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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J Mar 15. 2023

EP.05 첫 완등 그 짜릿함에 대하여

클라이밍 첫 완등

 운동을 하는 거의 모든 순간은 즐겁다. 거의 모든 순간이라고 하는 이유는 운동이 안 될 때(어제는 잘 되던 동작이 갑자기 안 될 때) 가끔 짜증이 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짜증 역시 오래가지 않는다. 내일은 다시 되겠지 꾸준히 연습하다 보면 언젠가는 되겠지 하고 넘길 여유가 생겼다. 클라이밍을 하고 날카롭고 여유 없던 성격이 조금은 긍정적으로 변했다. 이래서 사람들이 운동을 추천했나 봅니다.      


 항상 즐거운 운동이지만 그중에도 가장 즐거운 시간은 문제를 완등했을 때다. 몇 주간 풀리지 않던 문제를 단 한 번도 떨어지지 않고 끝까지 갔을 때 느낄 수 있는 그 쾌감이란! 흥분이란!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다. 당신도 함께 경험해 보지 않겠습니까? (클라이밍 영업 왕 올림)     


 서른 중반이 넘어가고 회사도 그만둔 나는 성취감을 느낄 만한 순간이 없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은 성취감은커녕 재미도 흥미도 없다. 매일매일이 지루한 일상, 로또 1등이라도 당첨되면 모를까 너무 인생이 무료하다. 이러니 나에게 클라이밍이 활력소가 된 것은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     


 오늘은 꽤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일 기억에 남은 행복하고 뿌듯했던 그 순간! 첫 완등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아직도 떠오르면 행복한 그 순간으로!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아니다 어쩌면 평소와는 조금 다른 날일지도 모르겠다. 마음가짐이 달랐다. 오늘은 꼭 반드시 완등을 하겠다는 마음? 어제 처음 끝 번호인 20번 홀드까지 갔다. 20번 홀드를 양손으로 잡고 3초만 버티면 완등인데 20번 홀드를 잡는 순간 마음이 급해져서 합손을 하지 못하고 떨어졌다. 아쉬운 마음에 몇 번 더 시도했지만 이미 다 써버린 체력 덕에 전처럼 20번까지 갈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은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팍팍 들었다.     


 완등을 하기 위해 갖는 마음가짐은 사람마다 다르다. S의 경우는 오늘은 안 될 것 같으니 마음 비우자 하는 날 완등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또 다른 암장 회원의 경우는 일주일 동안 열심히 운동을 하고 열심히 한 운동의 성과를 보여줄 때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금요일 등반 시 완등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이 회원님의 별명은 금요일의 남자다) 그와 반대로 다른 회원은 주말 이틀 쉬고 와 근육이 충분히 쉬고 온 그 몸상태를 느끼며 오늘 나는 최강이다!라고 생각하고 운동하는 월요일이 완등이 제일 잘된다고 한다.(이 회원님의 별명은 월요일의 남자다)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가? 나는 수많은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하다. 나에게 끊임없이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준다. 하지만 그 믿음이 과해져 부담을 주면 그날은 완등에 실패한다. 적당한 믿음과 적당한 응원 나의 완등의 비법은 그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이런 비법(?)도 없을 때였다. 나는 그저 결연한 마음을 가지고 암장에 도착했다. 운동 전 몸을 푸는 순간부터 나는 마인드 컨트롤에 들어갔다. 넌 할 수 있다. 너는 오늘 꼭 완등을 할 것이다! 20번 별로 길지도 않잖아? 어제도 잡았으니 오늘도 잡을 수 있을 거야. 끊임없이 나를 다독이며 응원했다. (아마 이때부터 내 완등 전 루틴이 잡힌 듯싶다. 물론 이렇게 마음을 먹는다고 항상 완등을 하지도 못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들어간 운동, 1번 홀드를 잡으며 크게 심호흡을 하며 다시 나를 다독였다. 넌 무조건 오늘 완등한다! 할 수 있다!! 그렇게 한발 한발 움직이기 시작했다. 1번에서 2번 그리고 쭈욱 무난하게 10번 홀드까지 잡았다. 어제 20번 홀드까지 잡아서였을까? 아님 나의 결연한 의지가 느껴져서였을까? 어느새 내 뒤에는 다른 회원들과 센터장님이 자리를 잡고 나를 응원하기 시작했다.      


