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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 little kitty Nov 29. 2024

라이언 갠더, 낙관적 종말을 말하다

벽장 속 쥐는 뭐라고 말했을까?

분-명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고 해서 갔는데 작품이 보이지 않습니다. 새하얀 벽면에서는 끊임없이 종알종알 말소리가 나옵니다. 이 미술작품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라이언 갠더, The End, 2020


영국의 현대미술가 라이언 갠더(Ryan Gander, 1976-)는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말하는 쥐 시리즈를 내놓았습니다. 흰 쥐, 갈색 쥐, 검은 쥐 이렇게 세 마리인데요. 각 작품에서 쥐는 벽에 있는 구멍에서 작고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관객이 무릎을 꿇고 귀를 기울이도록 유도합니다.


올 가을 송은 미술관에서 열린 피노 컬렉션 전시에는 말하는 쥐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The End, 검은 쥐가 소개되었습니다. 2층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소리로는 알 수 있지만 아주 가까이 다가가서 무릎을 꿇고 앉기 전에는 쥐가 보이지 않습니다. 목소리는 갠더의 막내딸이 직접 녹음한 것니다.


라이언 갠더는 영국 왕립 예술 아카데미 소속이며, 조각, 의류, 건축, 출판, 퍼포먼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현대 미술가입니다. 그 자신을 신개념주의자, Gander 주의자(Proper-Gander-ist), 아마추어 철학자로 정의하기도 합니다. 말하는 쥐는 특히 아마추어 철학자로서의 면모를 잘 드러내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라이언 갠더, the-talks.com

갠더는 골형성부전(Osteogenesis imperfecta, brittle bone disease)으로 인해 어린 시절 오래 입원했던 경험이 있고, 휠체어를 탑니다. 골형성부전은 뼈가 쉽게 부러지는 선천성 질환으로 골절, 골결핍, 보행 능력, 척추 변형 등 다양한 증상을 동반하게 됩니다. 갠더는 2006년 <Is this Guilt in you too?>라는 작품에서 각종 장애물, 막다른 길 등으로 이루어진 공간을 통해 장애인이 겪게 되는 어려움을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갠더는 자신이 장애인, 장애를 가진 예술가로 여겨지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신체적 어려움을 감추거나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사회적 편견에 저항하는 주체적인 사고방식과 태도가 부럽습니다.


갠더는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동화를 기억합니다. 옛날에 나이 든 부인이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부인은 주방의 벽에 난 구멍에 지폐가 끼워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부인은 신이 나서 돈을 뽑아 씁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지폐가 꽂혀 있는 것을 보고 '옳다구나' 하고 돈을 또 뽑아 씁니다. 더 많은 돈을 갖고 싶었던 부인은 구멍을 크게 뚫고 벽 뒤져 봅니다. 그러나 벽장 뒤에는 돈이 없었지요. 벽 뒤에 사는 쥐가 구멍으로 바람이 들어오는 것이 추워서 여자가 서류가방에 넣어둔 지폐를 물어와 구멍을 막았기 때문입니다. 부인은 자신의 돈인 줄도 모르고 더 많은 돈을 갖기 위해 구멍을 크게 뚫었지만, 정작 쥐는 지폐를 그저 바람 막는 용도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갠더는 '나는 다시는 뉴욕에 가지 않을 거야'라는 제목으로 동화의 한 장면을 표현합니다.


라이언 갠더, 2016, 나는 다시는 뉴욕에 가지 않을 거야


다음은 이 작품의 변형처럼 느껴지는 말하는 쥐 시리즈가 탄생했습니다.

첫 번째 작품인 예언자(The Prophet, 2018)에서는 1940년 영화 위대한 독재자(The Great Dictator)에서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에게 영감을 받은 연설을 이야기합니다. 두 번째 작품 I... I... I...(2019)에서는 쥐가 뭔가 중요한 말을 하려고 하지만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나는, 나는... '이라고 말을 더듬습니다. 마지막 연설의 제목은 <The End>로 , 쥐는 인류가 직면한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심오한 설교를 합니다. 마치 인류의 종말을 이야기하는 듯 하지만, 사실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하고, 세상의 문제에 귀 기울이는 것(Attention)을 통해 불가피한 죽음과 종말을 수용하도록 하는 내용입니다.


얼마 전 본 영화 <룸 넥스트 도어>가 생각납니다.

영화는 마치 <존엄사>를 통해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죽음 이전에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주인공 마사가 말기 암으로 투병하며 존엄사에 대해 고민하고 계획하는 동안, 친구인 잉그리드는 법적인 분쟁을 무릅쓰고 마지막을 함께 해 주기로 합니다. 어느 날 두 사람의 과거 연인이었던 남성이 잉그리드와 잠시 만나게 됩니다. 남성이 자신의 아들이 아이를 가진 것을 두고, 기후 위기로 절망적인 지구에서 더 이상 아이를 낳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한심해 합니다. 남들은 기뻐할 손주의 탄생을 두고 말이지요. 그러나 잉그리드는 "희망이 없는 게 아니야. 비극 속에서도 살아갈 방법은 얼마든지 있어."라고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반박니다.


갠더의 검은 쥐가 이야기하는 것도 어쩌면 이와 비슷한지 모릅니다. 세상에는 절망적인 일들이 많지만, 지구의 종말이 다가오더라도 우리에겐 시간과 세상의 문제에 귀 기울여 관심을 갖는 자산이 있기에 희망이 있다고 얘기하는 것이지요. 인간이 가장 더럽고 하찮게 생각하는 쥐가 낮은 곳에서 그토록 깊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놀랍기도 합니다.  


<The End>(2020)는 코로나바이러스가 발생하기 직전에 완성되었지만, 마치 코로나가 발생할 것을 알았던 것 같은 내용이기도 합니다. 검은 쥐는 이렇게 말합니다.

"시간은 정말 우리 시대의 주제 같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현재의 주제가 아니며, 미래가 오히려 우리 시대의 주제이자 가장 큰 자산입니다."

시간이 우리의 가장 큰 자산이라면 우리는 모두 공평한 자산을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벽에 난 구멍에 꽂힌 지폐가 없어도 우리는 이미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을 가지고 있네요.


눈이 많이 내리던 날, <룸 넥스트 도어>에 나왔던 제임스 조이스의 <죽은 자들>의 한 구절을 떠올렸습니다.


눈이 내린다. 살포시 부드럽게, 온 세상에, 마지막 종말을 향해 내려앉듯이, 산 자와 죽은 자들 위에 내려앉는 소리를 들으며 그의 영혼도 천천히 희미해져 갔다.


The Room Next Door


제임스 조이스는 눈 내리는 장면을 마치 지구의 종말처럼 묘사했습니다. 그러나 생생한 삶의 순간에 죽음과 종말을 떠올리는 것은 파괴적 공격성이나 비관적 종말론이 아니라, 오히려 삶을 뜨겁게 사랑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갠더의 검은 쥐처럼 말이지요. 눈이 가득 쌓인 고요한 밤에, 여러분도 삶과 죽음, 그리고 우리의 시간과 귀기울임에 관심을 가져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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