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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 little kitty Oct 02. 2024

사물을 넘어 공간을 창조한 작가, 댄 플래빈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면 먼저 덜어내야 하는 걸까

안녕하세요?

오늘의 주인공은 형광등으로 빛의 예술을 창조한 댄 플래빈(Dan Flavin ,1933–1996)입니다.

 

 댄 플래빈은 형광등을 이용한 빛의 예술의 창시자입니다. 요즘은 빛을 이용한 현대미술작품을 흔히 볼 수 있지만, 댄 플래빈이 작가로서 활동하기 시작한 1960년대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의 작품을 보면 뒤샹의 <샘>을 보았을 때처럼 '아니, 이게 미술이야?'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무제(트레이시에게, 평생의 사랑을 기념하며), 1992, 구겐하임 미술관


 댄 플래빈은 1933년 뉴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1953년부터 미 공군으로 복무했는데, 1954년에는 한국 오산 공군기지서 기상정보를 수집하는 기상병으로 근무하기도 했습니다. 1956년 뉴욕으로 돌아간 댄 플래빈은 뉴욕 컬럼비아 대학에서 미술사를 공부했습니다.


 그는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우편물 업무를, 뉴욕현대미술관(MoMA)과 자연사 박물관에서는 경비원일을 했다고 합니다. 자연사 박물관에서 일하던 1961년. 그는 첫 번째 개인전을 열고 ‘아이콘’이라는 전등을 이용한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이후 플래빈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형광등’이라는 소재를 사용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개척했습니다. 캔버스에 물감을 여러 번 덧칠하거나 조각상을 만드는 등의 고된 작업 대신, 최소한의 재료와 형광등으로 작품을 만들어 낸 그는 <미니멀리즘>의 창시자로 불립니다.

 

"I like art as thought better than art as work. "

(나는 작품으로서의 예술보다는 사유로서의 예술을 좋아한다.)


뒤샹이 예술가가 부여한 의미, 개념이 작품이 될 수 있다고 했듯이 댄 플래빈은 사유로서의 예술을 주장합니다. 그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형광등을 통해 빛과 색채, 그림자가 어우러진 하나의 공간을 창조했습니다.



Site-specific installation by Dan Flavin, 1996, Menil Collection

괴테는 색채가 빛의 고통이라고 했지만, 댄 플래빈의 작품을 보면 빛과 색은 서로 어우러져 춤을 추는 것 같습니다. 프리즘을 통해 빛을 쪼개어 만든 무지개색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빛으로부터 흘러나온 색채가 공간에 흐르며 아름다움을 느끼게 합니다.


무제(나의 오랜 친구이자 동료 워드 잭슨에게), 1971, 구겐하임 미술관

 문득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가 생각납니다. 이 책의 작가인 패트릭 브링리는 미술사를 부전공한 어머니 덕분에 어릴 때부터 미술관에 자주 다녔습니다. 2008년에 암으로 투병하던 형이 죽자, 그는 <뉴요커>에서의 화려한 커리어에 회의를 느끼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10년간 경비원으로 일하며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했습니다.


 댄 플래빈은 공군에서 근무한 뒤 미술사를 배웠고, 미술관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며 작품을 구상했습니다. 그에게는 쌍둥이 형제가 있었는데, 1962년 폴리오(소아마비 바이러스)로 사망했습니다. 댄은 그의 죽음을 기억하며 첫 작품 아이콘 중 하나를 헌정했습니다. 브링리와 댄은 둘 다 형제의 죽음을 겪었고, 예술이 존재하는 공간에서 일했습니다. 브링리는 그것을 이야기와 책으로, 댄은 새로운 형태의 작품이자 공간으로 창조해 냈습니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홍수 속에서 어떤 이들은 미니멀리즘을 추구합니다. 사물이든 정보든 넘쳐나면 덜어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성인가 봅니다.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에서 자본주의가 꽃피기 시작하던 때, 댄 플래빈은 형광등이라는 소재에 집중하며 현대 미술계에 미니멀리즘을 창시했습니다. 메트로폴리탄의 경비원 브링리는 <뉴요커>에서의 완벽한 커리어를 버리고 미술관에서 고요히 하루 종일 서 있기를 택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는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무언가를 덜어냈지만, 결국 새로운 것을 창조했습니다.   


AI의 발달과 더불어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능력이 각광받는 시대입니다. 사실 예술가라면 어느 시대든 그렇겠지요. 댄 플래빈과 패트릭 브링리로부터 무언가를 창조하려면 먼저 덜어내야 함을 배웁니다. 오늘 여러분은 사물과 정보, 해야 할 일들의 홍수 속에서 무엇을 덜어내셨나요?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었을 때,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 울고 싶을 때, 나 자신이 갑자기 초라하게 느껴질 때 단순하고 아름다운 것을 보러 갑니다. 주로 집 주변의 작은 공원이나 풀숲을 걷습니다. 별 것 아니지만 나를 위로하는 방법입니다. 우리는 덜어내고 단순해질 때, 행복하고 창조적인 인간이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날씨가 부쩍 추워졌습니다. 따뜻하게 입으시고 가을의 아름다움과 함께 하는 하루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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