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weet little kitty Aug 11. 2021

이마고에 대하여

심연의 고통체를 통해 이마고를 알게 되다.

 내가 살면서 매우 견디기 힘들어하는 일이 두 가지 있다면, 하나는 저녁 식사 때 피곤해서 힘들어하는 남편을 마주하는 것과, 또 하나는 남편 등 가까운 사람과 다툰 후 밤에 혼자 있어야 할 때이다. 오늘은 첫 번째 사연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이번 주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남편은 저녁식사에 매우 늦거나 말없이 밥만 먹고 일어나 쓰러져 자는 패턴을 반복했다. 물론 그럴 만큼 피곤했을 테고, 집에 오면 하루 종일 사람과 부딪히며 말을 나누어야 했던 피로감으로 혼자 핸드폰을 보거나 쓰러져 자는 것은 여느 집 가장과 다를 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게는 이러한 장면이 큰 고통이자 두려움이라는 것을 결혼한 지 10년도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먼저 이마고에 대해 논해야 한다. 원래 이마고란 분석심리학자인 칼 융이 제안한 용어로 '이미지'에 해당하는 라틴어이다. 그는 어떤 대상의 원형 이미지에 대해 이 용어를 사용했지만 최근에는 부부치료에 많이 사용되는 개념으로, 배우자를 선택할 때 무의식에서 자신의 이성 부모와 닮아 있는 사람을 선택하여 어린 시절의 상처를 극복하고자 한다는 이론이다. 딸에게는 아버지가, 아들에게는 어머니가 배우자의 원형 이미지, 즉 이마고라 할 수 있다.


 이마고의 관점에서 보면, 나는 아버지를 매우 미워했으므로 남편은 외모도 성격도 반대인 사람과 결혼했다고 10년째 믿고 있었다. 하지만 매번 반복되는 같은 패턴의 갈등을 보면 남편은 아버지와 중요한 부분을 닮은 사람이었다.


 어릴 때 기억하는 내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웃는 얼굴로 퇴근한 적이 없었다. 늘 집에 오면 배가 고파서 갓 지은 밥을 드셔야 했고, 적성에 맞지 않는 은행 업무에 언제나 우울해했으며,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힘든 일은 없는지 물어보는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나에게 아버지의 정서적 이미지란 타는 듯한 목마름과 속이 쓰리도록 아픈 굶주림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하루는 아버지가 지극히 기분이 좋지 않음을 느꼈다. 저녁을 같이 먹는데 엄마는 상을 차리느라 바빠서 아버지, 나, 동생 이렇게 셋이 먼저 밥을 먹고 있는데 아버지의 기분을 좋게 하고 싶어 알면서도 재잘재잘 떠들었다. 아버지는 처음엔 무시하더니 결국엔 조용히 하라며 소리를 지르고 밥상을 엎어 버렸다. 늘 그렇듯 이런 일이 있으면 엄마는 아버지를 이해해 주라며 곤란한 표정을 지을 뿐 나를 적극적으로 위로해 주지 않았다. 나에게 그 날 보다 고통스러운 장면은 없는 듯하다. 이제는 이사를 떠나온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그 30평 아파트의 거실이 너무나 생생하게 떠오르고,  둘째 딸이 남편의 무릎에 앉아서 다정하게 노는 모습을 보면 흐뭇한 마음 대신 뜨거운 서러움과 질투가 올라오는 것을 느낄 때, 나는 이마고가 무언지 알게 되었다. 나는 지금 마흔이지만 아직도 9살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지고 있구나.


 나의 시계는 자꾸만 9살 그 시절로 간다. 남편이 피곤한 얼굴로 밥상에 앉으면 긴장감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어떻게든 남편의 기분을 좋게 하려고, 웃는 표정을 보고 싶어서 다정하게 말도 걸어 보고, 어깨도 주물러 주고 어서 가서 쉬라고 하지만 내 마음속은 온통 불안이다. 이쯤에서 아빠가 소리를 질렀고 밥상을 엎었는데, 지금 내 딸들의 아빠도 똑같은 패턴을 보이지 않을까. 어떻게든 이번 생에는 다른 아빠를 집에 들이고 싶다. 퇴근하면 웃으면서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아빠를...


