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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 little kitty Aug 26. 2021

쓰레기통에 버려진 아이

-살아있어 줘서 고마워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골목을 서성이던 주민이 다가간 곳은 식당 앞 작은 음식물 쓰레기통.
그 안에서 탯줄도 떼지 않은 신생아가 힘겹게 울고 있었습니다.
수건 한 장 걸치지 못한 알몸 상태였습니다.
[시민/신생아 최초 발견 : "(아기가) 들어있을 거란 상상도 못 했는데, 유기됐다 하더라도 아무것도 보자기나 이런 거에 싸여있던 게 아니어서 마음이 아팠죠."]

 경찰이 인근 CCTV 등을 통해 밝힌 아이의 유기 시점은 지난 18일 오전 8시.
무려 사흘 가까이를 비좁은 쓰레기통에서 버텼습니다.
몸 곳곳에 난 상처 부위에선 괴사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심한 탈수 증상까지...
아이를 본 의료진은 "생존 자체가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8/25 KBS 뉴스 “쓰레기통에서 3일”… 유기 신생아 ‘기적의 생존’ (kbs.co.kr)


 설거지를 하면서 뉴스를 듣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신생아가 가장 취약한 것이 체온 유지인데, 비록 추운 겨울은 아니지만 감싸지 않은 알몸으로 버틸 수 있었던 건 쓰레기통 안이었기에, 그래서 다행이었다고 해야 할까? 행인이 발견하지 못했거나 듣고도 그냥 지나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래도 숨을 쉬고 살아 줘서 참 고맙다. 소리 내어 울어줘서 정말 고맙다.



그런데 파도처럼 흔들리는 이 마음은 뭘까? 

내가 모든 아동학대 사건, 신생아 유기 사건에 눈물을 보이는 건 아닌데, 왜 유독 이 뉴스에는 눈물을 쏟았을까. 가만히 생각해 본다.


 엄마로부터 들었던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 중에, 기억은 나지 않으나 여러 번 상상해 본 사건이 하나 있었다. 내가 태어나서 돌 무렵까지 살았던 작은 아파트에는 딱히 용도가 없는 방이 하나 있었는데, 어느 날 밤 내가 너무 심하게 울어서 엄마 아빠가 지친 나머지 나를 그 방에 잠시 넣어두었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아이가 없어서 큰일 났다고 경찰에 신고해야 하나 어쩔 줄 몰라하다가 어젯밤에 거기에 두었던 것이 생각나서 들어가 보니 잘 자고 있더란다. 이 이야기는 내가 얼마나 부모를 힘들게 하는 아이였는지, 그리고 엄마에게 얼마나 첫 육아가 힘들었는지, 그리고 엄마는 너무 놀랐지만 나는 멀쩡히 잘 자고 있어서 다행이었다는 에피소드 정도로 들렸다.


 그런데, 내가 살면서 가장 견디기 힘든 두 가지 순간 중 하나가 바로 <밤에 누군가와 다투거나 멀어진 후 문 닫힌 공간에 혼자 있기>라는 것을 알게 되자, 불현듯 그 사건을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누구나 상대와 다투고 나서 홀로 있으면 마음이 힘들 것이고 특히 밤이라면 더더욱 뒤숭숭하겠지만, 내가 느끼는 몸의 반응은 다르다. 심장 박동이 주체할 수 없이 빨라지며 온몸에 기운이 빠지고,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곧 죽을 것 같다. 이 고통을 멈출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창문에서 뛰어내리고 싶을 정도다.



결혼 전엔 자취를 하면서 혼자 살았으니 디폴트 값이 혼자였고 그 시간에 누군가와 다툴 일도 없었는데, 결혼 후엔 늘 집에 누군가가 있음에도 힘들 땐 혼자여야 했던 순간이 있었다. 다투고 난 뒤 잠시 각자 생각해 보는 시간마저도 나에겐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상대에게 다가가서 다툼을 지속하거나 매달리는 일이었다. 갈등이 있는 상황에서 나는 잠시도 혼자여서는 안 되었다. 반면 나는 내가 느끼는 고통을 명확히 알아채거나 표현하지 못했다. 그저 이 모든 고통이 상대의 잘못에서 기인했다고 비난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면, 자취를 하던 전공의 시절에도 나에게 갇힌 공간은 있었다. 바로 병원의 계단이었다. 밤 당직 때 동료와의 업무 갈등으로 울던 날이 생각다. 나는 그날 함께 일하는 동료의 개인적 사정 때문에 당직 순서를 바꿔 주었는데, 순서를 바꾸어 주는 대신 내가 요청했던 사항이 지켜지지 않았고 나는 그 사실을 밤 10시가 넘어서야 알게 되었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업무에 아무런 지장 없이 넘어갔지만, 나는 의견 조율 없이 내 요청이 무시되었다는 생각에 왈칵 눈물이 났다. 무언가 끈이 떨어지고 버려진 느낌이었다. 7층 신생아실에서 8층 당직실로 올라오는 계단에서 내가 지나온 문이 닫히는 소리가 철컥하고 들렸을 때, 나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계단에 앉아서 정신없이 한참을 울기 시작했다.




