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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를 배우기로 했다(feat. COVID-19)

by 지푸라기

이렇게 내 30대는 지나갔다. 임신과 출산, 시집과의 갈등, 남편과의 불화로만 채워질 줄 알았지만, 그분의 도우심으로 만난 생애처음 직장과 좋은 사람들 덕분에 완성작이 알로록달로록 예쁘면서도 참 애잔하다. 분명 그 시간을 지난 나는 훨씬 단단해졌다. 웬만한 인생의 돌발상황에는 '그래, 어디 한 번 와봐라' 단번에 의연한 마음을 장착할 수 있고, 이미 저질러진 나쁜 일에는 왜 내게 이런 일이 온 거야 탓하기보다 눈 한번 질끈 깜박임으로 금세 리셋시켜 앞으로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계획을 수립하는데 집중하는 사람이 되었다. 매일을 죽고 싶다며 하루를 견뎌본 사람은 그 고통의 무게를 알기에 감정의 바닥으로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아 긍정적인 머리를 굴리며 살아갈 테고 또 그곳에서 한 번 탈출해 봤으니 나름의 '회복 탄력성'을 빠르게 발휘할 수 있다.


그렇게 내 40대를 맞이했다. 자식 때문에 이혼하지 않고 견뎠다는 우리 엄마 -너무 사랑해-처럼은 절대 -세상에 절대란 없다- 살지 말아야지 했지만, 나 역시 아들을 위해 버텼으니 '대물림'의 마력이란 분하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최소한 그 엄마에 그 딸의 모습은 아니다. 자식을 먹여 살릴 능력이 없어 이혼할 엄두가 안 난다는 두려움은 없다. 이 가정을 유지하면서 내 삶을 놓지 않으려 가용한 자본, 시간, 노력, 체력을 끌어모아 알뜰히 꾸려가다 보니 아들, 남편만큼 내 자신이 너무 소중해지고, 자연스레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거다. 이 세상 마지막 눈을 감을 때 내 삶은 어떤 삶이었다고 고백되길 바라나?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해 보고 싶은 것이 있나? 내가 죽도록 싫어하는 후회를 덜 하기 위해 -아예 없는 삶은 불가능하기에- 놓아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




육아를 하다 보면 나를 참 많이 닮은 아이를 통해 '아, 그때' 하고 떠올려진 내 어린 시절로 퉁쳐진 한 조각 한 조각의 추억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내려가 바라보듯 선명해질 때가 자주 있었다. 그렇게 과거의 나를 빈번히 만나다 보니 나는 내성적인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서슴지 않고 심지어 즐기는 '관심종자' 였던 것. 마침 코로나가 찾아왔다. 내 인생 두 번째 시련은 모두에게 찾아온 것이라 상대적 박탈감은 덜했으나 외동맘으로서 견딘 코로나는 내 한계치를 넘었던 싸움으로 유별나게 기억될 듯하다.


초등학교 가면 친구 찾아간다는 말만 믿고 버텨 드디어 누리게 된 '엄마'의 환청에서 벗어나 행복함도 잠시, 다시 원점으로 돌려진 육아는 진심 가혹했다. 몇 동 몇 호에 코로나 환자가 나와서 조심해야 할 시기에는 놀 상대가 오로지 엄마뿐이라 아들도 오죽 답답했을까 싶지만, 나 좀 내버려 두면 안 되겠니! 짜증으로 막힌 목구멍은 아무리 쑤셔봐도 아이가 하루종일 나와 같은 집에 머무는 이상 말짱 도루묵이었다. 정말이지 절제하지 않았다면 아이를 툭하면 패대기쳐 대고도 남았을 강도의 스트레스였다. 외동의 선택에 대한 책임감이 코로나 자식 때문에 너무 무거워져 형제들 맘을 내심 부러워하며 괜찮다며 스스로 다독였던 그 긴 터널을 무사히 통과할 즈음, 뭐에 홀린 듯 시니어 모델에 지원하게 되었다.



결과는 예상대로 불합격이었다. 그러나 얻은 것이 있다. 20대 이후 내 심장의 '쿵쾅쿵쾅' 소리가 확성기를 댄 듯 이렇게나 가까이 내게 들린 적은 처음이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다는 말을 싱크로율 100% 로 재현했다 자신할 정도로 내가 느낀 설렘은 날 것 그 자체였다. 외출도 않고 집에 박혀 유튜브 도움을 받아 수없는 턴-워킹-촬영본 확인 및 자세 수정을 하고 이를 무한반복했던 시간은 미치지 않고서는 앞으로 다시는 할 수 없을 짓이었다. 코로나로 억누르고 참았던 짜증이 광기로 변질되었던 것 아닐까. 어쨌든 그것이 해소될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니, 아무래도 내 안의 '내'가 궁금할 정도로 너무 많은 것 같다.


다음은 '연기' 체험수업에 도전했다. 감성이 풍부한 편이라 내 삶은 드라마나 영화로부터 위로를 많이 받는다. 트라우마가 있어 폭력적이고, 우울감이 짙은 영화는 보지 못한다. 아마 평생 보지 못하겠지 싶다. 배우들의 연기를 보면서 나도 마음이 어두운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매번 했었는데, 왜 '연기'를 해 볼 생각을 안 해봤을까. 또 뭐에 홀린 듯 체험수업을 등록했다. 코로나 네 덕분인가 봐! 내가 끌리는 무엇인가에 더 이상 주저하지 않고 코로나 이전보다 빠른 실행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연기'의 '연' 자도 모르면서 그날 밤 나는 다른 차원의 세계를 다녀온 양 쉽사리 감정이 돌아오지 않아 잠 못 이뤘다. 매력 있다.

지금의 나에 충실해 보자.

그 삶은 '상썅 그 이상' 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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