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또 3월이 시작되었다. 교사에게 3월 2일이라는 단어는 참 묘하다. 또다시 새로운, 사실은 또 비슷한 23명의 아이들과의 첫날이 어찌어찌 지나가고, 전 교직원 회의에 함께 참여하러 내려가는 길에 동학년 선생님께서 이야기해 주신 말이 귀에서 맴돈다.
"난 지금 24년 차인데, 아직도 3월 1일에는 잠이 안 와!"
오 지저스! 그렇다면, 대체 몇 년을 더해야 3월 2일에 담담해질 수 있는 거지? 풋내기 주제에 벌써 콩가루처럼 팍팍하고 목 막히는 나날들은 늘어 가지만, 아이들을 처음으로 만나는 3월 2일만큼은 교직에 대한 눈곱만큼의 낭만이 아직 남아있음이 조금 다행스럽기도 했다.
그래 어쩌면, 모든 예비 교사들은 교직에 대한 한 줄기의 낭만을 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그럴듯한 계획은 있는 것처럼... (마치.. 나처럼...)
2022년에 교육에 대한 사명감으로 교사가 되는 인간이 대체 몇이나 되리. 하지만, 여기서 내가 생각했던 낭만이란 아이들의 인생을 바꾸고 최고의 교육법으로 멋진 선생님이 되고 어쩌고 하는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그 낭만의 정체란 바로, 내가 어찌 되었건 나중에 '교사'가 될 것이라는 낭만이었다.
임용고시에 합격한 후, 야심차고 야무지게 교실에내던져지며 깨달았다. 나는 '교사'가 아니라, 교육 '공무원'이라는 것을...
왜 대학을 다니는 4년 내내 아무도 그것을 말해주지 않았을까?우리는 가르치는 일만 하는 선생님이 아니라, 업무 분장에 교육이 포함된 공무원이 될 거라는 걸...
하지만, 내가 교육대학교에서 4년 내내 받는 교육이라고는 '선생님'이 되는 법뿐이었다.
기본적인 교육학 이론과 심리학, 11개의 과목별 교육론을 배우고 나면 조별 수업 실연이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사실, 3학년 말쯤 학생들은 과장을 좀 보태면 배우라고 해도 무방하다. 밤을 꼴딱 새 가면서 전 과목의 수업 실연을 준비하다 보면 정신이 나가기 시작한다. 그 때부터 그들은 허공의산소와 이산화탄소 입자들에게 '사랑하는 2반~ 선생님을 보세요! 반짝반짝~~'등의 고학년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12800가지 제스처 컬렉션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수시로 해댈 수 있는 수업 기계로 진화한다.
어마 무시한 양의 예체능 실습 활동도 빼면 서운하다. 정말 별 걸 다했다. 소고, 장구, 합창, 클래식, 국악, 리코더, 단소, 소묘, 수묵화, 수채화, 디자인, 포토샵, 코딩, 바느질, 인형 만들기, 목공, 과학 실험, 뜀틀 넘기, 풍차 돌기(?), 탈춤, 축구, 배구, 골프, 테니스... 를 얼마나 잘하는지가 학점으로 매겨지는 대학. 그곳이 바로 교육대학교이다.
그에 비해, 내가 지금 그나마 기억하는 '공무원'에 대한 공부는, 졸업 직전에 배운 2학점 짜리 '교직 실무' 한 과목이 전부다. 그리고, 임용 합격 직후 진행되는 신규 연수에서 업무포탈 사용법과 기안문 올리는 법을 딱 1시간 정도 배웠다.
그래 맞다. 솔직히 제대로 안 들었다.
하지만 묻고 싶다. 임용고시를 100일 정도 앞두고, 모든 과목의 교육과정을 달달 외워야 하는 4학년 학생들한테, '교직 실무' 강의가 과연 들릴지. 1년간 암기 기계로 살다가 임용고시 합격 직후 진행되는 연수에서 딱 한번 '기안'을 설명해준다고 그게 먹힐지! 임용 합격자들은, '기안'하면'기안84?' 하면서 웃는 수준이라고!
게다가 교직 세계에는 아주 치명적인 맹점이 하나 더 존재한다. 학교에는 사수가 없다.
즉, 내 업무를 가르쳐 줄 사람이 없다.
아니 그 막내 처음 왔는데, 좀 가르쳐줄 수도 있지 그거 참 너무하네! 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신규에게 담당 업무를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는 이유는, 진짜 내 일을 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학교 안에 한 명도 없기 때문이었다.
발령이 났던 첫 해가 떠오른다. 내가 맡았던 업무를 맡으셨던 전임 선생님께서는 다른 학교로 전출을 가셨다. 전임 선생님께서 그 업무를 꽤 오랫동안 하셨기 때문에, 학교 안에 내가 맡은 업무를 해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작년도 문서들을 뒤져보고, 전임자 선생님과의 업무 인수인계 통화를 마쳐도 드는 생각은 단 하나.
"아... 나는 이제 진짜 주옥 되었구나.."
