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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마흔 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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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리 Dec 17. 2022

마당 있는 집으로

나는 초등시절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에서 자랐다. 작은 잔디밭에 대추나무가 있고 항상 개 1~2마리가 있었다. 집 뒤엔 트램펄린과 달고나 아저씨가 자리 잡은 너른 둑이, 집 앞엔 아이들이 가득한 골목길이 있었다.

이제 둑은 도로로, 동네는 아파트 단지로 변해 버렸다. 우리 가족은 아파트, 빌라 등 다가구 주택에서 줄곧 살았다. 결혼 후, 나와 내 자녀도 마찬가지였다.

천정부지로 솟아오르는 집값과 이사 문제로 고민하던 중이었다. 나는 아이가 킥보드를 타고 좁은 건물 기둥 주위를을 달릴 때마다 안전사고가 나지 않을까 불안했다. 코로나19로 집에만 머물면서 좁은 하늘과 높은 건물들이 유난히 답답하게 느껴졌다.  

내 마음을 알게 된 남편이 지나가다 보았다는 동네를 추천했다. 아파트 단지와 산이 어우러진 곳이었다. 집 앞엔 길게 뻗은 산책로가 있고 우리가 방문한 집 거실에선 산자락과 탁 트인 하늘이 보였다. 학교도 가깝고 서울 내곽이라서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했다.

'와!'

부모님은 왜 굳이 거기까지 가느냐고 못마땅해하셨다. 솔직히 나도 낯선 동네에 발을 들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없지 않았다. 다니던 병원에서 멀어지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나는 영화 <라스트 홀리데이(Last Holiday, 2006)>를 떠올렸다. 영화 속에서 의사의 오진으로 자신이 시한부라고 착각한 주인공 조지아는 죽기 전 가장 가보고 싶었던 호텔을 찾아간다. 그녀는 당당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가 거울 속 자신에게 말한다.

"넌 정말 운이 좋았어.
원하는 걸 모두 가지진 못했지만.
그래도 다음엔 다르게 살자.

좀 더 웃고, (We'll laugh more,)
좀 더 사랑하고, (we'll love more.)
세상을 구경하는 거야. (We'll see the world.)
두려워하지만 않으면 돼(We just won't be so afraid.)"

'용기를 내자. 후회하더라도 살아보고 후회하자.'

나는 이사를 결정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매일 달라지는 노을, 연분홍 꽃잎 날리는 봄, 초록이 가득한 여름, 붉고 노란 그라데이션으로 물든 가을, 새하얗게 뽀득거리는 겨울 모든 날이 좋았다.

교통, 쇼핑 편의성, 투자 가치, 학군 등 세상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거주 조건 못지않게 내게 의미 있는 충분조건이 있었음을 확인한 셈이다.

나의 의견을 존중해 준 가족에게 감사하고, 용기 낸 나를 칭찬한다. (쓰담쓰담)

우리집 '마당'이 된 넓은 산책로, 아들아 지금을 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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