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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시간제 계약직은 신의 동아줄

by 지푸라기

신이 도울 때 스스로 더 도와야 한다. 남편도 마침내 돌아선 시집과 연을 끊고 살면서 내 마음도 그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 그는 내 마음이 마냥 좋을 꺼라 생각했겠지만, 나는 평생 키워 준 부모에게 몇 년이나 눈과 귀를 닫고 우리 부모에게만 자식노릇을 하는 남편을 모른 척할 만큼의 긍휼도 없는 인간이 아니다. 이나저나 내 신세가 참 가엾다 싶었을 때, 아들을 유치원에 보내고 확보된 나 혼자의 시간을 나를 위해 쓰기로 마음을 먹고 일을 찾고 있었다. 그때, 주변 친한 맘으로부터 '삼성전자 시간제' 채용공고를 접하게 되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시기 시행되었던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내겐 큰 행운이었다.


사람이 살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얻게 되는 정당한 '운'은 넙죽 받으면 나쁠 것 없다. 아니, 받을 수 있을 때 내게 오도록 애써 보는 것도 내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지혜이다.



삼성 ssat(삼상직무적성검사)에서 미끄러져 내 인생 삼성입사는 물 건너갔다고 생각했었는데, 34살에 오전 4시간 근무하는 시간선택제 계약직으로 입사라니!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이래서 일단은 살고 봐야 한다. 그러나 합격연락을 받고도 선뜻 결정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인서울 4년제 한국외대를 나와 계약직은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염두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향지원하는 느낌이랄까, 내가 이 스펙을 어찌 쌓았는데 정규가 아닌 계약이라니! 하지만 밤새 아픈 4살 아들을 간호하고 늘어진 다크서클을 힘껏 받치며 달려간 면접장을 나온 후, 다시 그 육아현장으로 복귀하면서 '고작 그깟 게 뭐 대수라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육돌육 -돌아서면 육아하는- 집구석을 벗어나는 게 급선무니 입사는 일단 하고 보자!





내 중국어 능력이 최대한 반영돼 배치받은 삼성 TV PLUS 개발부서에서 나는 중국(난징) 개발검증 및 오류 피드백을 담당했다. 입사 첫날의 어색한 기류가 너무나 당연한 것이 20대 사원들보다 나이 많은 여자가 제일 아래 직급 -지금은 '-님'으로 호칭이 바뀌었지만, 당시는 '에이전트'- 으로 들어왔고, 그 직원이 다들 한창 근무 중인데 오후 1시에 '들어가 보겠습니다' 퇴근해야 하는 희한한 광경에 서로 적응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도 뻘쭘해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으니 그들은 오죽하였을까! 다들 약속이나 한듯 입을 모아 매일 조기 퇴근하는 내가 부럽다고 했으나 난 믿지 않았다. 정규직이 계약직을 부러워할 리 결코 없으니까 말이다. 심지어 능력 있는 여자 수석님께서 자기도 퇴사하고 에이전트로 재입사나 해볼까 하시며 내 기분을 치켜세워주셨지만, 나는 내가 그렇게 대단한 자리에 있지 않음을 심플하게 인정하고 내 필요 -오후에는 육아를 해야 하는 상황- 에 의해 잠시 근무시간을 선택한 것뿐이라고 정리했다. 자식을 위해 못할 것 없는 엄마로서 나름 참 깔끔하다고 스스로를 칭찬했다.


시집 식구들과 육아로 피폐해진 내게 아이, 남편 그리고 시집만을 주제 삼고 대화하는 주위 육아맘들과는 달리 자신의 인생을 각양각색으로 꾸려 나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무리 안에 머무는 시간은 꽤 큰 자극이 되었다. 마치 신선한 공기가 너무 좋아 연신 킁킁거리는 강아지 마냥 그곳에서 나는 적극적으로 그들과의 관계 형성에 뛰어들었다. 밝은 인사는 기본이고, 가까워지기 위해 보통의 에이전트들이 뻘쭘해서 피하는 저녁 회식 -저녁육아를 제치는 남편회식의 맛이 이런 거구나 처음 알았던- 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고, 퇴근시간을 1시간 뒤로 미루고 부서원들과 점심식사 후 티타임까지 거르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입사 후 1박 2일로 서울 이태원에서 단합대회가 있었을 때, 조별 혹은 개인별 장기자랑에도 스스럼없이 참가하면서 우리는 서로를 온전한 일원으로 인정하고 있음을 느꼈다. 당시 수석님을 만난 것은 내 인생 큰 축복이다. 내가 적응할 수 있도록, 그들이 나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충분히 배려해 주셨고, 내 마음을 꿰뚫으신 듯 시간선택제 그 자리가 내 삶의 위로가 될 수 있도록 내 존재를 한껏 치켜세워주셨다. 그렇게 나는 당시 삼성전자 시간선택제 '에이스'라고 회자되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시집에서 보잘것없는 취급만 받다 내 가치를 존중해 주는 사람들을 만나니 살 맛이 났다. 시집이 그다지 내 인생에 중요치 않게 됐다. 바뀔 수 없는 것들에 부질없이 귀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 말고, 어두운 어린 시절 내가 그러했듯이 나를 더 빛나는 사람으로 만드는 데에 집중해 보자! 나를 가꾸는 것은 적금이다. 외적으로는 얼굴이 칙칙하지 않은 정도로만 신경 쓰고, 자격증을 하나 둘 더해가며 또는 유효기간 만료된 자격증을 갱신하며 이후에 시집 때문에 이혼할 경우를 대비해 스펙을 꾸준히 쌓아보고, 내 몸의 부족함을 보완하기 위한 스트레칭 동작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하며 내적으로는 감정에 치닫는 판단과 행동을 지양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일시정지' 하는 연습을 쉬지 않는다. 지금도 나는 열심히 이 적금을 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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