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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 little kitty Sep 06. 2021

수치심이란 어쩌면 밑 빠진 독 같은 것

혹은 구멍 난 가슴인지도

"다른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생각하겠니?"


우리가 흔히 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나는 엄마로부터 이 말을 참 많이 듣고 자다. 정리를 제대로 하지 못할 때, (엄마의 기준으로) 여자답게 행동하지 못한다고 할 때, 무언가를 제대로 하지 못했을 때, 혹은 느리고 남들보다 못해 보일 때.

 그 말이 참 듣기 싫었지만 나는 어쩌면 <그런 말을 들어도 싸다>라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마음속 깊이 구겨 넣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해 상담실에서의 어느 날, 나는 7년 만에 이사를 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를 처리하느라 많이 힘들었던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가느라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것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면서 일어난 일시적 위기였을지도 모르겠다.

 "저는 지금 너무 힘들고, 그냥 이 삶을 유지해 나가느라 고통스러운 순간을 끊임없이 겪어야 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저는 그냥 편하게 놀면서 사는 사람이에요. 제 인생은 늘 그랬던 것 같아요. '네가 없는 게 뭐가 있냐?' 그런 말을 많이 들었지만 저는 편하고 멋져 보이는 제 삶을 유지하기 위해 늘 발버둥 쳐요. 억울하기도 하고, 감당하기 힘들기도 해요. 도대체 왜 그럴까요?"


"네, 그런 좋아 보이는 삶을 산다는 것이 본인을 무엇으로부터 지켜주나요?"


나는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은 늘 옳고 그 결과 최선의 삶을 살게 된다는 긍정적 피드백 시스템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삶이, 사실은 부정적 가치를 피하기 위한 도망이었나?

"무엇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남들이 보기에 좋은 삶을 살기 위해 힘들게 노력하지 않아도 돼요."

선생님은  내가 깨달을 때까지 보통 2-4회를 기다려 준다. 신기하게도 질문을 받으면 집에 와서 삶을 살다가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번엔 정말 어려웠다.


 내가 무엇을 피하고 싶어서  열심히 살았던 걸까.

다음 회를 갔을 때 나는 나름의 답을 준비해 갔지만, 상담 선생님은 다른 답을 제시했다.

"수치심은 마음속 아주 깊은 곳에 있을 수 있어요."

"수치심이요?"


  사실 수치심 자체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감정으로 나쁜 것이 아니다. 수치심은 우리가 부족하고 유한한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감사하게 만든다.

 그러나 수치심이 정체성에 전가되고 나면 우리가 실수할 수 있고 도움이 필요한 인간임을 가르쳐 주었던 건강한 수치심은 어느새 자신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해로운 수치심으로 바뀌고 만다.

 자신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사람은 이런 사실을 참을 수가 없어 이를 만회하려고 거짓된 자기 모습을 만들어 세상에 내보인다. 거짓된 모습으로 포장하기 시작하면 참자기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진정한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John Bradshaw, <수치심의 치유> 중에서


수치심의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어 찾아본 책에서 발견한 새로운 단어는 해로운 수치심이었다. 부모를 자랑스럽게 하지 못해서, 다른 아이들보다 발달단계가 조금 늦어서, 키가 크지 않아서, 예쁘지 않아서, 날씬하지 않아서, 공부를 잘하지 못해서, 가진 것이 많지 않아서 우리가 느꼈던 감정들은 성인이 된 이후 느끼는 단순한 열등감이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뿌리 깊게 박힌 해로운 수치심이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부모님으로부터 충분히 배부르게 사랑받고 싶었고 그러려부모를 자랑스럽게 해야 했기 때문이다. 부모를 자랑스럽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아이는 성실하고, 자신의 미래를 잘 가꾸며, 능력 있는 아이로 보이기 쉽다. 단기적 성과가 뛰어나고 사회에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정말로 내적 동기가 건강해서 그런 아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 내 또래 혹은 그 이전 세대들에게는 "남들이 너를 어떻게 보겠니, 어떻게 생각하겠니?" "남보기 부끄러워서 살겠니."라는 말과 시선을 수없이 받아왔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양육 문화는 대개 그랬다. 내 아이의 정서나 부모 자식 관계보다는 불특정 다수가 나를 어떻게 보는지 또 그 아이를 어떻게 보는지가 더 중요한 순간이 많았다.

 

 이런 문화에서 부모를 충분히 자랑스럽게 하지 못한 아이나, 자랑스럽게 했으나 앞으로 남은 삶에서도 끊임없이 그것을 요구받는 어른의 마음은 마치 밑 빠진 독과 같다. 그 마음의 최종 목표는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훌륭한 성취를 이루고 부모와 내 가문을 자랑스럽게 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나에게 가장 중요한 대상으로부터 어린 시절 충분한 사랑과 비교 없는 인정을 받고 싶었. 그랬기에 그 결핍은 우리의 마음에 강한 열망과 상처를 남겼고 "자랑스럽지 못한 아이"라는 수치심은 가슴에 구멍을 낸다.


