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내 일이 제일 힘들다더니 쓰다보니 불평하고 싶은 마음을 참느라 혼났다.
편한 직업이다 생각할 혹자들에게 해명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다.
하지만 이 글에서 만큼은 좋은 점만 쓰겠다 다시 한번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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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오래 다닐 수 있다..?
미혼인 나는 솔직히 아직 피부로 와닿지는 않지만, 자주 들었던 이야기다. 그렇다고 한다.
학교는 1년 단위로 운영된다. 학교에서는 매년 담임이 바뀐다. 즉, 내가 1년 동안 쉬었다 다시 학교에 와도, 나를 위한 자리를 비교적 쉽게 만들 수 있다.
남자든 여자든, 육아 휴직을 자유롭게 쓸 수 있으니 출산 및 육아로 인한 퇴사는 거의 없다. 물론 본격적으로 육아행 롤러코스터에 탑승하며 자연스럽게 승진을 포기하고, 일단 다닐 수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주변의 능력자 선생님들을 볼 때마다 조금은 슬프기도 하다. 아직.. 현실을 모르거나 철이 덜 들었나 보다.
그래도 결혼과 육아를 시작하며 자연스레 직장을 관두는 주변 지인들을 보며,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자녀, 특히 딸에게 '선생님 한번 해볼래?'라고 한 번씩 제안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구나 싶었다.
5. 시간이 잘 간다.
이 장점에는 전제조건이 있다. 아이들을 그래도 꽤 좋아해야 한다.
학교는 항상 바쁘고, 초등학생들은 매번 기대 이상이다. 20명 내외의 아이들은 매일 시끄럽고, 매일 싸우고, 똑같은 것을 계속 묻고, 틈틈이 사고도 치며 선생님 말은 진짜 죽어도 안 듣는다.
회사에서 두 시간 동안 일을 한 줄 알았더니 20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우스갯소리를 한 번쯤은 들어 봤을 것이다. 나는 이 말에 도무지 공감할 수가 없었다.
아 물론, 학교만 바쁜 거라고 투덜대는 게 아니다. 안 바쁜 회사가 어딨겠냐만은 학교는 조금 다르다. 학교는 모든 것이 동시에 진행되는 RPG 게임 같다.
나는 매일 전쟁을 치르는 장수의 마음가짐으로 출근한다.
여기 발령받은지 딱 두 달차인 신규 교사가 있다. 물론 신규에게 강화 아이템 및 화려한 의상은 사치다. 당신은 어쩌면 현장체험학습을 가게 될지도 모른다. 희뿌연 먼지와 각설이의 쩔걱거리는 엿가위 소리가 가득한 도떼기시장에 던져질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일단, 시뻘겋게 달아오른 주전자보다 뜨겁게 흥분한 약 20명의(어쩌면 최대 30명 이상의) 아이들을 진정부터 시켜야 할 것이다. 끝이 아니다. 간신히 진정된 아이들에게 안전한 체험 학습을 위해 장터에서 절대 하면 안 될 일 top 10 리스트를 지겹지 않게 교육시켜야 한다. 이럴 수가! 점심 전까지 처리해야 할 긴급 자료집계가 있다며 교감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20분 안에, 혹시 몰라 챙겨 온 개인 노트북으로 업무처리를 해 보도록 하자. 아직 안 끝났다. 한창 공문을 쓰는 와중에 현장체험학습을 대체 왜 도떼기시장으로 갔냐는 학부모님의 푸념 섞인 전화에 미소로 답도 해 보도록 하자.
이쯤에서 다시 한번 말하겠다.
모든 일은 동시에 일어난다.
미션을 모두 완료했나? 정말 축하한다. 당신은 웬만한 층간 소음에도 온화한 웃음을 발사하는 무감각 부처의 귀를 얻게 되었다.
앗 잠깐만, 미안하지만 무감각 부처의 귀는 돌려줘야겠다. 미션 실패다. 저것 좀 봐라! 당신 반 최고 까불이가 장난치다 넘어져서 울고 있지 않은가... 와우.... 우는 와중에 당신에게 다가오고 있다. 한 발짝... 또 한 발짝...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오버해서 재미로 한 번 써봤다. 하여간에, 내가 느꼈던 교실은 이만큼 정신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더불어 정신없는 내 모습을 아이들에게 들켜도 곤란하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었고, 초등학생은 대체로 작은 일에 잘 웃고, 동시에 환장하게 웃기는 생명체다. 그래서 이 놈의 학교에서는 도무지 지겨울 새가 없다. 아침에 일어나 학교까지 가는 건 물론 죽여주게 싫지만 일단 학교에 도착만 한다면 일하기 싫다... 지겹다... 재미없다... 나는 왜 살까... 따위의 부정적인 생각을 할 틈도 애초에 없다. 정신없는 아이들의 활기는 운동 직후의 기진맥진함과 꽤나 비슷해서 상쾌함과 뿌듯함도 함께 가져다 준다.
학교에서 출근을 하고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급식시간이다. 또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애들이 없다. 그리고 난, 매일 웃으며 장렬히 전사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꼭 언급하고픈 학교의 정말 큰 장점이 있다.
바로, 급식.
아 물론 급식지도 와중에 틈틈히 사고를 쳐주는
아이들 덕분(?)에, 실질적인 점심시간은 채 10분이 되지 않아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밥이다.
그래도, 매 끼니마다 메뉴 고민 없이 양질의 음식을 저렴한 가격에 챙겨주는 곳은 정말 드물다.
밥에 진심인 나에게는 천국과도 같다.
다 쓰고 보니 나의 일을 다시 아껴줄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러니, 내일도 힘을 내서 출근을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