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8 운동 메이트 S에 대하여
S와 나는 운동 전에도 알고 지내던 사이기에 운동을 하지 않아도 종종 만나거나 전화를 한다. 분명 우리는 클라이밍 말고 공통의 관심사도 있고 할 이야기도 있지만 언제나 우리의 통화는 클라이밍 이야기로 시작한다. (통화하는 나를 보며 신랑은 너희 둘은 클라이밍에 미친 게 분명하다며 혀를 찬다.) 어제 푼 문제의 동작을 이렇게 풀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둥, 어제 왜 안타깝게 완등을 못했을까 한탄을 한다는 둥 한번 시작한 이야기는 끝을 모르고 이어진다. 그러다 보니 한 번 통화를 하면 30분은 기본이며,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는 못하고 끊는 경우가 종종 있다. 거기다 우리의 마지막 통화 멘트는 이 둘 중 하나다. “우리 진짜 클창 같지 않아요?” 아님 “아 운동하고 싶다.” (이렇게 글로 쓰니 신랑의 마음이 아주 조금은 이해가 간다.)
나를 클라이밍의 세계로 이끈 그녀. 나처럼 클라이밍에 진심인 그녀. 오늘은 나의 운동 메이트 S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S는 우리 암장의 에이스를 맡고 있다. 자기는 에이스가 아니라고 항상 말하지만 S를 제외한 모든 회원들은 그녀를 에이스라고 부른다. 4년 차 클라이머인 그녀는 나만큼이나 출석률이 좋다. (나는 우리 암장 1등 출석률을 자랑한다. 나 진짜 멋지다.) 출석률도 좋고 운동에 대한 의지도 강하기에 내 생각엔 같은 시간 운동을 한 다른 사람들 보다 S가 훨씬 더 잘하지 않을까 싶다.
클라이밍은 아무래도 거리가 먼 홀드를 잡기도 하고 높이 있는 홀드를 잡아야 할 경우도 있기에 신장이 상당히 중요하다. 하지만 S의 키는 153CM. 키가 작은 그녀에게는 클라이밍은 불리한 운동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녀에게 작은 키는 아주 사소한 문제에 불과하다. (아마 S가 이 글을 읽는다면 아니라고 하겠지?) 키가 작은 S는 거리가 먼 홀드를 잡아야 할 경우 높은 위치에 홀드를 찍고 남들보다 더 큰 반동과 탄력을 이용하여 다음 홀드를 잡아낸다. 그녀의 움직임을 보고 있노라면 와 사람이 저렇게도 몸을 쓸 수 있구나 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된다. 멋지다! S여!
초보의 내 눈엔 그녀가 홀드에 매달려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다 대단해 보이지만 그중 내가 가장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그녀의 매달려 쉬는 동작이다. 나는 매달려 쉬는 동작을 할 때 가장 잡기 좋은 홀드를 사용하고 가장 각이 적은 곳에서 쉰다. 하지만 S는 홀드도 각도 필요 없어 보인다. 어느 공간에서건 최소한의 각을 만들며(몸을 비틀어 각을 없앤다.) 어느 홀드를 잡더라도 쉰다. 이건 그녀와 비슷한 경력 혹은 그녀보다 오래된 사람들도 못하는 S만의 전매특허 기술이다. S는 자신의 체력이 달려 이 기술을 연마(?)했다고 별거 아니라고 하지만 절대 별거 아닌 기술이란 걸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안다. (EP.4 참조)
S의 나이는 34살. 이 친구도 어디 가서든 막내 취급을 받지 않은 나이인데 우리 암장에서 나이가 제일 어리다. (며칠 전 S보다 어린 회원이 들어오긴 했으나 잘 나오지 않아 우리 암장 사람들은 여전히 S를 막내 취급한다.)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암장의 막내를 담당해서 인지 그녀는 우리 암장의 마스코트이다. 나이가 아무리 많은 선배님들에게도 친밀하고 곰살 맞게 말을 거는 것은 물론이요, 특유의 발랄함과 젊음(?)으로 암장의 분위기를 밝게 만든다. S의 가장 큰 장점은 친밀함과 애정 어린 눈길 덕에 암장 사람들의 취약점을 누구보다 잘 알아서 몸 빌레이(혹 운동하다 떨어질 때를 대비하여 뒤에서 운동하는 사람을 받쳐주는 동작)를 잘 봐준다는 것!!