 나의 큰 딸은 내 수치심을 극도로 자극하는 아이였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그렇게 느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예민하고 까다로운 기질 때문에 어딜 가든 적응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유치원 선생님, 학교 담임 선생님과 상담하는 학기 초가 내게는 늘 두려움의 시간이었다. 모든 것이 느렸고 힘들었다. 노력은 배로 하는데 늘 제자리였고 나는 슬펐다. 아이가 예민한 감각 때문에 괴로울 때, 새로운 환경과 변화에 적응하지 못할 때 스스로 느끼는 무력감은 나에게 고스란히 전염되어 <엄마로서 무능하고 무력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해 주어야 할 것은 많지만 늘 부정적인 면부터 반응하는 아이는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 무섭다. 힘들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피아노를 열심히 배워서 콩쿠르에 나가는 것, 영어를 열심히 해서 말하기 대회에 나가는 것, 학원에 가서 레벨테스트를 받고 유명한 학원에 다니는 것, 발표회 때 돋보이기 위해 다양한 방과 후 활동에 참여하는 것 등등. 우리 아이는 이 모든 것에 관심이 없었다. 엄마들이 아키운 보람을 느끼고 다른 이들의 부러움을 사는 이런 사건들은 내게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둘째 아이를 낳고 보니 닮은 면도 있었지만 큰 아이와는 달랐다. 전반적으로 적응이 빠르고 쾌활하 사람들과 잘 어울렸다. 어른이 보기에 칭찬 들을 만한 행동을 하기 위해 애쓰는 아이였다. 유치원에 보내 놓으면 언제나

"적응도 잘하고 교사가 보기에 너무 예쁜 아이다. 친구들에게도 잘한다. "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렇게 되면 엄마의 방은 두 개로 나누어질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방, 미워하는 방으로 아이를 각각 넣어놓고 웬만해선 꺼내 주기 힘들다. 나의 구멍 난 가슴, 수치심 때문에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모든 불행의 근원은 미워하는 방에 들어간 아이의 몫이 되어 버린다.


 학교에 입학한 첫 해, 큰 아이의 마음에 차곡차곡 쌓여 가득 찬 분노와 슬픔이 터지던 날 나는 힘들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건 물리적으로 엄마가 옆에 있어준다고 바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무더운 여름날 학교로 픽업을 가서 아이를 데려온 나는, 더운 날씨에 불편한 교복을 입고 괴로워하는 아이를 몰라주고 공원과 도서관으로 향했고, 아이는 차에서 내리지 않고 크게 화를 내며 버텼다.


 그날은 밑 빠진 독이, 구멍 난 가슴이 유난히 휑하게 드러나는 날이었나 보다. 나는 남들 보기에 자랑스러웠던 직장을 걷어차버린 빈털터리였고, 아이는 남들 보기에 부끄러운 행동을 하고 있었다. 나의 밑 빠진 독에는 물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그 공원 앞에서 차를 세우고 자살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랑 같이 죽어야 하나, 나 혼자 죽어야 하나. 지금 내가 차도로 뛰어들면 아이는 누가 데려가지? 경찰이 올까?


불행인지 다행인지 차는 한참 동안 오지 않았다. 그곳은 원래 한적한 도로였고 나는 자주 그곳에 주차를 하고 공원과 도서관을 들렀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곳을 지날 때면 예쁘게 핀 꽃들을 보며 생각한다. 나를 죽고 싶을 만큼 힘들게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이의 행동이었을까, 나의 어린 시절부터 조금씩 생겨나 가슴 시리게 한 수치심이라는 구멍이었을까.


아이들을 쪼개진 방에 넣지 않고 포용하려면 나의 가슴에 난 구멍부터 막아야 한다. 밑 빠진 독에는 아무리 물을 많이 부어도 늘 부족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더 많이 노력해서 물을 길어와야 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놀랍게도 수치심이라는 구멍을 막는 길은 수치심을 인정하고 표현하는 것이라고 한다. 내가 수치스러운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타인에 의해서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브래드쇼는 이것을 <수치심의 외면화>라고 불렀다. 어린 시절 타인으로부터 내면화된 수치심을 그냥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다.

 아직도 내 마음속에는 외면화되지 못한 해로운 수치심이 남아 있다. 하지만 어떤 방법으로 처리해야 할지 알기에 나는 두렵지 않다. 아이는 앞으로 학년이 올라가면서 점점 더 많은 도전 앞에 놓일 것이다. 매번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수치심을 걷어내고 보니 우리 아이는 참 예쁘고 잘하는 것도 많은 특별한 아이였다. 내 마음의 눈은 라식수술이라도 받은 것처럼 다르게 보인다. 나는 오늘도 서로 너무나 다르지만 각자 사랑스러운 두 아이를 키우며

가슴에 난 구멍을 메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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