 그러다 보면 내 신경은 극도로 피로해져서 남편이 마음에 들지 않는 어느 순간 폭발해 버린다. 나는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같은 감정과 피로도가 누적되어 있었는데, 내가 기다리는 그 편안한 순간이 목요일에도 오지 않았다. 분명 오전만 일하고 오후는 쉬는 날이기에 저녁을 함께 먹을 수 있는지 물어봤는데, 남편은 "일곱 시 반에 같이 먹자"라고 출근 때 얘기했던 것이다.


 오전 일이 끝나고 남편은 오후 3시쯤 전화해서 내게 쇼핑하러 같이 가겠냐고 했다. 어제 남편에게 오늘 오후 반차 때 혼자 시간을 보낼 건지 미리 물어보았고 그러고 싶다고 했던 터라 다른 약속을 잡았었다. 그래도 전화해 준 것이 나름 고맙기도 하고 안쓰러워서 "난 괜찮으니 모처럼 쉬는데 충분히 시간 보내다 와"라고 이야기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밤 9시 반이 될 때까지 남편은 연락이 없었고 나는 처음엔 2주 만에 반차를 즐기는 남편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나중에는 자존심의 문제로 전화하지 않았다.


 9시 반에 전화가 와서, "애들은 뭐해? 나 지금까지 야구 보느라고...."라는 남편의 말에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 충분히라는 것이 오후 2시경부터 자유시간으로 코스트코에서 쇼핑하고, 7시 반에 저녁을 먹자고 했던 이야기는 다 잊어버리고 9시 반에 전화를 해도 상대방이 저녁을 먹었는지, 아까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변명은 한 마디도 없었다.


 "아까 충분히 쉬다 오라며. 내가 같이 있자고 나오라 할 땐 넌 운동 간다 했잖아. 그리고 저녁 먹으러 오라고 전화도 안 했잖아?"

이건 뭐 나를 같이 있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 만드는 재주가 있구나. 난 그저 가족으로서 1주일에 한 번 정도는 예측할 수 있는 시간에 따뜻한 저녁을 함께 먹고 싶었을 뿐인데. 그렇게 목요일 하루 저녁으로 월, 화, 수요일의 어두웠던 기억을 지우고 싶었는데.



 이제 나는 독일의 한 심리치료 학자가 <고통체(pain body)>라고 정의했던 심연의 트라우마를 꺼낼 수밖에 없다. 온몸이 아프고 뜨거운 서러움이 또 올라온다. 이렇게 살다가 죽게 될 거야. 매일매일이 똑같을 거야.

 나의 문제점은 여전히 남편을 두려운 아버지로 보고, 처음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해 가며 아양을 떨다가 결국엔 폭발하며 미워한다는 것이었다. 어떤 특정한 시점에서 반복적으로.



 약 하루 동안 이 아픔이 진행된다. 나는 이제 감정의 파도를 그냥 타기로 했다. 거센 파도가 몰려올 땐 그냥  파도에 몸을 맡겼다가 잠잠해지면 벗어 나오는 것이 안전하고 현명한 방법이라고 한다. 감정에 맞서려고 하면 더더욱 압도되며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기억과 감정과 감각이 뒤인 고통체를 온전히 느끼면서 가기로 했다. 하루가 지나면 조금 낫다. 남편의 얼굴을 볼 수 있게 되고, 남편은 몇 시간만 지나면 내가 불같이 화를 내며 했던 가시 박힌 말들을 다 잊고 나를 안아준다.


이 바보 같은 일들을 죽을 때까지 몇 번이나 더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파도를 타다 보면 언젠가 내 것이 될 수도 있을 거라 믿는다. 언젠가 고통체의 크기는 점점 작아지고 통제할 수 있게 되리라 믿으며.


10여 년 전 내 결혼식에서 어린아이처럼 울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의 나는 냉소적이었다.

'뭐 해 준 게 있다고 우는데? 마주 앉아 계신 시아버님 죄인처럼 만들지 말고 그만 좀 그치지.....'

내 마음은 그랬다. 나는 울지 않았다.


그 마음이 진심이었다는 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야 들게 된 생각이다. 물론 아무도 그 속은 모른다. 본인이 아닌 이상에야. 하지만 나는 이제 그것이 후회이자 자기 성찰이라는 걸, 그리고 진심이라는 걸 믿게 되었다. 아빠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멈춰야 내가 현실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걸 아니까. 그래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분노를 원망으로 쏟아내는 것이 아니라 9살 어린 그 아이를 다독이고 슬픔을 함께 해 주는 시간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그리고 하나씩 그 과정을 밟아간다.


이전 02화 불안의 심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