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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엽 절제술, 과연 치료였을까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by sweet little kitty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


개봉 1975.11.19.

장르 드라마, 범죄

감독 밀로스 포먼, 제작: 마이클 더글러스

출연 잭 니콜슨(맥 머피), 루이즈 플래쳐(수간호사)

원작 소설

러닝타임 129분

수상 : 48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작품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감독상, 각색상


감옥에서 뻐꾸기 둥지로 어온 남자


미성년자 성추행 및 폭행죄로 수감 중인 맥 머피는 감옥에서도 자주 말썽을 일으켜 정신 감정을 위해 주립 정신 병원으로 전원된다. 맥 머피는 개방병동 환자들과 함께 무기력한 병동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병동의 실세인 래치드 수간호사는 차갑고 매서운 눈빛과 논리적인 언어로 환자들을 통제한다. 병원이라기보다는 군대나 감옥 같은 분위기다. 요즘 병원의 의료진은 푸른색이나 초록색의 활동하기 좋은 유니폼을 입고, 필요한 경우 흰 가운을 위에 착용한다. 그런데 영화 속 정신병동 보호사들은 빳빳하게 다린 흰색 셔츠에 나비넥타이, 흰 바지를 입고 있다. 깔끔하고 단정하지만 따뜻한 돌봄의 이미지는 아니었다.



수간호사가 주도하는 정신치료 모임에서는 환자의 사례를 공유하고 토론한다. 그러나 치료라기보다 논리로 세뇌하는 절차에 가깝다. 맥 머피는 정신치료 모임이 프로야구 월드시리즈와 시간이 겹치니 시간을 바꿔 달라고 요구한다. 래치드 수간호사의 눈빛이 미세하게 떨리다가, 사안을 공정하게 투표에 부치자고 제안한다. 처음에는 환자들이 수간호사의 눈치를 보느라 과반수에 실패했지만, 다음 날 다시 하니 과반수를 넘겼다.


그러나 래치드 수간호사는 모임에 참여하지 못하는 중증 환자들도 병동 환자라며 과반수 미달을 주장한다. 이어 맥 머피가 그 환자들마저 포섭하자 이번에는 시간이 초과되었다며 거절한다. 겉으로는 민주적인 척하지만,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꼼짝할 수 없는 구조다. 맥 머피는 병동에서 방송 없이 직접 야구 중계를 하며 다른 환자들과 마음껏 소리를 지른다. 의료진은 이 상황을 오히려 맥 머피의 조절되지 않는 공격성의 표현, 병적인 증상으로 간주한다.


1962년에 발표된 켄 키지(Ken Kesey, 1935~2001)의 소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에서 ‘뻐꾸기 둥지’는 정신병원 또는 개인을 억압하는 사회를 상징한다. 한때 정신병원에서 근무한 경험으로 정신병원의 부조리를 그려낸 켄 키지는 퓰리처상을 받았고, 1975년 밀로스 포먼 감독이 동명의 영화를 제작했다.


맥 머피는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자인가


그러면 맥 머피는 정신질환자일까, 아니면 감옥을 빠져나오고 싶은 죄수일까. 맥 머피의 비행은 병적인 피해망상이나 환각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현실 검증 능력이 있고, 좋아하는 타인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을 줄 알며, 감정이 폭발하기 전에는 타협도 할 줄 알았다.


맥 머피의 첫 번째 일탈은 바다낚시였다. 특별감시 환자인 자신을 제외하고 모두가 공연을 보기 위해 외출하는 날, 그는 순식간에 운전석에 앉아 환자들과 달아난다. 배를 훔치다가 선주에게 걸리자 자신이 주립병원의 의사이며 함께 온 사람들은 모두 동료라고 거짓말한다.

하지만 맥 머피는 불안에 떠는 동료 체스윅에게 조종을 맡기고, 여자친구와 선실에서 밀회를 즐긴다. 바다낚시는 환자들을 위한 이타적 행동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나가서 놀고 싶어 그들을 이용한 측면도 있다.


