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런던의 한 박제품 가게에 들른 데미안 허스트는 해골 한 개를 구입했습니다. 1720-1810년 사이 사망한, 35세로 추정되는 유럽인의 해골이었습니다. 허스트는 해골의 모형을 뜬 백금 주형에 공업용 다이아몬드 8061개를 붙이고, ‘신의 사랑을 위하여’라는 제목을 붙였습니다.
그가 공개한 해골과 해골의 주물, 다이아몬드, 그리고 다이아몬드를 붙인 기술자들의 인건비를 합친 작품제작비는 약 340억 원이었지만, 그는 작품의 가격을 900억 원으로 책정했습니다. 제작에 들어간 비용보다 작품을 고안한 그의 아이디어가 2.5배 정도 비싼 셈입니다.
데미안 허스트는 현대 미술가 중에서도 그림 값이 비싸기로 유명합니다. 그는 일찌감치 찰스 사치(Charles Saatchi,1943-)라는 든든한 후원자를 만나 동물의 사체를 사용한 작품을 거침없이 내놓으며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그림 가격도 비싸지만, 동물보호단체나 일부 언론의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논란을 오히려 마케팅에 이용하는 그의 행보는 예술가의 능력인지 그저 상술인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찰스 사치(왼쪽)와 데미안 허스트(오른쪽), 영국 가디언지 기사
1988년 당시 학생이었던 허스트는 런던의 한 창고에서 친구들과 그룹전시회를 열었습니다. 이이름 없는 젊은 작가들을 지원한 사람은 유명한 컬렉터 찰스 사치입니다. 그는죽은 소의 머리를 파 먹는 파리떼가 들어있는허스트의 작품 <천 년>을 보고 다음 작품을 후원하기로 약속합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살아있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에 대한 물리적 불가능성>이라는 난해한 제목의 죽은 상어 표본입니다.
허스트는 상어가 많이 잡힌다는 호주의 우체국에 전화를 걸어 소액의 광고비를 송금하고 어부에게 죽은 상어를 주문하는 쪽지 광고를 냈습니다. 어부에게 주문한 상어의 비용은 6천 유로(약 900만 원)였고 포르말린에 담가 표본으로 제작한 작품의 가격은 5만 유로(약 7400만 원)였습니다. 허스트는 찰스 사치에게 제작 비용을 후원받아 작품을 만든 후, 5만 유로에 그에게 팔았습니다. 그리고 사치는 2004년, 미국의 컬렉터 스티브 코헨에게 이 작품을 800만 달러(약 140억 원)에 다시 팔았습니다. 사치가 허스트에게 지불한 가격의 190배 정도가 되는군요.
데미안 허스트, <살아있는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허스트는 젊은 시절 장례식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고, 그때 삶과 죽음에 관해 느낀 경험을 거침없이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루지만 허스트는 죽음을 미화하거나 어두운 면을 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냅니다.
상어는 죽은 채로 수조에 들어 있지만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보존되어 있습니다. 죽어도 산 것처럼 보이고, 포르말린 처리를 한 덕분에 부패하지 않고 견디는 모습을 그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이라고 한 것일까요? 그러나 제목과는 달리 상어는 시간이 지나면서 부패하여 죽음의 과정을 밟았고, 결국 새로운 상어로 교체해야 했습니다. 교체한 상어가 원본이라고 볼 수 있는지, 상어를 추가로 포획해야 하는 문제 등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메트로폴리탄에 전시된 작품은 교체된 상어입니다.
데미안 허스트를 보며 그와 대척점에 서 있는 한 화가를 떠올립니다. 살아생전에그림을 제대로 팔아본 적 없는 빈센트 반 고흐입니다.
고흐가 생전에 판매한 그림이 딱 한 점 있습니다. 바로 <붉은 포도밭>이라는 그림입니다. 고흐는 아를에서 고갱과 함께 작업을 하던 1888년,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행복했던 짧은 시간에 붉은 포도밭을 그렸습니다. 이 그림은 1890년 브뤼셀에서 열린 그룹 전시회에 전시되었는데, 이 그룹에 소속된 벨기에 화가 안나 보슈가 400프랑, 현재 가치로 2000달러 정도에 구입했습니다. 400프랑이면 당시 두 달치 생활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녀는 고흐와 친하게 지냈던 화가 유진 보슈의 누나로 동생을 통해 고흐에 대해 알고 있었고, 그림을 구입했지요. 그녀는 1906년 이 작품을 파리의 한 갤러리에 10,000프랑을 받고 팔았고, 작품은 1909년 한 러시아인에게 다시 팔렸습니다. 러시아 혁명 이후에는 국가 소유가 되어, 지금은 푸시킨 주립 미술관에 있습니다. 미술계에서는 이 작품의 보험가액을 8000만 달러, 약 1100억 원 정도로 평가합니다. 현재의 화폐가치로 환산해도 고흐가 처음 판매한 가격의 4만 배 정도 됩니다.
빈센트 반 고흐, <붉은 포도밭>, 1888, 푸시킨 주립 미술관
고흐는 자기 그림의 가치를 제대로 가늠하지도, 인정받지도 못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아를에서 화가 공동체를 만들어 개별화가가 그림을 판매한 이익을 사회주의 식으로 배분하려고 했습니다. 반면, 데미안 허스트는 자신의 작품에 제작단계부터 천문학적인 가격을 매기고 든든한 자본가의 후원을 받으며, 좋은 구매자를 만나는 것이 예술작품의 목표라고 말합니다. 시대적, 자본주의적 마인드의 엄청난 차이에도 불구하고 고흐와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들은 최고가에 거래됩니다.
저는 몇 달 전 국내에서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을 관람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전시 도슨트는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앞에서, "예술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실력이 아니라 '돈'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메디치 가문에서 막대한 자본을 투자했기에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 문화가 꽃필 수 있었던 것처럼, 영국에서는 허스트로 대표되는 young British Artist(yBA) 그룹에 대한 찰스 사치 같은 후원자와, <테이트 모던>이라는 국립 현대미술관을 필두로 한 국가적 지원이 있었기에 오늘날 영국의 스타 현대미술가들이 배출되고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좌) 데미안 허스트, 키스 미 킬 미. 우) 생명의 나무
물론 어떤 분야든 같은 조건이라면 재정적 후원이 넉넉할 때 발전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그러나 돈을 쓰는 것은 결국 인간의 마음이자 결정입니다. 화가의 잠재력과 예술의 가치를 알아보고 큰돈을 지불하기로 결정한 그 마음이 진짜 예술을 움직이는 동력은 아니었을까요?
비록 찰스 사치 같은 거물급 자본가는 아니지만, 고흐를 끝까지 믿어주고 물질적, 정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테오, 그리고 테오가 죽은 뒤 고흐의 그림을 처분하지 않고, 남은 인생을 바쳐 네덜란드의 무명화가를 세계에 알리고자 했던 테오의 아내 요한나는 메디치 가문 못지않은 강력한 후원자였습니다. 이름 없는 젊은 예술가에게 통 큰 투자를 했던 찰스 사치도 그렇겠지요.
<붉은 포도밭>을 400프랑에 팔고 기뻐했던 가난한화가 고흐의 그날을 상상하며, 예술을 움직이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