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뉴욕에서는 독립예술가협회의 전시가 열렸습니다. 자유로운 미술을 지향하며, 6달러만 내면 누구라도 작품을 출품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R.Mutt라는 작가가 시중에서 판매하는 남성용 소변기를 뒤집어 세워놓은 <샘>이라는 작품을 출품했습니다.
그러나 전시담당자들은 결국 <샘>을 전시하지 않았고 <샘>은 전시장 칸막이 뒤에 방치되었습니다. 자유로운 미술을 지향한다는 전시회에서조차 받아들일 수 없었던 논란의 작품을 출품한 작가는 마르셀 뒤샹(Henri-Robert-Marcel Duchamp, 1887–1968))입니다. 이 작품은 현대 개념미술의 첫 시작이 되었습니다.
뒤샹은 <샘> 이전에도 자신이 직접 만들지 않은 기성품(레디메이드)으로 이루어진 <자전거 바퀴>를 내놓았지만, 이번에는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R.Mutt라는 가명을 사용했습니다. R.Mutt는 변기제조회사인 Mott Works에서 따 온 것이라고도 하고, 프랑스어로 벼락부자를 뜻하는 Richard와 만화 Mutt and Jeff에서 영감을 얻었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전시담당자들은 이것이 뒤샹의 작품인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마르셀 뒤샹, 샘, 1917, 복제품 1964, 테이트 모던 미술관
그는 인물의 움직임을 포착하여 입체적으로 그린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No.2>라는 회화로 이미 미국에서 명성을 얻은 화가였습니다. 이 그림 역시 난해하지만, 변기를 뒤집어 서명하고 전시하고자 했던 <샘>만큼 충격적인 작품은 아니었나 봅니다.
마르셀 뒤샹,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No.2, 1912, 필라델피아 미술관
예술가의 손을 거쳐 고유한 작품을 직접 만들어내는 기존 미술과는 달리, 뒤샹은 타인이 대량생산을 통해 만든 물건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담은 <개념미술>을 시도했습니다. 그는 다다이즘을 대표하는 화가로, 다다이즘이란 1차 세계대전 이후에 나타난 허무주의를 바탕으로 한 예술운동입니다. 1914년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 앞에서 19세기 유럽인들이 발달시킨 과학과 예술은 오히려 절망과 불신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전쟁의 잔혹함, 비인간적인 실상을 눈앞에서 목격한 그들은 합리적 사고와 전통적 아름다움의 추구에 회의를 느끼게 된 것입니다.
다다이즘은 이미 만들어진 기준과 가치에 저항하며, 창조적으로 생각하기를 원했습니다. 뒤샹이 시중에서 소변기를 구입하고 작품으로 의미를 부여한 것은 '대량생산품도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저항이자 창조적 행위였습니다. 그는 "작가가 개념을 부여하는 행위 그 자체가 중요할 뿐, 직접 만들어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라고 주장합니다. 지금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이 명제가 당시에는 너무 큰 충격이었습니다.
뒤샹이 제작한 미니어처 휴대용 박물관입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 20여 점을 조그맣게 만들어 휴대용 가죽 상자에 사진첩처럼 넣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손실될 우려가 있었던 예술품을 이런 식으로 다시 하나의 예술로 만들어 낸다는 것은 뒤샹다운 아이디어였습니다.
마르셀 뒤샹, 휴대용 미술관(Boîte-en-valis). 1935-41. 뉴욕현대미술관
뒤샹은 변기와 같은 공산품뿐 아니라, 기존의 예술품에도 약간의 변형을 주어 자신의 작품으로 만들었습니다. 다 빈치의 모나리자에 수염을 그려 넣고 이상한 제목을 붙인 작품은 또다시 논란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L.H.O.O.Q, Mona Lisa with moustache,1919, 필라델피아 미술관
뒤샹은 노르망디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책과 그림, 악기, 체스 등을 다양하게 접하며 문화 활동을 즐기는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외할아버지는 사업가이자 판화가였고, 어머니 역시 그림에 재능이 있었지만 결혼 후에는 활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뒤샹의 아버지는 너그럽고 따뜻한 편이었지만 어머니는 냉담하고 무심한 편이었다고 합니다.
아동의 기질을 분류할 때 순응형(easy baby), 체제거부형(difficult baby), 대기만성형(slow to warm up)으로 나눕니다. 이 중 체제거부형 아이는 예민하고 까다로워서 정해진 틀에 갇히는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아동의 기질을 분류한 토마스와 체스(Alexander Thomas, Stella Chess)에 따르면 총인구의 약 10%에서 체제거부형이 태어나는데, 이들 덕분에 사회는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며 발전한다고 합니다. 당시 예술계에 이단아를 자처하며 새로운 변화를 시도한 뒤샹은 체제거부형이었을까요?
그는 여장을 하고 사진을 찍은 뒤 <엘로즈 셀라비>라는 이름을 붙여 부캐를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샘>으로 예술계에 반향을 일으킨 뒤부터는 돌연 체스선수로 전향하여 세계선수권 대회에도 출전했습니다.그의 어린 시절 꿈은 도서관 사서였다고 할 만큼 다방면에 재능과 관심을 보였습니다.
뒤샹이 <샘>을 내놓은 지 100여 년이 지났지만, 대한민국에서 새로운 사조를 이야기하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아 보입니다. 주변에 남들과는 다른 엉뚱한 생각을 하는 아이, 한 가지에 진득하게 몰두하여 빨리 성과를 내지 못하고 이것저것 시도하는 아이가 있다면 현대 개념미술의 창시자 마르셀 뒤샹을 한 번 기억해 주시면 어떨까요? '모난 돌이 정 맞는' 세상을 넘어서는 시대가 오기를 마음속으로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