흔히 사이코패스와 혼용되는 반사회성 인격장애는 조현병처럼 망상과 환각은 없지만, 파괴적 행동과 폭력성의 측면에서 비슷해 보일 수 있다. 맥 머피는 사회 규범을 자주 위반하고 거짓말을 잘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타인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디언 추장과의 관계에서는 공감 능력과 긍정적 애착 형성이 가능하다. 단순히 반사회성 인격장애로 보기에는 복합적인 심리다. 의학적 진단을 배제하면 억압적 통제에 반항하는 긍정적 개인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맥 머피는 사건 이후 폐쇄 병동으로 끌려가 전기충격술을 받는다. 여러 의료진이 그를 결박하고 머리에 전기 충격을 가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다. 당시 미국에서는 전기충격술이 무엇인지조차 몰랐던 이들이 이 영화를 통해 알게 되면서, 전기충격술에 대한 사회적 반감이 커졌다.



전기충격술을 받는 맥 머피

전기충격술(Electroconvulsive Therapy, ECT)은 뇌에 전기자극을 가해 경련을 유도함으로써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시술이다. 약물에 반응하지 않는 조현병, 심한 우울증이나 자살 충동에서 효과가 있다. 영화에서 보이는 것과 달리 오늘날에는 가벼운 마취와 근이완제를 사용해 안전하게 시술한다. 시술 전후의 기억이 일시적으로 저하될 수 있고 두통, 메스꺼움 등이 있을 수 있다. 심실세동이 동반된 심정지 환자에서 전기 충격으로 정상 심박동을 유도하듯, 정신질환에서도 필요한 치료법이다.


맥 머피의 두 번째 일탈은 병동에서 벌인 술판이다. 그는 당직자를 술과 여성으로 매수하고 병동을 밤새 엉망으로 만든다. 술파티까지는 진행되었지만,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빌리가 난리 통에 자살한다. 맥 머피는 빌리의 죽음을 두고 래치드 간호사와 몸싸움을 벌이고, 래치드의 목을 조른다. 그는 어디론가 끌려가고, 예전과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온다. 이마에는 수술 자국이 선명하다.


이마에 난 수술 자국은 무엇인가


1950년대 미국에서는 전두엽 절제술이 많이 시행되었다. 전두엽 절제술을 처음 시도한 사람은 포르투갈의 신경과 의사 에가스 모니스(Antonio Egas Moniz, 1899~1960)다. 1935년 예일대학의 존 풀턴은 공격적 행동을 보이는 침팬지의 전두엽을 수술로 제거하자 공격성은 사라지고 과제 수행 능력은 유지된다고 보고했다. 모니스는 이 수술을 사람에게 적용하기로 한다. 그는 신경외과 전문의가 아니었기에 리마라는 외과의가 두개골에 구멍을 뚫고 전전두엽 부위에 에탄올을 주사해 뇌조직을 파괴했다.


모니스와 리마는 류커톰이라는 막대 형태의 시술 도구를 개발해 첫해 20명의 환자에게 전두엽 절제술을 시행했다. 우울증, 조현병, 조증, 공황장애 환자들이 대상이었다. 수술 후 고열, 구토, 배뇨와 안구운동의 이상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사망 사례는 없었고 난폭함이 누그러졌다. 수술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모니스는 마땅한 치료법이 없던 정신질환을 수술로 치료했다는 공로를 인정받아 1949년 노벨상을 받았다.


에가스 모니스, 포르투갈에서는 자랑스러운 의사이자 노벨상 수상자였다

미국의 신경정신과 의사 월터 프리먼(Walter Jackson Freeman II, 1895–1972)은 모니스의 결과를 보고 신경외과 전문의 제임스 와츠(James Winston Watts, 1904–1994)와 함께 표준화된 수술법을 만들어 미국에서 전두엽 절제술을 시작했다. 수술은 ‘burr hole’이라 불리는 두개골의 구멍을 확보해야 했기에, 제대로 된 수술실과 신경외과 의료진이 필요했다.


당시는 2차 세계대전 직후로, 미국에서는 참전 군인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와 뇌손상으로 인한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직 정신질환에 효과적인 약물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전이었다. 주립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은 정부 예산을 축내며 특별한 치료도 없이 수용되어 있었다. 게다가 주립 정신병원에는 신경외과 전문의나 수술 시설이 충분치 않은 경우가 많아 전두엽 절제술 시행이 어려웠다. 프리먼은 신경정신과 의사인 본인이 직접 할 수 있는 경안와 전두엽 절제술을 고안했다. 용어는 거창하지만 얼음송곳처럼 생긴 잔인한 도구를 안구 위쪽의 얇은 뼈를 통과해 넣고 휘저어 전두엽을 손상시키는 방식이었다.


