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weet little kitty Oct 30. 2024

번개를 기다리며, 월터 드 마리아

자연현상을 작품으로 만든 화가

 매년 2월 1일 0시가 되면, 이메일로 예약을 합니다. 예약에 성공한다면 5월부터 10월 사이, 150-250 달러의 비용을 내고 관람할 수 있습니다. 미국 남서부 뉴 멕시코 주의 사막으로 가야 하는데, 휴대전화도 잘 안 터지고 인터넷도 없습니다. 갑자기 아파서 병원이라도 가려면 차로 2시간 정도 걸립니다. 근처의 숙박시설에서 하룻밤을 자야 하는데, 간단한 식사는 주지만 쾌적한 시설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렇게 온갖 고생을 하고 갔는데 막상 작품을 못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미술작품이라면 여러분은 관람하시겠습니까?


 이 작품은 월터 드 마리아의 '번개 치는 들판'입니다. 월터 드 마리아는 1935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이탈리아계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다양한 분야의 책 읽기를 좋아했고, 음악을 좋아하여 드럼을 연주했습니다. UC 버클리를 졸업하고 회화 석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그는 록 그룹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전신인 더 프리미티브스에서 드러머로 활동한 특이한 경력이 있습니다.

 

월터 드 마리아, 1977, 번개 치는 들판, arthur.io/art


번개 치는 들판(The Lightning Field)’(1977)대지미술(Land Art, 또는 Earth Art) 작품입니다. 대지미술이란 자연환경 자체를 소재로 사용하여 만든 대형 설치 미술을 말합니다. 20세기 후반 미술계의 지나친 상업화에 대한 반발과 환경에 대한 관심 증가로 인해, 갤러리에서 판매하기 어려운 작품을 만드는 미술가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의 대지미술 작품은 대부분 철거되어 사진으로만 남아있지만, 드 마리아의 '번개 치는 들판'은 디아 아트 재단(Dia Art Foundation)의 관리하에 아직도 관람이 가능합니다.


황량한 뉴멕시코의 사막의 넓은 대지 위에 7미터짜리 스테인리스 봉 400개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평소에는 봉 사이를 거닐며 관람하다가, 비바람이 불면 봉에 내리치는 번개를 보는 것이 바로 이 작품입니다. 위의 사진처럼 번개가 만드는 모습은 마치 영화나 소설 속에 나오는 기괴한 장면을 연상하게 합니다.            


월터 드 마리아, Time /Timeless/No time, 2004, 나오시마 지추 미술관

가까운 일본의 나오시마 섬 지추미술관에 그의 다른 작품이 있습니다. <Time/Timeless/No Time>이라는 제목이 인상적입니다. 커다란 구가 있어 계단으로 굴러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데요. 옆에 놓인 금빛 기둥과 계단은 이 공간이 종교적 사원임을 상징합니다. 여기서 핵심은 천장에서 내려오는 빛입니다. 태양의 위치에 따라 빛이 바뀌며 공간의 모습도 변합니다. 시간에 따라 빛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변화를 관람하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그의 작품을 보며 생각합니다. 작가는 과연 번개 치는 단 한순간만을 위해서 이 작품을 만들었을까요? 그는 분명 관객이 날씨 사정에 따라 번개 치는 장면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근에 간이 숙박시설을 마련해 관람하게 한 것은 번개가 치는 장면을 보러 오기까지의 모든 여정, 봉만 있는 저 들판 모두가 작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번개 치는 순간이 이 작품의 전부라면 번개가 치지 않는 날은 그의 작품이 '무(無)'가 될 테니까요.


예술가의 작업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빛나는 한 순간이 최종 목적지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빛나는 순간을 손에 쥐지는 못합니다. 어쩌면 예술가만 그런 것은 아니겠지요. 그렇다고 클라이맥스만 편집해서 보여주는 연극은 없습니다. 빛나는 한 순간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우리의 삶이 곧 작품이고 연극이고 인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드 마리아는 일반 관람객에게 사진 촬영을 허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경이롭지만 비용을 받지 않는 번개라는 자연현상에 '저작권'을 보호해 준 셈입니다. 번개 치는 들판을 관람하려면 디아 재단에 예약을 하고 비용을 지불해야 하지만, '번개'에 대한 별도의 비용은 없습니다. 자연은 우리에게 너그럽게 공짜 예술을 허용해 줍니다. 조금만 걸어 나가면 만날 수 있는 우리 주변의 자연에게 경외와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 싶습니다. 아울러 빛나는 한 순간을 위해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모든 분들에게도 존경의 마음을 표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기승전결의 구조를 가진 연극이라고 믿기에, 빛나는 대목만 편집하지 말고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즐기시기를 바랍니다.



커버이미지: Walter De Maria, The Lightning Field, 1977. © Estate of Walter De Maria. Photo: John Cliett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