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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 little kitty Aug 11. 2021

불안의 심리

비합리적 수준의 불안에 대하여

 남편이 안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욕실과 드레스룸으로 진입하는 미닫이문이 닫혀 있으니, 아마도 저 문을 닫고 샤워를 하러 들어갔으리라. 시간이 길어지고 샤워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문을 열고 확인하고 싶어 지지만, 차마 그러질 못한다. 남편이 죽어있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누가 들으면 미쳤다고 하겠지만 나는 갑작스러운 사고나 질병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상상을 자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마치 나의 운명인 듯 슬프지만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나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비합리적 수준의 불안이란, 저 상황에서 문을 열고 확인하지 못하는 불안을 뜻한다. 내가 상상하는 장면이 있을까 봐 무섭기 때문이다. 하지만 확인하지 못하는 상황에도 나는 물속에 잠겨가듯 숨이 막히고 공포에 질린다. 합리적 불안이라면 걱정될 때 확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트라우마와 연관된 불안이란 늘 이런 식인 것 같다.

 


 나의 부모님은 정확히 만 67세에, 3년 간격으로 질병으로 돌아가셨다. 두 분 다 갑자기 생긴 암이나 사고가 아니라, 내 나이 10살 무렵부터 시작된 만성질환으로 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다가 떠나셨다. 의사가 되고 싶지 않았으나 기회가 주어지자 주저 없이 선택했던 건, 엄마 아빠에게 보탬이 되고 싶었던 마음과 더불어 나의 불안을 전문 지식에 기대어 해소해 보고자 하는 마음이었다는 걸 후에야 깨닫게 되었다. 실제로 엄마 아빠에게 도움을 주었던 건 나보다는 남편과 내 스승님, 그리고 처음 뵈었지만 동료로 여기고 최대한의 친절을 베풀어 주었던 여러 선생님들이었지만 말이다.


 때문에 남편이 아프기 시작하면 나의 불안은 고통이 되고 공포가 되고 화가 되고 싸움으로 이어진다. 왜 그리 건강관리를 못하고 알코올 섭취, 무분별한 체력소모, 과식을 하는 거나며 어느새 나는 남편을 공격하고 있다. 사실 남편은 매우 건강한 편이다. 가끔 크게 배탈이 나기는 하지만 나아지고 있고, 체력 분배를 잘 못해 쓰러져 자는 정도. 남편은 본인이 아프면 내가 육아를 혼자 담당해야 되니 짜증을 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나도 그런 줄 알았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코로나 백신을 맞고도 후배와 한 잔 하러 간 남편에게, 나는 전화로 또 거칠게 화를 내고 있었다. 한참을 이야기하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백신 맞고 열나는 건 예상된 반응인데,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일인데, 왜 나는 본인이 의사임에도 이 상황을 이토록 두려워하는가. 사실 알코올 섭취는 백신 효과를 떨어뜨릴 순 있지만 부작용을 극대화시킨다는 증거는 없다. 일시적으로 근육통을 덜 느낄 수는 있을 테고, 숙취 때문에 조금 더 힘들 수는 있겠지만 자기 몸은 자기가 제일 잘 아니 한두 잔 마셨을 테지.


 나의 불안은 남편이 살면서 단 한 번도 아프지 않기를 바란다. 적어도 내가 보아온 한 가장이 건강을 잃는다는 것은 주기적 수입이 끊어질 것을 걱정해야 하고, 아프다는 이유로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쌓였던 어른들의 분노가 한 번에 터져 나오며 이사, 이민, 이혼 등 '이'로 시작하는 단어들이 줄 서서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튼튼해 보이지만 건강을 해칠 것 같은 행동을 자주 하는 남편이 내 곁에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만약 남편이 금욕적인 생활을 하면서 본인 건강을 끔찍이 챙기고 한 번도 아프지 않다면 나의 불안은 사라질까? 아니다. 불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는 것이 불안이다. 그럴까 봐 불안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불안이 추구하는 것은 불안에 빠진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을 인지하고 극복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의 무의식은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끝없이 노력은 반복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이런 에피소드를 겪으면서 남편은 나에게 고통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말해주는 것이리라.

"괜찮아. 아프면 약 먹으면 되고, 하루 지나면 나아. 다음엔 너무 불안해하지 않아도 돼."


(덧붙이자면, 남편은 고혈압 뇌경색의 가족력이 있어 두통이 있을 때면 본인의 고혈압을 걱정하며 불안에 휩싸인다. 혈압을 재고 지속적으로 높으면 약을 복용하면 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선뜻 재지 못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게 내가 준 스트레스 때문이라며 나를 탓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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