그는 마취 대신 전기충격술로 환자를 진정시켰다. 수술실도 필요 없었고, 입원 없이 외래에서 시행했기에 10분이면 충분했다. 시간과 비용을 아낄 수 있는 간단한 시술이었다. 와츠는 프리먼이 수술실 무균 원칙을 지키지 않았고 외래에서 치료를 했다는 이유로 경안와 전두엽 절제술에 반대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끝났고, 프리먼은 홀로 전국의 주립 정신병원을 돌며 시술을 이어갔다.


좌) 초기에 사용했던 류커톰 우) 미국의 월터 프리먼이 사용했던 경안와 류커톰(Orbitoclast)


경안와 전두엽 절제술은 1949년에 약 5,000명, 1951년에 약 18,000명이 시술받았다. 출생 시 저산소증으로 발달지연과 감정 기복, 충동성을 보였던 케네디 대통령의 누나 로즈메리 케네디도 전두엽 절제술을 받았다. 그러나 로즈메리는 수술 후 오히려 운동과 언어, 지능 영역에서 현저한 기능 저하를 보였다. 프리먼에게 시술받은 다른 환자들도 언어구사 능력, 감정표현, 자발성과 판단 능력이 저하되었다. 시술 후 감염, 뇌전증, 사망 사례도 속출했다.


1954년 조현병 등 정신증 증상에 효과적인 클로로프로마진이 상용화되면서 전두엽 절제술의 효용과 비윤리성이 강하게 비판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소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가 발표된 1960년대 초반에도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시행되었다.


맥 머피가 머물던 병동에는 체격은 크지만 가장 무기력해 보이는 환자가 있었다. 맥 머피가 ‘추장’이라 부른 아메리칸 인디언이다. 켄 키지의 소설에서는 1인칭 화자 브롬든이지만, 영화에서는 추장이라고 불리며 조용한 존재로 등장한다. 그는 듣지 못하고 말도 못하는 행세를 하다가 어느 날부터 맥 머피와 은밀히 대화를 시작한다.


소설 속 브롬든은 인디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로, 10년 전부터 주립 정신병원에서 지내고 있다. 그는 자신보다 크고 강했던 아버지가 ‘그들’에 의해 알코올에 중독되어 서서히 죽었다고 말한다. 그의 침묵은 인디언을 차별하고 괴롭혀 온 백인 사회에 대한 조용한 저항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맥 머피의 저돌적 반항과는 상극이지만, 부조리한 사회를 향한 개인의 저항이라는 점에서는 뜻을 같이한다.


추장 브롬든은 함께 탈출하자는 맥 머피에게 처음에는 자신 없다고 했지만, 수술 후 무기력해진 맥 머피를 보고 탈출을 결심한다. 가장 무기력해 보였던 사람은 분노와 힘을 얻었고, 가장 반항적이었던 사람은 무기력해졌다. 추장은 맥 머피를 ‘이대로 두고 갈 수 없다’며 베개로 질식시켜 죽이고, 병원 유리창문을 깨고 밖으로 탈출한다. 이 장면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이대로 두고 갈 수 없다’는 말은 맥 머피의 육체 대신 영혼이라도 탈출시켜야 한다는 생각일 수 있다. 일부 아메리칸 인디언 전통에서 사람은 죽은 뒤 영혼이 살아 있는 이들 곁에 머물거나 자연에 깃든다고 믿는다. 한편 그토록 반항적이고 정신질환도 없었던 맥 머피가 무기력해진 모습은 병원이 얼마나 강력한 권력인지를 드러내는 증거로도 읽힌다. 그래서 차라리 그를 죽이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을 가능성도 있다.



전두엽을 잃으면 더 이상 내가 아닌 걸까


전두엽은 실행·조절·판단을 담당하는 컨트롤 타워다. 회사로 치면 CEO에 해당한다. 다양한 감각을 받아들이고 감정의 영향을 반영해 판단하며, 충동과 본능을 억제하는 기능이 전두엽에 있다.