“오늘 완등 가자!” “할 수 있어요. 언니!! 파이팅” “파이팅!!”     


 10번 홀드를 잡고 나는 거친 호흡을 가라앉히며 양손을 털며 눈을 감고 생각했다. 벌써 반이나 왔다. 딱 온 만큼만 더 가면 나는 오늘 완등할 수 있다. 쉬는 연습을 한 효과가 있는 것인지 아프던 팔은 점점 풀려왔고 거칠어졌던 호흡도 점점 되돌아왔다. 자! 가자!!     

 

그렇게 11번, 12번 홀드를 하나하나 잡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급하지 않게 천천히 천천히.. 마인드 컨트롤 덕에 어느덧 나는 19번 홀드까지 당도했다. 하지만 마음과 달리 나의 호흡은 다시 거칠어졌고 나의 마음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내가 저 20번 홀드를 잡을 수 있을까? 불안한 마음으로 나는 20번 홀드를 향해 손을 뻣었다. 걱정과 다르게 홀드는 잘 잡혔다. 오늘 진짜 느낌이 좋다! 넌 할 수 있어! 난 널 믿어! 꾸준히 속으로 나를 응원하며 발을 한발 한발 옮겼다. 긴장하지 말고 서두르지 말고!! 발을 옮기며 나는 나를 향해 소리쳤다. 이제 나머지 손만 가지고 오면 된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나머지 손을 20번 홀드로 옮겼다. 됐다! 드디어 완등이다!!     


“자 한 바퀴 더 가자!!”     


 완등의 기쁨을 느끼기도 전 센터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바퀴 더 라니..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들긴 했지만 불현듯 나의 한계를 실험해 보고 싶어졌다. 내가 과연 떨어지지 않고 얼마나 더 갈 수 있을까? 나는 20번 홀드를 잡고 숨을 다시 고르며 매달려 쉬기를 했다. 그리고 다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갔다. (우리 암장의 초보자용 문제는 순환 구조를 띤다. 20번 홀드 옆 1번 홀드가 있어 마음만 먹으면 몇 바퀴를 돌 수 있다.) 한 걸음 한 걸음 죽을 것 같았지만 나는 계속 홀드를 잡아갔다. 결국 난 한 바퀴 반인 30개의 홀드를 잡았다.      


“와 나 30개나 잡았어!!”

“축하해.” “축하해요.”     


 사방에서 축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평생 못 잡을 것 같은 20번 홀드를 잡다니!! 아니 20번 홀드를 잡는 것을 떠나서 10개나 더 잡다니. 나는 내가 너무 자랑스럽고 이 상황이 너무나도 뿌듯하고 행복했다. 진짜 이 경험은 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다. 클라이밍 하는 여자라 행복합니다. 이 경험을 할 수 있어 너무나 행복합니다.     


“저거 3바퀴 돌 수 있음 남들이 하는 몸 풀기 문제 풀 수 있을 거야.”     

뒤에서 지켜보던 센터장님의 말씀.      


 뭐라고요? 3바퀴요? 사람이 3바퀴를 돌 수 있나요? 저 기쁜데 기쁨을 즐기게 해 주시지 꼭 그걸 지금 말씀하셔야 하나요? 축하의 말 대신 저 말씀을 하신 센터장님이 조금은 원망스럽긴 했지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쩌하리 누가 뭐래도 난 이미 완등을 한 여자이거늘! 완등한 제가 넓은 마음으로 센터장님을 용서(?) 해 드리지요. 나는 그 순간 누구보다도 행복하고 누구보다도 너그러운 여자였다.     


 우리 암장의 문제는 한 달 혹은 두 달 주기로 바뀐다. 그때마다 새로운 문제가 나오기에 새롭게 완등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 지금도 내 난이도의 문제를 완등을 하면 미칠 듯이 기쁘고 짜릿하다. 어떤 날은 나도 모르게 비속어를 섞어가며 행복의 말을 내뱉기도 한다. (왜 진짜 행복할 땐 욕이 나올까?)     


“아. xx 너무 좋아!!”      


 하지만 첫 완등 그날의 행복감만큼은 아니다. 역시 뭐든 처음이 제일 좋다. 자 아직 완등 안 해보신 분! 그 첫 경험 저에게 파시지 않겠습니까? 제가 비싼 값에 사드리겠습니다. 물론 팔지 않고 직접 경험해 보면 더욱더 좋을 테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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