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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 little kitty Aug 31. 2021

비 오는 아침

-출근하지 않는 일상이 아직도 어색한가

 비가 아주 얄밉게 온다. 어제도 그러더니, 오늘은 우산을 쓸 정도다,

 작은 아이를 일찌감치 학교에 보내고, 남편을 태워다 준다. 차로 태워다 주기엔 민망할 만큼 가까운 거리지만, 비가 올 때 우산 쓰는 게 싫다며 한 두 번 데려다 달라더니 이젠 태워다 주면 좋아한다.


며칠 전에도 그랬지만, 내 차에서 내려서 터벅터벅 걸어가는 남편의 어깨가 조금은 처져 보인다. 자유분방하고 밖으로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남편이, 저 몇 평 남짓 진료실에 하루 종일 갇혀서 숨도 못 쉬고 일을 한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기다리는 분들의 분위기는 엄숙하고, 좁은 대기실은 금세 꽉 찬다. 모든 것이 원하던 대로 잘 되어 가고 자리를 잡아가고 번창하는 이 시점에 '내가 과연 행복한가?'를 고민하는 것은 사치일까?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커리어가 끊기지 않고 쌓여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길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정말로 불가피한 건강상의 문제가 아니면 30.40대에 직장을 쉬는 일은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3년째 본업 휴직 중이다. 처음엔 '너 아직도 일 안 해?' '그래 가지고 어쩌려고?'라는 시선도 많았지만 이제 내가 대꾸를 하지 않으니 존중해 주는 사람들도 생기고, 나의 재취업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얘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작년에 결막염으로 큰 고생을 한 적이 있었다. 눈의 통증이 심한 두통으로까지 이어져 평소 같으면 안 가고 버텼을 안과를 방문했다. 한참을 기다려 만난 안과 선생님은 웃으면서

"이거 결막염 아니고 포도막염이에요. 안압이 올라가서 두통이 온 거구요. 자가면역 질환 같은 거예요. 근데 뭔가 알고 오셨나요? 표정이 왜 자꾸 웃으시는 거죠?"라고 한다.


"제가 너무 무식했나 봐요. 실은 제가 몇 년 전에 선생님 옆 건물 oo병원에서 일했다가 휴직 중인데 당연히 결막염일 거라고 생각하고 버텼어요. 부끄럽네요."


" 아 그러세요? 그럼 다음번 오실 때까지 안약 잘 넣으시고 포도막염에 대해서 제대로 공부해 오세요.

근데, 아 정말 부럽다."


"........"


처음 느낀 상황이었다. 나와 잘 모르는, 딱히 경쟁하거나 비교할 필요가 없는 선생님은 나를 부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그 부러움은 진심이었고 어쩌면 지금 내 남편의 숨겨진 속마음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 부러운 휴직 기간 동안 끝없는 정체성 혼란에 시달리고, 돈을 벌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커리어가 끊기며 동료 집단에서 비공식적으로 소외되는 느낌에 시달리고, 경제 공동체인 남편에게조차 자격지심을 가지게 되는 못난 사람이었는데.


 브런치에 와 보니 나보다 훨씬 훌륭하신 분들도 필요에 따라 일을 내려놓고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지고, 무엇보다 그런 자신의 삶에 자신감을 가지고 이야기한다는 것에 감동받았다. 얼굴은 본 적 없어도 글을 읽으면 작가의 생각에 포근하게 안기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그렇게 살아도 돼'라고 말하는 듯한.


 아무리 내가 출근하지 않아도, 내게는 주어지는 루틴의 일들이 있다. 이 일들은 내가 하지 않으면 결국 돈을 주고 누군가에게 맡겨야 할 일이고 절대로 저절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 돈을 모으면 결국 내가 나가서 버는 만큼이 될 것이다. 아이들을 돌보는 일, 집안일, 남편이 사무직원을, 부원장을 두지 않아서 흘러넘치는 일들, 원장으로서 해야 할 자질구레한 일들을 소리 없이 나는 챙겨준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공무원과의 의사소통, 노무, 세무, 은행업무를 위한 자잘한 통화와 이메일, 서류 처리 역시 남편이 어려워하여 내게 맡겨두는 일들이다.


 가장 중요한 일은 예민하고 불안해서 늘 잘 흔들리는 세 식구에게 붙잡을 기둥이 되어 주는 일이다. 기둥은 딱히 성과를 내지 않아도 된다. 제자리에서 큰 감정의 동요 없이 그들이 손을 내밀 때 잡아주고 지켜봐 주면 알아서 자기 길을 간다는 것을 3년간의 전업주부 생활 동안 알게 되었다.


 직장맘과 전업맘의 경계는 없다고 봐야 할 것 같다. 확장한다면 퇴사 후 휴직자와 직장인, 또는 프리랜서와 회사원까지도. 시기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나는 그 경계를 쉽게 넘나들곤 했다. 우리 모두는 나의 정체성을 특정 구간에 묶어 두지 않아도 된다. 자꾸 구분하고, 차이를 두려는 것은 구분함으로써 얻는 이득이 있다고 판단될 때일 것이다. 나는 이 그룹에 있어. 너는 저 그룹에 있어. 그러니 우리는 다른 거야. 우리의 정보와 지식은 너에게 줄 수 없어.....


 분열을 넘어 통합으로 간다는 것은 모래알처럼 너와 내가 섞여 버리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내가 다르지만 어떤 지점에선 공통점이 있어 만나기도 하고, 그런 얼룩덜룩한 사회를 인정한다는 뜻이 아닐까. 그런 의미의 통합이라면 나는 언제 환영이다. 딱히 돈이 되지 않아도 좋다. 나는 지금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하고, 이 시간을 사랑하고, 무엇보다 내가 가장 넘기 힘든 나의 굴레를 넘어왔다는 점에 칭찬해 주고 싶다.


나는 출근하지 않지만 비 오는 날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또 다른 친구에게 카톡을 보내 본다.

 "비 오는 날 고생했지? 오늘 하루도 수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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