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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 little kitty Sep 03. 2021

외향성과 내향성

사람이 아닌 성격을 구분하는 하나의 기준

 초등학교 5학년인 딸아이랑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요즘은 매일 원격수업이라 학교도 가지 않는데 갑자기 왜 그러지? 무슨 일이 일어나려야 일어날 수도 없었을 텐데.

대개는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화를 내거나 엄마 탓을 하는 아이인데, 오늘은 수학 교과서를 펴 든 채 서럽게 울고만 있다. 나는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안아주었다.


 한참을 울고 난 딸이 얘길 한다.

"나는 다른 아이들처럼 빨리빨리 문제를 못 풀어. 원격수업으로 조별 과제할 때도 힘들어. 한 명은 너무 말이 많고 한 명은 아무것도 안하는데 나는 중간에 끼어서 내가 하기 싫은 과제를 맡을 수밖에 없었어.

코로나 전에는 쉬는 시간에 도서실에 가서 시간 보내는 게 너무 좋았는데, 이제 도서실도 못 가고 나는 맨날 교실에서 혼자야. 체육 시간에도 나는 혼자야.

난 내 성격이 바뀌었으면 좋겠어. 활발해서 주목받는 성격으로. 엉엉....."


내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잘 몰랐을 리 없다.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조용히 혼자 있거나 일부러 안 어울리는 시간이 더 많았고 늘 적응에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럼에도 자기 분량의 발표를 하거나 주어진 역할이 있을 땐 성실하게 잘해 나가는 아이라고 학교 선생님이 얘기해 주셨는데..

 마음 맞는 친구가 없는 학교에서 즐겁지 않을 거란 짐작은 했지만, 아이 입으로 직접 듣고 나니 내 마음도 무거워진다.


 얼마 전 딸아이는 원격수업에서 담임 선생님 주관으로 약식 MBTI 검사를 했다. 총 21명의 학생 중 내향형은 우리 아이를 포함해서 3명이었다. 특히 우리 딸은 INFJ로 나왔다고 하는데, 전체 MBTI 중 가장 드문 타입이란다. 나는 MBTI 신봉자는 아니지만, 내가 내향형이라는 건 안다.

 18명 대 3명, 6 : 1의 비율이 아닌가? 이건 말할 것도 없이 외향형이 주도하는 학급이다. 1:1을 예상한 건 당연히 아니지만 6:1 은 충격이었다.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외향형으로 살아가고 있구나. 이 세계에서 내향형은 외국인까지는 아니어도 이방인 취급을 받을 수는 있겠다. 조용히 귀 기울여 듣는 아이보다 소리 높여 말하는 아이가 더 많은 세상에서 속도마저 느린 내향형의 우리 아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런데 오랜 기간 아이를 관찰하고 학교 선생님과 상담했던 내용들을 보면, 아이는 못 어울린다기보다 어울리고 싶은 순간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이었다.

나 역시 그러하기에 그 마음을 쉽게 알 것 같다. 친구를 사귀고 친해지려면 시간을 함께 많이 보내고 내 정서적 에너지를 타인을 위해 써야 하는데, 나와 내 딸은 그보다 좋아하는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것, 가만히 무언가에 집중하는 것, 생각하는 것, 아주 많이 친밀하고 안전한 상대와 시간을 보내는 것. 현실을 초월한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


내향형인 아이가 억지로 외향형으로 행동하면 일단은 좋은 평가를 받을지 모르나, 결국은 나의 에너지가 자연스럽게 흐르지 못해 화가 쌓이고, 내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을 것다.


 모든 성격은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한정된 공간에서 농사를 지으며 평생 살아가던 시대에는 굳이 외향적일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진중한 자세로 우주와 만물의 원리에 대해 공부하고 사유하던 선비들의 삶이 오히려 선망하는 성향이었을지도 모른다. 도시화, 산업화를 거치면서 외향적인 성격은 사교적인 삶을 살 수 있고, 목표 달성과 성취에 최적화되어 있어서 경쟁에서 살아남는 우월한 집단이 되었다.


