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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J Mar 11. 2023

EP.04 네? 매달려서 쉬라고요?

암벽에 매달려쉬기

 순전히 나의 기준이지만 지구력은 한 문제당 시간이 짧게 5분에서 길게는 20분이 소요된다.  이것도 단 한 번도 떨어지지 않고 완등했을 때 걸리는 시간이다. 혹여나 한 번이라도 홀드에서 떨어지게 된다면 단지 한 문제를 풀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한다. (보통 사람이 많은 암장은 떨어지면 다음 사람에게 그 벽을 양보하지만 우리 암장은 사람이 적어 한 문제를 다 돌고 내려올 수 있다.) 나는 한 문제를 40분 동안 푼 적도 있다. 거짓말 보태서 한 백번 떨어졌나? 그날 집에 가 젓가락도 들지 못 한건 안 비밀! (거짓말인 거 같죠? 진짜 젓가락도 못 듭니다.)     

 

 완등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선 최소한의 발동작을 사용하여 자연스러운 자세를 취하고 각 동작마다 매끄럽게 연결해야 한다. 이제야 밝히지만 나도 5분 완등의 세계에 들어선 지 얼마 안 됐다. 이것도 쉬운 몸 풀기용 문제에서나 해당되는 이야기. 여전히 나에게 맞는 난이도의 문제는 한 문제당 10분 이상을 소요한다. 운동을 잘하면 잘할수록 운동 시간이 더 짧아지는 기묘한 클라이밍의 세계.      


 센터장님께서 하사하신 두 번째 문제(아 그렇게 첫 번째 문제는 나를 떠나갔습니다.)를 풀기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암장에 주 5일제로 출근 도장을 찍은 지도 어언 이 주째. (우리 암장 주말은 쉽니다.) 나의 체력과 실력은 아주 조금 나아져 15개 이상의 홀드를 떨어지지 않고 잡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도저히 20번의 끝 홀드를 잡는 완등을 할 수 없었다. (잡고 싶다 20번 이 놈 자식!!) 매번 10번째 홀드를 잡을 때쯤 되면 호흡이 가빠져 죽을 것 같고 양쪽 전완근은 펌핑이 최고조에 다다른 느낌을 받는다. 그 느낌을 무시한 채 악으로 깡으로 꾸역꾸역 간신히 하나씩 잡가 가긴 하나 그 상태로는 끝까지 가지 못할 거란 건 초보인 내가 봐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S야, 나 이거 10번만 잡으면 죽을 것 같아서 더 못 가겠어.”

“언니 그럼 10번에서 좀 쉬었다가요. 그럼 완등하실 수 있어요.”     


 체력과 근력이 좋은 사람이면 가벼운 손 털기 만으로도 쉽게 완등할 수 있다. 하지만 나처럼 저질체력에 근력이 몸에 1도 없는 사람이거나 본인의 실력보다 더 어려운 문제를 풀 경우 중간중간 쉬어주어야 완등이 가능하다.      


 쉬는 동작은 이렇다. 홀드를 한 손으로 잡고 잡지 않은 팔을 털며 전완근을 풀어준다. 손은 두 개니 당연히 이 동작은 손을 번갈아가며 한다. 언제까지? 펌핑된 전완근이 돌아오는 느낌이 들 때까지. 아참 이때 가빠진 호흡도 가다듬어 줘야 한다. 물론 이 모든 동작은 매달려서 해야 한다. 바닥에 다리가 닿으면 그건 완등이 아니니까요.      


 이게 상상이나 됩니까? 여러분? 벽에 매달려 쉬라니요? 매달려 있는데 그게 어떻게 쉬는 겁니까!! 거기다 두 손으로 홀드를 잡고 있어도 간신히 버티고 있는 마당에 한 손으로 홀드를 잡으라니요? 도대체 이게 말인지 방귀인지..     


 몸치이자 클라이밍 초보인 나는 저 말이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로 S가 운동하는 모습을 보니 진짜 저대로 동작을 취하며 쉬는 것이 아닌가?  S의 쉬는 동작을 처음 봤을 때 그 놀라움이란.. 사람이 벽에 매달려 있는데 저렇게 평온해 보일 수 있단 게 너무 놀라웠다.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나에겐 별다른 완등 방법은 없었다. 물론 체력을 키우는 방법이 있지만 체력이 야 너 얼른 커! 이런다고 쉽게 늘고 그러지 않잖아요. 그랬으면 제가 여태껏 이 저질체력으로 살지 않았겠죠.. 체력 키우는 것보다 쉬는 거 연습하는 게 더 빠르다는 건 지나가는 동네 강아지도 알만한 사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매달려 쉬기를 터득하는 것뿐. 터득은 어떻게 하는 거다? 죽도록 연습해야지 뭐.. 쉬는 것도 연습을 해야 하다니 정말 클라이밍이란 녀석 너는 참 오묘하구나?      


 그렇게 나는 문제 풀이는 잠시 접어두고 매달려 쉬는 법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처음 내가 나에게 준 목표는 1분! 그래 1분만 버텨보자. 1분 길지도 않잖아? 그렇게 결연한 마음을 갖고 홀드에 매달렸다. 누군가 그랬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고 느껴진다면 플랭크를 해보라고..  아닙니다. 여러분 클라이밍 벽에 매달려보세요. 플랭크 보다 더 시간이 안 가요. 1초가 10분 같고 1분이 100년 같아요.!! 시간이 길어지는 경험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      


 충분히 오래 매달렸다고 생각하고 바닥에 내려와 시계를 보니 고작 30초가 지나있었다. (거 봐요. 제 말이 맞잖아요..) 도대체 이게 연습한다고 진짜 쉬어지긴 하는 걸까? 이거 혹시 나만 못 하는 거 아닐까? 별의별 생각이 머리를 잠식했지만 나는 연습을 포기할 수 없었다. 오직 완등의 꿈을 이루기 위해.. 완등 가자아~~~!


 그렇게 하루 이틀 연습을 한 결과 매달리는 시간은 점점 늘어갔으며 시간이 늘어감에 따라 이게 진짜 쉬는 거라는 걸 몸소 경험하게 되었다. 가빠졌던 호흡이 점점 가라앉기 시작했으며 펌핑이 나서 미친 듯이 아팠던 팔도 풀리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 거다. 와 이게 진짜 되는 거구나?! 몸이 차분해지는 걸 느낄 때 그 성취감과 뿌듯함이란.. 이 맛에 바로 클라이밍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제 나는 각이 없는 벽에서는 계속 매달려 있을 수 있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밥 주고 화장실만 해결된다면 거기서 하루 종일 매달려 있을 수 있는 정도?! 역시 연습은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다. 물론 여전히 초보인 나는 각이 점점 새지 거나 홀드가 잡기 어려우면 쉬는 걸 힘들어 하긴 하나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연습만 하면 저 벽에서도 저 홀드에서도 난 쉴 수 있다는 것을!      


 며칠 전 우리 암장에 신입 회원이 들어왔다. (드디어 막내 탈출이다!!) 나보다 어린 나이의 그 회원은 나보다 곧잘 하긴 하였으나 역시나 완등까지는 힘들어 보였다. 그런 그 회원에게 나는 슬쩍 가서 말했다.      


“벽에 매달려 쉬워보세요. 그럼 완등이 가능합니다.”

“네? 벽에 매달려 쉬는 게 어떻게 가능해요?”

“연습하다 보면 다 됩니다.”     


 나는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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