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제대로 헤어지는 방법 (1)

by 달해슬

서인은 은수에게서 건우 선배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진 전시회를 열고 있었다고, 그의 부탁으로 명함을 받았노라며 자신에게 전해주었다.

‘너 전화번호 바뀌었냐고 물어보는데 내가 대답을 못했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서. 어쩌면 너한테 전화할지도 몰라.’

은수의 말을 듣고 서인도 묘하게 긴장되었다.


건우 선배의 전화를 받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유나처럼 허탈한 기분이 들려나.. 이제 와서 어쩔 수 없지 싶을까.. 그도 결혼을 했으려나..

서인은 오래 전의 기억을 다시 떠올렸다.

...............

단 둘이 바람 쐬러 간 이후에 그가 자신에게 고백했다. 서인은 가슴이 벅차오르면서도 그가 인기가 많은 사람이라는 걸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에게 사진 동아리 사람들에게는 둘의 연애를 비밀로 하자고 했었다.


그리고 서인도 건우의 말처럼 함께 유학을 가고 싶었다. 같이 가자는 말에 얼마나 가슴 떨렸는지.. 그의 꿈을 믿었고, 자신도 그와 함께 행복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가장 존경한다던 그의 어머니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우리 건우랑 같이 유학 간다고 했다면서요?”


차분한 눈빛이지만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건우의 엄마는 서인에게 말했다.


“그런데 아가씨는 그거 알아요? 우리 집에서 건우 사진 배우러 유학 가는 걸 반대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예요.”

“건우 선배 아버님이 사진보다는 가업을 잇길 바란다고 하셨다 들었습니다. 선배 어머님까지 반대하시는 줄은 선배도 모르고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어머님, 건우 선배 정말 재능 있어요. 누구보다 사진에 대해서 열정적이고 감각이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도 다들 그래요. 선배가 더 큰 곳에서 제대로 배워오면......”

“하지만 우린, 그 아이가 사진은 취미로만 했으면 해요.”


건우의 엄마는 서인의 말을 끊었다.


“처음에 유학 간다고 했을 때는 설마 했어요. 그런데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걸 알게 된 후로 건우 아버지랑 많이 부딪히고 있어요. 유학에 관련된 비용은 일절 지원 안 하겠다고 말했지만, 건우도 상관없다며 강행하고 있고요. 나는 그 아이가 여기서 더 컸으면 좋겠어요. 사진이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러면 왜 저를 찾아오셨는지......”

건우 엄마는 뜸을 들이다 말을 꺼냈다.

“나는.... 우리 건우가 아가씨가 특별하다고 말을 하더군요. 짧은 시간에 마음이 많이 깊어졌다고요. 그래서 난 아가씨가 건우에게 유학을 가지 말라고 설득해 줬으면 좋겠어요. 아니 솔직히 난 아가씨가 같이 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건우가 유학을 가지 않고 사진의 꿈을 포기할 수만 있다면. 아가씨가 안 간다고 하면 분명 충격이 클 테니까.”


건우 엄마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이었다.


“그래도 지원 없이 맨몸으로 혼자 나가서 몇 년간 고생하고 성공한다면, 차선이지만 그것도 나쁘진 않아요. 그렇더라도 아가씨는 우리 건우 옆에선 없을 거예요. 혹시 알아요? 아가씨가 헤어져 준다면 건우의 유학비를 지원해 달라고 남편을 설득해 볼 수도 있어요.”

서인은 떨리는 두 손을 꼭 붙잡고 무릎 위로 내렸다.


“저는.. 선배의 꿈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어머님 눈에는 제가 많이 부족하겠지만, 그래도 선배를 좋아하는 마음은 진심입니다.”

서인이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건우 엄마의 차가운 눈빛은 변함이 없었다. 서인은 일방적으로 당해야 하는 자신의 모습이 부당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건우 엄마의 눈을 보며 순간적으로 입을 열었다.


“제가... 이 이야기를 건우 선배에게 말한다면요?”

“하, 그래요. 아가씨가 말할 수도 있겠지. 최악의 경우 건우는 우리와 인연을 끊겠다고 하고선 유학길에 오를 테고. 아가씨의 말이 건우와 우리 사이를 완전히 갈라버릴 거예요. 그게 정말 아가씨가 바라는 건가요? 그렇게 둘이서만 산다면 행복해질 것 같나요? 인생을 좀 더 오래 산 사람의 조언이라고 여겨요. 가족과 등 돌리고선 행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건우의 엄마와 헤어지고 나서 서인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우리 어머니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이셔.’