 대학병원의 계단으로 진입하는 문은 대개 중문으로 되어 있고, 문도 무거운 편이다. 그래서 계단에서 소리를 질러봤자 병동에서는 거의 들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바깥 세계와 단절된 느낌을 받았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죽도록 울었다. 밤 1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동료에게 전화를 걸었고, 받지 않자 음성 메시지로 절규하는 원망의 목소리를 남겼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병원 밖에 있는 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한참 동안 하소연을 하고 울고 난 뒤에야 정신을 차리고 당직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나에겐 갇힌 공간에서 누군가와 연결되지 못하면 죽음이라는 느낌이 있었나 보다.




 생각해 보니 오랜 기간 만났던 남자 친구와 헤어져야겠다고 결심한 것도 그 계단에서였다. 일하다가 힘든 날이 있어 8층 계단에서 전화를 했는데 11층에 있는 그가 못 오겠다고 했다. 일이 바쁘면 기다리겠다고 했지만 그는 끝내 오지 않았다. 나는 한참을 울다가 11층으로 달려가서 남자 친구가 사 준 목걸이를 던지고 이별을 통보했다.

 지금의 남편을 좋아하게 된 것도 그 계단에서였다. 역시 힘든 일이 있어 그 계단에서 울고 있을 때 남편의 얼굴이 떠올라 전화를 했고, 남편은 병원 밖에서 30분 안에 달려왔다.

 



 나에게 그 무렵 힘든 일은 주로 7층 신생아실에서 있었고, 나는 일을 마무리하고 8층 당직실로 올라오면서 반드시 그 계단을 통과해야 했던 것이다. 내가 열고 지나온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나는 블랙홀 같은 공간에 갇혀서 무기력과 공포에 떨면서도, 감정과  몸의 반응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했다. 그리고 그곳을 떠난 지 10년 후에야 또 다른 공간에서 반복되는 트라우마를 통해 계단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과연, 그 한 번의 사건으로 내가 그렇게 되었을까?


 성인의 관점에서 보면 신생아는 고통을 느끼더라도 기억하지 못할 것 같지만, 인간의 뇌는 극도로 생존을 위협하는 공포를 느끼면 편도체에서 이를 본능적으로 각인시킨다고 한다. 훗날 비슷한 자극이 가해졌을 때 이성적 판단에 앞서 온몸으로 반응하고 도망가도록 만드는 것이 인간 생존의 본능인 것이다. 나에겐 비록 한 번의 사건이었어도 당시 백일 전후의 나이였고 밤새도록 일어난 일이기에 큰 충격이었을 수 있다. 혹은 아침에 잘 자고 있는 나를 보고 부모님은 다음에 비슷한 일이 있을 때 그 방은 아니더라도 조용한 곳에 혼자 내버려 두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게다가 나는 다섯 살까지 자다가 깨면 늘 큰 소리로 한참을 울었기에 엄마가 너무 힘들었다고 했는데, 이 사건과 연결 짓는다면 납득이 간다. 그 밤 동안 아마도 나는 영아의 수면 패턴상 자다 깨다를 반복했을 것이고, 깨어났을 때 아무도 없는 어둠이 무서워 이후에도 울었을 것이다. 다섯 살까지 울던 나를 멈추게 한 것은 공포와 트라우마에 대한 이해나 위로가 아니라, 우연히 놀러 오신 이모할머니의 불호령 같은 꾸짖음이었다고 한다. 엄마도 아닌 낯선 사람<다섯 살이나 된 아이가 아직까지도 철없이 울고 있는 게 말이 되냐? 또 그러면 정말로 혼날 줄 알아라 > 고 꾸짖는 걸  들은 나는,  고통을 표현해 봤자 더 큰 아픔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깨닫고 울기를 포기했을 것 같다.