1848년 미국 버몬트주 철로 공사 현장에서 다이너마이트가 폭발하는 사고가 있었다. 당시 작업하던 25세 청년 피니어스 게이지(Phineas P. Gage, 1823–1860)의 머리를 1미터 길이 쇠막대가 관통했다. 게이지는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그러나 평소 온순하고 성실했던 그는 사고 후 화를 참지 못하고 충동적이며 곧잘 싸우는 성격으로 변했다. 논리적 사고와 예측, 판단 능력이 사라져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했다. 동료들은 그가 더 이상 게이지가 아니라고 말했다. 결국 그는 직장에서 해고되어 쓸쓸히 여생을 보내다가 뇌전증으로 사망했다.


1994년 아이오와대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게이지의 두개골을 3차원으로 재구성해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에 손상이 있었다고 발표했다. 전전두엽은 전두엽의 앞쪽 영역으로, 의사결정, 전략 수립, 사회적 행동 조율, 언어 발화, 성격 등 전두엽의 핵심 기능을 담당한다. 전두엽은 ‘나’를 나답게 하는 가장 중요한 영역이라 할 수 있다.


게이지는 사고로 전두엽이 손상되었지만 오히려 충동성과 공격성이 증가했다. 프리먼의 경안와 전두엽 절제술을 받은 환자들은 정서적 둔감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일부에서는 충동 조절 실패로 오히려 공격적으로 변한 경우도 있었다. 뇌의 특정부위를 정확히 겨냥한 정위 수술이 아니었기에 환자마다 결과와 부작용의 범위가 달랐다. 1977년 미국에서는 전두엽 절제술의 극히 제한적 시행을 지지하는 보고서가 나왔고, 1980년대 이후 전두엽 절제술은 사실상 사라졌다.


피니어스 게이지, 워렌 해부 박물관(Warren Anatomical Museum)


인류는 20세기에 각종 감염병을 치료하는 항생제를 개발했고, 마취 의학의 발전으로 외과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반면 정신질환 영역은 1950년대 중반까지 이렇다 할 약물이 없어 발전이 더뎠다. 정신의학계는 어떻게든 효과적인 치료법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환자에게 무엇이 최선인가’를 묻기보다 ‘질병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치료할 것인가’를 먼저 두면, 의료진은 비합리적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모니스와 프리먼은 전두엽 절제술을 주도했지만, 두 사람 모두 외과 수련을 받지 않았고 수술의 위험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


프리먼의 경안와 전두엽 절제술은 정신질환자를 장기간 수용·관리하는 비용을 100배 이상 줄여 주었다. 정부는 공격적 환자 통제를 통해 사회 안전을 도모한다는 명분과 의료비 지출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실리를 동시에 취했다. 결국 전두엽 절제술은 치료라기보다 통제의 수단이 되었고, 환자에게는 공격성이 줄어드는 대신 전두엽 기능 상실을 초래한 반인권적 치료법이었다. 프리먼의 의무기록 중에는 “환자를 가정용 반려동물로 만들어 집으로 돌려보낼 수 있는 방법”이라는 문구가 남아 있어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tv N, 벌거벗은 세계사

밀로스 포먼 감독은 체코 출신으로 사회주의 국가 체코슬로바키아의 민주화 운동 ‘프라하의 봄’을 겪은 뒤 미국으로 건너가 정착했다. 그는 사회주의 체제를 풍자한 영화로 체코에서 출국금지를 당한 적도 있다. 어쩌면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정신병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개인을 억압하는 사회적 통제에 대한 서사로도 해석할 수 있다.


젊은 시절의 풋풋한 잭 니콜슨은 이 영화를 위해 태어난 배우 같다. 맥 머피라는 반항적 캐릭터에 이만큼 어울리는 배우도 드물다. 사실 이 영화는 배우 커크 더글러스가 브로드웨이에서 원작 소설을 연극으로 올렸을 때 주인공을 맡았고, 영화화하기 위해 판권도 구매했다. 밀로스 포먼 감독에게 시나리오를 보냈지만, 당시 체코의 낙후된 우편행정 시스템 때문에 전달되지 못했다. 아들 마이클 더글러스가 판권을 이어받았을 때 마침 밀로스 포먼 감독은 미국으로 망명하게 되었다. 세대를 건너 성사된 제작자와 감독의 만남은 뛰어난 배우가 더해져 영화로 탄생했다. 정신 병원을 배경으로 억압적 사회와 권력을 은유하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197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요 5개 부문을 휩쓸었다. 수십 년, 어쩌면 수백 년간 웅크렸던 약자의 인권이 조명받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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