왜 안 풀고 있는지만 따지셨으면 좋았을 텐데, 시누이와 다를 것 없이 그분도 내게 막말을 해대셨다. 나 포함 친정부모님을 '재네들'로 지칭해 남편에게 '너 재네 식구냐' 며 따지셨고, 우리만 행복하게 잘 살면 그게 효도라고 하시더니 '시아버님 퇴직하셨는데, 얼마나 돈벌이가 되겠냐, 너네가 한 효도가 뭐냐' 며 따지셨고, 내가 임신할 때 시어머님 전화를 퉁명스럽게 받았었다며 기억도 나지 않는 아득한 일들로 소리소리를 지르면서 나를 궁지로 몰으셨다. 이건 막장 드라마에서나 봤던 시어머니 모습인데?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게 사실인지 꿈인지 싶었다. 그때, 남편의 발악하는 모습을 나도 처음 보았다. 마냥 착한 막내아들의 반항을 난생처음 보신 시어머니께서는 적잖이 충격을 받으셨으리라. 그리고 내가 더 미우셨으리라. 본인의 잘못은 생각지 않으시고, 흔히 내 아들이 여자 하나 잘못 만나서 저렇게 변했다고 생각하는 마인드의 시어머니가 바로 내 시어머니였다.
그렇게 불쌍한 우리 4살 아들을 들쳐 안고 우리 셋은 그 집을 나왔다. 네가 그 장면을 기억하지 못할 때라 너무 다행이야. 사랑해, 아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