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6 죽어도 못 보내 내가 어떻게 널 보내
내 운동 메이트 클라이밍 테이프
클라이밍은 전신 운동이다. 몸의 다양한 근육을 사용하기에 운동이 끝나면 정말 상상치도 못한 곳에 근육통이 찾아온다. 아 이런 곳에도 근육이 있구나?라는 인체의 신비를 클라이밍을 통해 이 나이에 배워가고 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필요한 힘은 양쪽 팔의 전완근과 손의 악력이다. 그것이 곧 클라이밍의 기본이자 근간이다.(물론 내 생각이다.)
실력이 없는 나는 쉬는 시간 주로 암장의 구석에 앉아 다른 회원들이 하는 무브를 구경한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근육에 따라 혹은 기장에 따라 똑같은 문제라도 각자 다르게 풀어 갈 수 있기에 이 또한 좋은 공부가 되기 때문이다. 쉬는 시간에도 공부를 하는 나는야 모범생 클라이머입니다. 열심히 다른 회원들의 무브를 살펴본 결과 그들과 나의 차이점을 알아내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나의 팔은 한 덩어리(?)에 불과하지만 그들이 팔은 근육이 쩍쩍 갈라져 있다는 것! (무브를 보라고! 모범생은 무슨..) 몇 개 월 동안이나 나는 그들의 팔을 부러워했었다. 아무리 운동해도 팔의 근육이 늘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 법! 요즘 내 팔을 보면 그들과 완벽히 똑같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유사함을 띤다. 이 뿌듯함이여.
설재인의 소설 너와 막걸리를 마신 다면의 주인공 엄주영은 할 말이 없음 항상 이렇게 말한다. 제 전완근 한번 만져보실래요? 이 책을 운동하기 전에 읽어서 쟤 뭐야? 했었는데 이제 엄주영의 마음 100% 이해가 간다. 나도 새로운 사람이나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면 항상 저 소리를 하기 때문이다. 너 내 전완근 한 번 만져볼래? 엄주영 씨! 솔직하게 말해 봐요. 클라이밍 했죠?
이 뿌듯함을 느끼기까지 나는 얼마나 많은 테이프를 사용했는지.. 갑자기 웬 테이핑이냐고요? 운동하다가 어디가 찢어지냐고요? 네 맞습니다. 손이 찢어집니다. 그래서 손에 테이핑을 합니다. 암벽화를 사는 날 S는 나에게 테이핑을 살 것을 권했다. 클라이밍 쌩 초보인 나는 S가 사라기에 아무런 의심 없이 필요하겠거니 하고 테이프를 샀지만 테이프는 한 달이 넘도록 내 사물함에서 나올 줄 몰랐다. 맨손으로 홀드를 잡기에 손이 당연히 아프고 굳은살이 생기기는 했으나 문제가 워낙 쉬워 그 정도가 약했다. 남들이 손에 테이핑을 감고 있는 모습을 보면 뭔가 전문가 같아 나도 사용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쓰고 싶긴 했으나 왕초보인 나는 테이프 감는 법도 몰라 사용해 볼 수도 없었다. 아 초보자는 웁니다.
클라이밍 테이프가 내 서랍에서 오랜 기간 단잠을 자고 있을 동안 나는 어느새 실력이 조금 향상되어 왕초보자용 문제를 3바퀴씩 돌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센터장님은 나에게 다른 사람들이 몸풀기로 푸는 문제의 접근을 허락하셨다. (물론 그전에 풀어도 상관은 없지만 내가 두려워 도전하지 못했다.) 이제 너도 왕초보가 아니라고 인정해 주는 느낌! 남에게 인정받는 느낌은 나이가 먹어도 누구에게 들어도 언제나 좋다.
남들은 몸풀기로 푸는 문제지만 나에게는 세상에서 제일 힘든 그 문제. 문제가 바뀌니 60개의 홀드를 떨어지지 않고 잡던 나는 10개도 잡지 못하고 바닥으로 추락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다 보니 오기가 생기고 운동을 점점 악으로 깡으로 하게 됐다. 내가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20개는 잡는다! 이런 생각이 언제나 내 머리를 지배했다.
