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현재 혹은 미래
작년부터 시작한 신촌살이. 신촌에는 새파란 청춘들이 쌍쌍으로 많이 걸어 다닌다. 나에게도 분명 저런 시절은 있었으나 현재로 이어지는 인연이 아니어서 분절된 추억으로만 남아있다. 상관있는가. 뜻하지 않게 엎어지고 자빠지면서 얼기설기 살아왔지만 평생을 두고 아무 일도 없이 평평하게 살아온 것보단 담력이 키워졌을 것이다. 쟁여둔 배짱으로 남은 생에서 전반전보다는 내용 있게 살아봐야겠다.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며 사랑하는 상대가 있다는 건 개인적으로나 사회풍토상으로나 매우 긍정적인 일이다. 요즘의 청년들이 기성세대들에게서 좋은 꼴을 못 본 탓에 파트너를 찾는 것조차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는데 내가 사는 이 동네는 대학가라 그런지 훈훈한 짝꿍무리들을 일상으로 만나니 간접적으로 가슴차크라에 녹색의 에너지를 충전받는 듯하다. 하지만 한편으로 나의 주위엔 위성처럼 슬픔과 괴로움의 파장도 맴돌고 있다. 앞날이 창창한 후배의 죽음이나 오랜만에 전화가 걸려온 친구가 바람난 남편과 결혼생활을 끝낼 결심을 했다는 이야기 등등 우리 인생은 편하지 않다.
나도 모르게 최근의 독서는 내면을 향한 탐사를 주제로 한 서적들로 기울고 있었다. 공부가 필요한 때가 된 것이다. 여러 지혜와 정보의 바다에서 내가 건질 만한 전복이나 해초들을 따고 나를 정신 들게 하는 자양분으로 삼아 본다.
미숙했던 청년 ‘나’씨는 자유의 날개를 활짝 펴고 미숙에 미숙을 더하여 덜 미숙해짐으로 성장한다.
내가 선택한 험로에 누구를 탓하지 않고 내가 가진 반쪽, 반만으로 온전함을 도모한다.
속도를 측정하려니 위치를 알 수 없고 위치를 파악하려니 속도를 잴 수가 없다는 양자역학 불확정성의 원리는 그 뜻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인간 반편이 같아도 인생은 그대로 온전함을 가리키는 이론이 아닐까 하는 느낌이 든다.
세상에는 다층다양한 슬픔과 불행이 있고 주위를 돌아보면 자기 연민은 헛되다. 비록 헤어져 살았지만 대지의 공기를 나누었고 먼저 죽어지내고 뒤에 만날 관계도 있다는 것을 헤아려본다. 머나먼 사막에서 살아 돌아와 관에 든 채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면? 과거가 현재 앞에 소환되고 생각지도 못한 미래가 보이는 현재.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에 펼쳐지는 지금은 인생의 하프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