당장 3월 둘째 주까지 뭘 하라고 공문은 오기 시작하는데, 당시 내 수준은 '그래서 공문이 뭔데요?"였다. 그 누가 봐도 아이큐가 두 자리로 예상되는 깡깡이 신규가 안쓰러우셨는지, 연구 부장님께서 내 개인 메일로 업무 관련 추진사항을 알려주셨다. 전년도 공문과 기안문을 일일이 뒤지신 후에, 필요한 첨부파일까지 모두 수합해서 순서대로 보내주신 거였다. 공무원의 세계에 물들어버린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더 감동이다. 메일 한 통이 황금빛 동아줄로 보이고, 부장님은 날개 없는 천사로 보이는 그 순간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등록금 내고 다니는 학교와, 나한테 돈을 주는 학교의 차이점을 그때 처음 깨달았다.
이때까지 나에게 학교는, 세상이라는 전쟁터에서 나에게 총알 쏘는 법, 엎드리는 법을 붙잡고 하나하나 알려 주는 친절한 곳이었다. '자 그래, 거기서 그렇게 장전하고 한 발 쏴볼래! 오우! 대단한데! 그래 그렇지 잘했어!' 칭찬도 해 주고, 어떨 때는 '그건 그게 아니지! 등을 좀 더 낮춰봐!' 질책도 해 가면서. 그렇게 세심하다니. 아직도 눈물이 날 것 같다.
그에 비하면 나한테 돈을 주는 학교는 뭐랄까... 그래 마치... 각자도생이랄까. 5000m 상공 비행기 위에서 일회용 낙하산을 등에 매어 주고, 손에는 총 한 자루를 쥐어준다. 어깨를 툭툭 치고 한 번 쓱 웃어준다. 그리고 망할. 내 등을 발로 찬다. 왁! 난 떨어진다. 떨어지는 나에게 미소 지으며 이야기한다.
'1년 동안 알아서 어떻게 잘 살아남아봐! 거긴 네 교실이고, 거기 그 쫑알이들은 네가 책임져야 할 애들이야! 아 그리고 그 옆에 산처럼 쌓여있는 거! 그래 그건 니 업무란다! 이제 그럼 안녀여엉!'
비행기는 유유자적 날아간다. 학교에서 생존이란 오로지 각자의 몫이다.
우당탕탕 1년을 보내며 또 하나 깨달은 것은, 인간이란 결국 '적응의 생물'이라는 것?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 몫을 해내야 월급이 나왔고, 죽도 밥도 아닌 식어버린 누룽지 같은 결과물이 나오긴 했지만 어찌 되었든, 업무는 끝이 나긴 났다.
내가 느낀 황망한 감정과는 별개로, 첫 발령을 받았을 때 나는 그래도 신규치고는 꽤 업무 배려를 받은 편이었다는 걸 다른 동기들과 대화하면서 알게 되었다.
- 아직 학교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10대들의 마음을 잘 알 것 같아서 '학교 폭력 담당'. - MZ 세대여서 디지털에 강할 테니 '(코로나 때) 정보 부장'. - 학교에 남자 선생님이 없어서 '체육 부장'. - 2년 차면 충분히 할 수 있어! 그러니깐 '학년 부장'. 하는 일이 정말 실제로 벌어졌다.
1년차 때는 대학 동기들끼리 모여 '신규가 만만하냐!!!' 하면서 에헤라디야 술자리도 자주 가졌던 것 같은데... 한 해 한해가 지나고, 학교의 사정을 점차 알게 되면서, 점점 더 공포스러워졌다.
신규라서 일이 많았던 것이 아니라, 그냥 학교에 일이 (거친 꾸밈말) 많은 거였다.
업무의 양과 아이들에 대한 관심은 반비례할 수밖에 없다는 건 누구나 공감할 것이라 믿는다. 나름 신명 나게 굴려지고 있다 생각했지만, 그나마 내가 교직에 대한 찰나의 낭만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상대적으로 배려받았던 업무 때문이었던 것이다.
다른 직업군의 친구들과 한창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한 번쯤 꼭 듣는 질문이 있다.
"선생님들은 수업 끝나면 뭐해? 심심하지는 않아?"
그러니깐 말이다. 대학생 때 내가 했던 최고의 착각이기도 하다.
'수업 끝나고 나면, 수업준비 하겠지?'
공교육에 종사하고 있는 대부분 선생님들의 진짜 직업은 '교사'가 아니라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교육이 업무에 약간 포함되어 있는 '공무원'이라는 말이 훨씬 더 정확하다. 사람들은 선생님들도 회사원처럼 일을 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믿기 힘들어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도 몰랐는데 뭘.
그래도 나는, 아직도 '가르치는 공무원'이기 보다는 '교사'이고 싶다. 미래에 '교사'가 될 거라는, 정말 그나마 남아있는 최소한의 한 줄기 낭만이 지켜졌으면 좋겠다. 3월 2일, 1년에 한 번 간신히 느낄까 말까 한 그 낭만을 조금 더 자주 느낄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