암장 사람들 중 유독 나는 S가 몸 빌레이를 봐주는 것을 좋아한다. 동작을 연속적으로 하다 보면 힘든 동작에서 호흡을 참고 움직이거나 템포가 빨라지는 게 내 수많은 단점 중 하나이다. 그걸 아는 S는 내가 힘든 동작을 하면 뒤에서 “언니 호흡하세요.”를 외쳐주고, 템포가 빨라지면 “언니 너무 빨라요. 조금만 천천히 가세요.”라고 말해준다. 그래서 S 덕분에 완등을 성공한 문제가 많다. 이러니 내가 S를 애정할 수밖에. 사랑한다. S야.
누구나 완등을 꿈꾸지만 쉽게 이뤄지면 그건 꿈이 아니지! 자신의 맞는 레벨의 완등은 짧게는 2주에서 길게는 2달까지 걸린다. (아예 완등을 하지 못하고 문제가 바뀌는 경우도 있다.) 똑같은 문제를 계속 풀기 때문에 어느 정도 문제가 익숙해지면 오늘은 꼭 완등을 하리라 마음을 먹는다. 직접 물어보진 않았지만 우리 암장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을까? 우리 암장엔 운동에 진심인 사람들만 있거든요. 아무튼 이렇게 마음을 먹고 운동을 해도 결국은 완등을 하는 날보다 실패하는 날이 많다. 누구든 문제에서 떨어져 바닥에 널브러져 있으면 어디선가 S가 튀어나온다.
그리고 시작되는 S의 칭찬 타임.
“오늘 이 정도 했으니 내일은 완등 가능할 것 같아요.” 라거나 “오늘 24번에서 25번 홀드 넘어가는 동작 다른 날에 비에 너무 자연스러워요.” 만약 정 칭찬할 거리가 없으면 이렇게 말한다. “오늘은 컨디션이 안 좋아서 떨어지신 것 같아요. 컨디션만 회복되면 완등 가능합니다.” 이 어찌나 긍정적이고 희망찬 말인가? 좌절의 순간 그녀의 말을 듣고 있으면 힘이 절로 난다. 실력이 없는 나도 내일 당장 완등이 가능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그렇기에 나도 S가 문제에서 떨어지는 날이면 S에게 비슷한 종류의 응원의 말을 한다. 나는 사람은 받은 만큼 혹은 그보다 더 해줘야 된다고 믿는 배운 여자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러면 항상 S는 “아니에요. 저 몇 번 홀드에서 동작이 이상했어요. 진짜 억지로 간 거 에요.”라고 말한다. 아직 초보인 나는 내가 무슨 홀드를 딛고 움직였는지, 내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는데 역시 고수는 다르다. 남에게는 한없이 관대하지만 자신에게는 한없이 매몰찬 그녀. 역시 잘하는 사람은 남의 칭찬에 쉽게 넘어가지 않나 보다. (이래서 내가 실력이 늘지 않나 보다.)
나의 소박한 꿈이 있다면 S와 오래오래 클라이밍을 같이 하는 것! 그녀의 몸 빌레이가 있어야 완등이 더 쉽고 그녀의 응원이 있어야 지치지 않는다. 또한, 그녀의 동작을 보며 동작을 배우고 더 잘하고 싶은 의지를 불태우기 때문이다.
나를 클라이밍으로 이끈 S야! 이 재미있는 운동 소개해줘서 고마워. 그러니까 그 끝도 함께 하자!!. 이사도 가지 말고 아프지도 마! 우리 5년이고 10년이고 계속 같이 운동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