 


 쓰레기통 속의 아기의 울음소리 처음에는 우렁찼을 것이다. 그러나 67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점점 끙끙대는 신음 소리로 바뀌었으리라. 나 역시 처음에는 큰 소리로 울었을 것이고, 뒤집기를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몸을 일으키거나 말을 할 수 없는 나이였으니 감옥에 갇힌 거나 마찬가지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살면서 사소한 말다툼 한 번 없을 수 없는 것이 가족인데, 나는 잠시도 스스로의 동굴에서 생각하고 진정할 시간을 허락하지 못해 번번이 남편과 크게 다투게 되는 상황을 극복하고 싶었다. 남편은 나와 반대로 화가 난 아내의 모습을 보면 진정할 수가 없어 더 화가 증폭되는 성격이었다.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을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에는 내가 의문을 가졌던 장면이 하나 있다.

 "이 사다리를 올려버리고, 되도록 빛이 들어오지 않도록 꼭 맞춰서 덮개를 닫아주시겠습니까?"

나는 잠시 할 말을 찾지 못했다.

" 여기, 이 캄캄한 구덩이 밑에 혼자 갇힌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직접 체험해 보고 싶을 뿐입니다."



구덩이에 기꺼이 들어가겠다는 인물 멘시키는 과거 동업하던 파트너의 탈세 문제로 감옥에 다녀온 일이 있는데, 400 여 일동안 독방에 감금되어 어둡고 좁은 곳에서 극도의 공포에 시달렸다고 했다. 그때를 기억해 보고 싶다는 그의 말이 나에겐 정신 나간 사람처럼 들렸다.


 "그렇게 무섭고 위험한 일을 도대체 왜 하는 거야? 감옥에서 나왔으면 잊어야지."라고 생각하면서도 이 대목을 뚜렷하게 기억했고 이제 나는 그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그 심정은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과거의 기억을 소환하여 지난날의 공포와 트라우마를 극복해 보고 싶었을 것이다.



 남편과 다툰 어느 날 밤, 나는 멘시키처럼 혼자 빈 방에 들어가서 바닥에 누워 보았다.

그리고 내가, 태어난 지 몇 달 되지 않은 아기라고 상상해 보았다.

나는 뒤집을 수 없다. 일어날 수 없다. 걸을 수 없다. 그리고 지금은 밤이고, 많이 울어 보았지만 아무도 오지 않는다.......



고통스럽지만, 신기하게도 이 공간에 조금 더 머무르고 싶었다. 20분 정도를 그렇게 누워서 가만히 있었다. 바닥에 붙어버린 통나무처럼.

그리고 그날 이후, 나는 조금씩 나아졌다.

숨 막히는 고통, 터질듯한 심장 박동, 팔과 다리의 무기력함, 온몸이 녹아내리는 느낌, 그리고 죽고 싶은 충동.

그 모든 것들이 서서히 옅어져 갔다.



아무리 노력해도 늘 제자리였던 서글픈 나의 트라우마가 그렇게 조금씩 치유되는 것을 보면서 너무나 놀라웠다. 그 어떤 의지도, 그 어떤 다짐도, 그 어떤 위로도 나의 공포를 잠재우지 못했는데 스스로 인지하고 그대로 느껴보니 조금씩 통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덕분에 나는 이후에 일어나는 남편과의 갈등과 다툼을 비교적 수월하게 극복해 나갈 수 있었다.



 이름 모를 청주의 신생아에게, 감히 무어라 말하기가 조심스럽다. 내가 울어준다 해서 아이의 고통이 줄어들 것도 아니고, 지금의 이 시간을 기억하는 것이 얼마나 고통일지 알기에 감히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 아이가 성장해서 캄캄하고 좁은 공간에 갇혀 있었던 67시간을 몸이 기억한다면, 부디 누군가가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다.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소리 지르며 다그치는 대신, 그 아이의 느낌을 물어봐 주었으면 좋겠다.  트라우마에 각인된 몸이 마음을 지배하고, 관계를 지배하고, 삶을 지배하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누군가가 불을 밝혀 주었으면 좋겠다.


아가야, 살아남아 주어 고맙고, 소리 내어 울어주어 고맙다.


지난날의 나 역시, 여기까지 잘 와 주어 고맙다고 말해 주고 싶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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