언젠가 건우가 자랑스러워하며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하던 때가 생각이 났다.


그런 어머니와 건우 선배의 관계를 완전히 망쳐놓고 몇 년간 유학길에 같이 오른다라... 과연 내가 그럴 수 있을까?


하지만 서인은 그렇게까진 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 역시 엄마, 아빠와 사이가 원만하지 않고, 때론 원망도 했지만 애증의 관계여도 가족은 가족이었다.

건우에게는 결국 이 만남에 대해 말하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갔다. 그러다가 서인의 아버지가 지병이 재발하면서 다시 쓰러졌다.


서인의 어머니는 대학은 졸업해야 한다며, 그래서 빨리 취업을 하면 된다고, 본인이 일을 하고 서인에게는 아버지 간병을 부탁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은 유학을 가려고 준비 중이었다는 말을 차마 꺼낼 수가 없었다. 밉다고 원망해도 이렇게 병들고 아픈 아버지를, 힘든 어머니를 모른 척하고 자신만 훌훌 털고 떠나버릴 수는 없었다. 선택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녀는 결심을 한 뒤 건우를 만났다.

“전 유학 갈 생각 없어요. 선배를 좋아하지만 유학은 좀 충동적이었어요. 부잣집이라 당연히 유학을 가면 지원을 받을 줄 알았어요. 근데 그게 정말로 아닐 줄은 어떻게 알았겠어요? 전 선배가 집에서 지원 못 받는다고,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일 구하면서 돈 모으니까 그제야 실감이 났어요. 이런 식으로는 같이 못 가요. 전 편하게 유학 생활을 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부자들의 안락한 생활을 같이 누리고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니 내가 갈 필요가 없잖아요. 가서 무슨 고생을 하라고요.”

충격을 받은 듯한 건우의 표정에 마음이 아팠지만, 모질어 지기로 했다. 어차피 서인은 함께 갈 수가 없게 되었으니, 그가 집안의 지원이라도 받아서 좀 더 수월하게 그의 꿈을 이루기를 바랐다.

“그리고 선배가 정말 사진에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요? 주변에서 우쭈쭈 해주니까 분위기에 취한 건 아니고요? 늦게 시작하잖아요.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면서요. 차라리 여기에 같이 있어요. 나중에라도 사진은 취미로 계속할 수 있는 거잖아요. 여기엔 제 미래도 있어요. 선배가 나를 좋아한다면 나한테 맞춰줄 수는 없어요? 꿈은 그저 꿈으로만 남겨두면 안 돼요? 그래도 선배는 살 수 있잖아요. 그거 못한다고 죽는 거 아니잖아요.”

“너는.. 내 꿈을 항상 응원해줘서 날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어.. 근데 너도 결국 돈이었던 거네. 내가 가진 배경 그거? 그건 내가 진짜로 가진 게 아니야. 너에게도 그런 게 없으면 난 아무것도 아닌 거였어.. “

“상처 받은 척하지 마세요. 선배가 진짜 고생이란 걸 해본 적 있어요? 가난을 겪어본 적은 있어요? 나처럼 살아본 적 없잖아요. 내 이야기 들으면서 공감이 안되었겠죠. 이해하는 척만 했겠지. 됐어요. 전 더 이상 할 말 없어요.”


서인은 건우에게 비수 같은 말을 꽂은 채 떠났고, 송별회 때에도 별 다른 말은 없었다.


그리고 그 뒤로 건우가 유학을 떠나는 날이 왔다. 그녀는 건우의 모습이 보고 싶어서 몰래 공항으로 나갔다. 멀리서라도 그를 지켜보고 싶어서. 그가 들어가는 순간까지 눈을 떼지 못했다. 그렇게 건우는 떠났고, 그녀는 한쪽 구석에서 앉아서 소리 없이 펑펑 울었다. 얼굴을 가린 채 하염없이 울기만 했었다.

................

지이이잉. 진동으로 바꿔놓은 핸드폰이 울렸다. 서인은 언제 흘러내렸는지도 모르는 눈물을 닦았다.

“여보세요?”

“서인이니..? 나야 건우.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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