이렇게 악으로 깡으로 운동하면 남들보다 성장 속도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아무래도 단 한 개의 홀드라도 더 잡는 것이 운동에 도움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장점이 있다면 단점이 존재하는 법! 내 손이 찢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정도도 심해 그 손으로는 다시 홀드를 잡는 게 무리였다. 홀드를 바른 자세로 힘 있게 잡으면 손이 찢어질 일은 없다. 하지만 힘이 없는 상태에서 홀드를 잡게 되면 손이 쓸리며 마찰력에 의해 찢어진다. 아 운동 못하는 사람에게 더욱더 가혹한 클라이밍 너! 사랑한다.(이게 맞는 거 맞지?)
보통 사람이라면 손이 찢어지면 운동을 쉬겠지만 나는 이미 클라이밍의 매력에 흠뻑 빠진 사람이었다. 그런 나를 말릴 사람도 없었기에 센터장님은 나에게 테이핑 법을 알려주었다. 이렇게 하면 100%는 아니어도 80% 정도의 손의 힘을 쓸 수 있다고 말씀해 주시면서 말이다.
그렇게 잠자고 있던 테이프는 긴 잠에서 깨어나 나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동 메이트가 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손이 터지지 않아도 테이핑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운동을 평소보다 과격하게 하고 싶은 날이나 오늘은 꼭 완등을 해야지 마음먹은 날 아님 그냥 멋있고 보이고 싶은 날 나는 날을 가리지 않고 테이프를 사용하기 시작했다.(그렇다. 맨날 사용했단 이야기이다) 테이프의 가격은 한 롤의 만원 이하. 더군다나 이렇게 자주 사용해도 한 롤을 한 달 이상 사용 할 수 있기에 더더욱 마음 놓고 사용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사랑 테이프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끝이 보이면 새로운 테이프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면 되기에 나는 별생각 없이 인터넷 쇼핑 창을 열었다. (이미 몇번이나 그래왔다) 헐 그런데 웬걸 모든 쇼핑몰마다 내가 쓰는 테이프가 다 품절인 것이었다. 상황은 이랬다. 내가 쓰는 테이프는 미국 존슨 앤 존슨 제품인데 이게 환율이 오르다 보니 제품이 너무 비싸져 단가가 맞지 않자 모든 수입업자들이 더 이상 수입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파는 곳을 발견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단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테이핑 없는 클라이밍이라니!! (너 없이도 했거든?!)
임시방편으로 다른 회사의 클라이밍 테이프를 몇 개 사서 써보았지만 그전에 쓰던 제품처럼 딱 맞는 제품을 찾지는 못했다. 뭔가 미세하게 나랑 맞지 않는 느낌?! 나는 좌절했고 이런 나를 보며 센터장님은 말씀하셨다.
“테이프는 초보자들이나 쓰는 거야. 테이핑 하면 운동이 더 안 늘어. 그니까 그냥 없이 운동해.”
그렇게 나와 테이프의 인연은 끝이 났고 저는 더 이상 테이핑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클라이밍 실력은 월등하게 늘었답니다. 해피엔딩 끝!으로 이야기가 끝나면 좋겠지만 아시다시피 저는 아직 1년 차 왕초보인걸요? 경험하지 않았으면 모르겠지만 이미 클라이밍 테이프는 제 운동의 동반자인걸요?
나는 암장의 다른 사람들이 쓰지 않는 테이프를 구걸하여 모으고 당근마켓을 이용해 사기도 하여 몇 개의 테이프를 소유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테이프는 정말 완등이 필요한 날이나 손이 찢어진 날만 사용하게 되었다. 소중하고 소중한 나의 동반자 테이프여! 내가 널 떠나보낼 수 있을까?
지금 방금 글을 쓰며 인터넷을 뒤지니 해외 직배송으로 테이프를 판매하고 있다. 저걸 사? 말아? 근데 한 박스에 너무 많이 들었는데? 저거 다 쓸려면 10년은 운동해야 할 것 같은데.. 과연 내가 10년 뒤에도 테이핑을 하고 있을까? 그때는 테이핑 없이도 운동 잘할 수 있을 텐데.. 흠.. 저기 혹시 저랑 테이프 공구 하실 분 안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