 그러나 또 한 세대가 지나 외향형이 너무 우세해진 지금, 과도한 사교성과 경쟁의식은 집단 내 갈등을 유발한다. 조용히 귀 기울여 듣는 사람보다 한 마디라도 먼저, 많이 하려는 사람들 속에서 문제의식이나 진지한 성찰은 거리가 멀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의 초등학생들의 삶을 기준으로 볼 때, "외향성"은 선망의 대상인 것이 맞다.(특히 여아보다 남아에게 더 많이 요구되는 덕목일 것이다.) 어떤 아이가 쉬는 시간에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고 책을 읽는다면, <독서를 좋아하고 사색을 즐기는 아이>가 아니라 <뭔가 사회성에 문제 있는 아이>로 치부되기 쉽다.


 우리는 성격을 논하기 전에 인격도 함께 논할 준비가 되어 있을까? 내향적인 우리 딸은 매 학년마다 선생님과 친구들로부터 '배려심이 많다'라는 이야기를 들어왔다. 선뜻 나서서 무리에 어울리지는 않지만, 자신의 행동이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거나 상처 줄까 봐 늘 노심초사하는 아이다. 먼저 나서진 않아도 자기 몫의 발표나 과제가 오면 미리부터 적어두고 최대한 잘 해내려고 노력한다. 자신을 공격하지 않는 한 타인과 절대 갈등을 일으키려 하지 않는다.


 대니얼 네틀의 <성격의 탄생>을 읽어보면, 성격은 5가지 기준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외향성, 신경성, 성실성, 친화성, 개방성이라고 한다. 작가는 사회성과 외향성을 동일시하는데 주의가 필요하다고 하며, 타인의 마음을 읽고 공감하는 능력은 친화성에 해당한다고 한다. 수줍음은 외향성 수치가 낮아서가 아니라 신경성 수치가 높기 때문으로 보았다. 이는 부정적 감정 시스템의 반응성이 높은 것으로 정체성 불안, 낮은 자부심을 갖게 되고 부정적인 일에 더 강하게 반응한다. 하지만 높은 신경성은 일종의 치료 요법으로 글을 쓸 수 있으며, 자신을 이해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의 영역에서 혁신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부정적 마음을 동기삼아 더 높은 성취를 이루는 이점을 가진다.


 이보다 우리 아이를 더 잘 설명하는 문구는 없는 것 같다. 결국 외향적이지 못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관건인 것이었다. 하지만 내향적인 아이의 부모 중 적어도 한 명은 내향적인 경우가 많고,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우울감과 열등감에 빠지기 쉽다. 아마도 성장과정에서 어른들에 의해 내향적 성격=부정적 의미,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아왔기 때문인지 모른다.  아니면 신경성 수치가 높아 자기 자신에 대한 기준이 높고 부정적 감정 시스템의 반응성이 높기 때문인가 보다.


 아이가 울만큼 울게 한 뒤, 다 얘기하고 나니까 기분이 좀 나은지 물어보았다. 속이 시원한 아이처럼 끄덕끄덕한다. 모든 것이 타인의 지시나 영향보다 자기 내부에서 결정되고 끝이 나는 아이다. 엄마 눈치 같은 건 안 본다. 이제 됐으니까 혼자 있겠다는 표정으로 딱 한 마디를 한다.


 "근데 배고파."


" 그래. 불고기 해 먹자."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이건 네 인생이지. 내가 불안한 마음을 가질 필요도 없고, 그냥 옆에 있어줘야겠지.


"지금 너의 그런 모습에 대해서 비난하거나 괴롭히는 친구가 있어?"

"아니, 없어."

"내년에 전학 갈 건데 거기 가서 그런 일 있으면 어떻게 하고 싶어?"

"말해야지. 하지 말라고."


이렇게 우리의 고민은 끝이 났다.


하루가 지난 오늘은 맑은 하루만큼이나 아이의 기분도 맑아 보인다. 6교시 동안 이어지는 지루한 원격수업이지만, 점심시간에는 기분 좋은 얼굴로 맛있는 밥을 먹으면서 논다.


휴,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내적 갈등이 많은 여자아이의 엄마다.

(내적 갈등이 조금 덜한 2학년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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