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님, 이번에 오는 고객님이 사장님 지인분이래요. 특별히 신경 좀 더 써달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요? 어느 쪽?”
“신랑 쪽이요.”
“알았어요. 잘해드려야지.”
유나는 신혼여행 패키지 상품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고객을 기다렸다. 곧이어 두 사람이 들어오자 유나는 앞으로 나섰다.
“혹시 박동현 님이랑 신현아 님이신가요?”
“네.”
“어서 오세요. 사장님께 얘기 들었어요. 이 쪽으로 들어오세요.”
유나는 웃으면서 두 사람을 데려가며, 특별히 신경 써야 하는 고객들을 위한 프라이빗 룸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행사에서 다루고 있는 신혼여행 관련 패키지 상품 팸플릿을 앞에 있는 테이블에 펼치며 유나와 두 사람은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여자 쪽에서 말을 하다가 자꾸만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팀장님, 혹시 우리 어디서 본 적 있나요? 왜 이리 낯이 익지?”
여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야기에 집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왜 그래? 나 중간에 잠깐 외출 끊고 나와서 얼른 들어가 봐야 해.”
남자가 여자의 가까이에서 소곤거렸다.
“응, 미안.. 근데 이상하게 자꾸만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김유나.. 김유나..? 앗!”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던 여자가 별안간 크게 소리쳤다.
“그 매장! 세탁기! 거기! 아, 혹시 신현욱이라고 알아요? 우리 오빠인데.”
“네?”
유나는 갑자기 튀어나온 이름에 화들짝 놀랐다.
신현욱.. 신현아.... 아, 둘이 이름이 비슷하네.. 근데 하나도 안 닮았는데..?
그런 유나의 생각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현아가 웃으며 말을 했다.
“제가 눈썰미가 좋거든요. 그래서 어지간하면 한 번 본 사람이라도 잘 잊지 않아요. 저랑 오빠랑 안 닮았죠? 오빠가 저보다 못생기긴 했어요.”
영문을 모른 채 현아를 바라보는 동현에게, 현아가 소곤거렸다.
“왜 있잖아, 전에 현욱 오빠한테 나 결혼 선물로 가전해달라고 해서 매장에 데리고 갔었는데, 어떤 여자분 보고 손 덥석 잡아서 깜놀했다고. 그분이야, 그분.”
맙소사. 그렇게 소곤거려도 저 다 들리거든요?
그나저나 현아의 말을 듣고 나니, 유나는 불쾌감이 치밀어 올랐다.
헛, 여동생이면서 나랑 통화할 때는 뭐? 결혼한다고? 하아.. 그때 내가 대충 물어봤었나? 아니 그럼 꼬치꼬치 캐물었어야 해? 지가 대답을 정확히 해줬어야지. 아놔 증말...
“현아야, 근데 나 시간 얼마 없어. “
어색한 미소를 지었던 유나는, 동현의 말에 다시 표정 관리를 하며 다시 이야기를 진행했다.
“더 고민해 보시고, 궁금한 사항 있으시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유나는 두 사람에게 깍듯이 인사하며 배웅했다.
그리고 참을 수 없이 답답하고 짜증이 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퇴근하자마자 현욱에게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했다.
카페에서 유나는 현욱을 보자마자 따지듯이 말을 꺼냈다.
“너 전에 통화할 때 매장에서 만났던 그 여자랑 결혼한다며? 근데 네 여동생이더라? 오늘 우리 여행사에서 예비신랑이랑 같이 고객으로 왔어. 뭐야, 너? 왜 거짓말했어?”
유나의 말을 들은 현욱은 낭패감으로 얼굴이 짙어졌다. 현욱은 선뜻 말을 꺼내지 못하고 주저하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미안하다.. 그때 널 속이려는 건 아니었는데.. 처음에는 나랑 왜 그렇게 헤어졌는지 몰라서, 오해였다는 걸 몰랐을 땐 왠지 화도 나고 그러면서 여동생인 걸 일부러 안 밝혔어. 그러다가 서로 오해가 있었다는 걸 알고 나서는 말을 해야지 생각을 했는데, 통화할 당시에는 ‘그런데 아까 나 결혼한다는 거 나 아니고 내 여동생이야.’ 이렇게 다시 말을 꺼내기도 쪽팔리고... 그래서 다음번에 정정해야지 하다가 이렇게 됐다. 미안.. 하다.... 내가 생각이 짧았어... “
현욱의 말을 들은 유나는 침묵했다. 그리고 한참 뒤에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꺼냈다.
“후우... 어쩌면 우리는.. 너무 과거에 얽매어 있는 것 같아. 벌써 시간이 10년도 더 넘게 흘렀는데, 우리가 기억하는 모습은 옛날 모습이잖아. 지금은 서로 많이 달라졌는데.. 과거의 기억에서만 끄집어 내오고, 자꾸 오해하고.. 고여있는 물 같아.”
유나는 현욱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과거는 그저 추억으로만 남겨뒀어야 했는지도 모르겠어. 너무 오래 질질 끌었었나 봐. 오해가 더 빨리 풀렸더라면 좋았을 테지만.. 나 그때 너 많이 좋아했어. 처음으로 누군가와 사귄 거기도 했고, 많이 서툴렀지. 근데 마음이 있다고 다 되는 건 아닌 것 같아. 지금은 그때랑 다르니까.”
유나의 고백에 현욱도 필사적으로 말했다.
“나도..! 너 많이 좋아했어..!! 늦었지만.. 상황을 이렇게 만들어 버린 내 탓이지만.. 미안하다.”
“아니, 우리 둘 그저 인연이 아닐 뿐이야. 너는 내가 인연이니, 운명이니 이런 거 좋아한다는 거 알아? 모를 거야. 시간이 한참 지났는걸. 나도 너에 대해서 모르는 게 너무 많은데 옛 추억에 기대서 이으려고 하니까 더 어긋나는 것 같아.”
현욱의 말을 들었지만 유나는 별다른 동요 없이 건조한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
“유나야.. 그럼 이제부터 서로에 대해 다시 알아가면 되지 않을까? 어긋난다고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는 오해하지 않도록 좀 더 솔직하게 말을 하면 되잖아.”
현욱은 간절하게 덧붙였지만, 그를 바라보는 유나의 표정은 허탈했다.
“근데 난 인연이라는 거 믿거든. 아무래도 지금의 우린 아닌 것 같아. 만약 정말 우리가 진짜 인연이라면.. 앞으로 다시 살면서 10년이 지나더라도.. 정말 인연이라면 그때 다시 만나 지겠지. 그럼.. 그때는 정말 솔직하게 대할게 나도. 여동생 일 끝나면 더 이상 너와 연락할 일은 없을 거야.. 먼저 갈게.”
현욱이 유나의 이름을 불렀지만, 유나는 앞만 보며 걸어갔다.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점점 그와 멀어지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