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와의 만남 후기
지난 토요일 여주 도자 비엔날레 부대행사로 마련된 강연회로 독자와 만나는 즐거움을 누렸다.
비엔날레의 이번 주제가 '몽테뉴의 고양이'라고 한다.
주제와 관련하여 비엔날레 기간 동안 반려동물 테마 작품이 전시된 공간 한편에
고양이를 주제로 한 그림책 서가가 놓인 '고양이 도서관'이라는 코너가 운영된다.
그 코너에서 나의 그림책 <묘생이란 무엇인가>를 주요 도서로 삼아 작가와의 만남을 기획했다.
학교나 도서관에서의 워크숍과 달리 매우 가벼우면서도 활기로운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여주 토닥토닥 작은 도서관 김동헌 대표님의 진행으로 가장 먼저 받은 독자의 질문은 이랬다.
왜 <넉 점 반> 작가는 <묘생이란 무엇인가>라는 그림책을 펴냈을까?
뭔가 엉뚱하고도 독특한 질문이다. 질문의 동기 저변에 깔린 몇 가지를 떠올리게 된다.
우선 독자님은 <넉 점 반>에 대한 사랑이 깊다.
그리고 <묘생이란 무엇인가>에서 <넉 점 반>과 매우 다른 인상을 받았고
그 차이는 꽤 놀라움을 주었으며
이 색다른 그림책을 출간하게 된 경위와 과정이 궁금했던 것이라고 질문을 이해했다.
질문에 감사하다. 뜻밖의 톤, 의외의 접근 방식이 주는 낯선 느낌은 쾌감에 속할까,
불쾌감에 속할까? 이쪽도 저쪽도 아닐 수 있다.
예술적인 표현에 있어서 익숙함과 낯섦 사이의 긴장감을 탐구하게 된다.
우리가 새로운 질감, 색상, 아이디어에 직면할 때 즐거움을 불러일으킬까, 아니면 불편함인가?
우리 인생에서 일반적으로 볼 때, 어떤 낯선 느낌은 두려움을 유발한다.
그래서 어느 쪽이냐 하면 부정적인 요소에 가깝다고 본다.
어떤 '상황'이 아닌 그림책 작품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긍정 /부정의 감정이 그다지 극명하지 않을 뿐이다.
어쨌든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질문의 동기에 대한 가벼운 반문으로 시작했다.
이어 <넉 점 반>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는 말로 답변을 이어갔다.
<묘생이란 무엇인가>에서의 기법적인 실험과 탐색은
독자들에게 생각을 자극하고 재미있는 경험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묘생이란 무엇인가>에서 보여준 표현기법들은
앞으로 내가 시도해 보고 싶은 것들의 일부일 뿐이다.
‘이후에 전개하여 내어 보일 의외의 행보를 즐겨 주시고
지켜봐 주었으면 한다.’는 내용으로 답변을 마무리했다.
행사 내내 우리는 '묘생이란 무엇인가'가
삶과 죽음, 사회 구조 등 더 넓은 주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토론했다.
어떤 독자는 고양이를 키우며 겪었던 경험을 공유했고,
어떤 분은 고양이 문제로 이웃과의 갈등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림책 속 그림과 글을 바탕으로 많은 얘기들이 오고 갔다.
2019년 반려자와 반려묘를 몇 개월 사이에 여의고
그 감상을 ‘묘생과 인생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지은 그림책 <묘생이란 무엇인가>.
털끝만 한 차이를 두고 우리의 생각은
이것과 저것을 분별하기에 바쁘고 울타리를 만드는 습관에 젖어 살고 있다.
상하좌우 구분에 분주하고 계층 지위 서열화의 경향성을 띠는 무의미한 패러다임은
도리어 우리 자신을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
<묘생이란 무엇인가>의 첫 장면은 눈에 보이는 것은 우주 만물 중 고작 5%에 지나지 않고
95%는 인간이 헤아리지 못하는 무한한 가능태에 대한 생각을 표현한 장면이기도 하다.
‘묘생의 길’을 언급하는 장면에서
모세에겐 십계, 묘생에겐 일곱 가지 ‘묘생의 길’이 있다고 나는 독자들에게 우스갯소리를 하곤 한다.
묘생의 길 일곱 항목 중에서 일곱째 번 내용
'억지로 웃지 않기'는 가장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듯하다.
<묘생이란 무엇인가>의 첫 장면
반려견과 달리 반려묘는 밥 주는 사람에 의해 섬김을 받는 모드를 지녔다.
개 키우는 사람을 '견주‘라 하고 고양이의 주인은 '집사'라고 지칭하는 차이에서도 드러나듯이 말이다.
<묘생이란 무엇인가>는 ‘죽음'이라는 문제를 우리 사회가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얘기해 보고자 하는 그림책이다.
묘생과 인생 사이, 집 안과 길 위 사이 그리고 삶과 죽음 사이.
이 양자적 조건에서 우리는 그 누구도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숙명적으로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진지한 얘기를 나누었다.
'반만으로도 온전함'을 주창하는 나의 스튜디오 겸 사랑방 ‘쩜반살롱.’
현대 사회는 사물을 옳고 그름, 삶과 죽음이라는 이분법으로 분류하고 나누는 데 집착하지만,
이는 존재의 본질을 반영하지 못한다.
우리는 끊임없는 진동의 상태에 살고 있으며, 진정한 자유는 바로 이 불확실성의 공간 안에 있다.
우리는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둘 중 하나에 속하면서도 이 둘 이상의 분별을 뛰어넘어
하나로 통합하는 우주의식 속에서 우리는 진정 온전함을 구가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을 수용하면서도 이러한 인식 속에서 비로소 자유를 얻는 것이다.
<묘생이란 무엇인가>는 삶과 죽음, 그 사이에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성찰이다.
예상치 못한 것을 받아들이고, 우리가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경계를 뛰어넘고,
눈에 보이는 것 너머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마음을 열어두기를 제안하는 그림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