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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J Mar 09. 2023

EP.03 웰컴 투 초보 클라이밍 월드

클라이밍 첫날

 실내 클라이밍 암장은 볼더링 암장과 지구력 암장으로 나뉜다. (스피드 클라이밍을 할 수 있는 암장도 있으나 찾기 쉽지 않다) 어느 암장을 가더라도 생김새는 비슷하고 볼더링과 지구력 문제를 다 경험할 수 있지만 루트 세터(클라이밍 문제를 내는 사람)가 무엇을 중점적으로 생각하고 문제를 내느냐에 따라 암장이 구분된다. 사실 루트 세터보다 암장 주인 맘 아니겠습니까?     


 볼더링은 같은 색깔의 홀드를 손으로 잡고 발로 밟아 문제를 푸는 형식인데 보통 한 문제당 20개 안쪽의 홀드를 사용한다. (실내 암장은 크기가 작아 한 벽에 여러 문제가 있다 보니 문제를 구분하기 위해 같은 색깔의 홀드만 사용한다. 국제 대회는 한 벽에 한 문제만 있기에 꼭 같은 색의 홀드만 쓰지 않는다.) 그렇기에 한 문제당 푸는 시간이 지구력에 비해 짧으며 다이내믹한 동작과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힘을 많이 쓴다. 볼더링은 지구력에 비해 한 문제당 쓰는 시간이 적어 다양한 문제를 경험할 수 있고 SNS에도 영상을 찍어 올리기 좋다는 장점이 있어 요즘 젊은 친구들이 취미로 즐기는 걸 종종 볼 수 있다. 덕분에 신규로 생기는 암장은 백이면 백 볼더링 암장이다. (개인적인 바람으론 지구력 암장도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지구력은 암장마다 다르지만 우리 암장 기준으로 최소 50개 이상의 홀드를 사용한다. 하나의 문제를 풀기 위한 시간은 짧게는 5분에서 길게는 20분. (20분 이상 걸리기도 한다) 볼더링에 비해 동작이 다이내믹하지는 않지만 클라이밍의 기본 동작이나 심화 동작을 익히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단점 아닌 단점은 한 문제당 오래 매달려 있어 문제를 다 풀고 나면 전완근 펌핑이 엄청나서 운동한 시간만큼 쉬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건 볼더링도 마찬가지이나 볼더링은 길어야 5분도 안 된다) 하지만 길게 운동하는 만큼 효과는 엄청나다.     


 이 두 암장 중 내가 선택한 암장은 바로 지구력 암장이다. 왜 볼더링 암장이 아닌 지구력 암장을 다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해 드리는 게 인지상정! 사실 큰 이유는 없다. 날 클라이밍의 세계로 입문하게 한 S가 지구력 암장을 다니고 있어서 다니게 되었을 뿐. 무지렁이 클라이밍 초보가 아는 게 있었겠어요? 여기가 실내 클라이밍 암장이다 하니 그렇구나 하고 간 것이지요.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그땐 볼더링 암장이 따로 있는지도 몰랐는걸요. 그냥 S를 쫄래쫄래 따라다니다 이곳이 맘에 들어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이래서 첫 정이 무서운 겁니다.   


 그렇게 정착한 우리 암장. 엄청 독특한 곳이다. 많은 독특한 점이 있지만 그중 한 가지만 말하자면 연령대가 높다는 거다. 삼십 대 후반인 나는 요즘 어딜 가도 어리다는 소리를 듣기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 암장에만 가면 나는 항상 이런 소릴 듣는다. “아직 어린 네가 그런 앓는 소리를 하면 어쩌니?” 그렇다. 나는 우리 암장에서 어린 나이 순서대로 하면 한 손가락에 꼽힌다.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사실 1도 안 행복하다) 네 그렇게 저는 30대 후반에 계획에도 없던 나이도 어리고 실력도 어린 막내가 되었습니다.     


 사실 나는 일 년 전 첫 홀드를 잡은 그 가슴 벅차고 떨리는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을 떠올리려고 해도 아쉽게 그날의 기억은 별로 없다. 그나마 간신히 남아있는 기억을 끄집어 보자면 센터장님이 막대기로 찍은 홀드를 따라 발과 손을 움직여 꾸역꾸역 움직였던 거? (이것도 내 기억이 아닌 다른 신입들이 그런 과정을 거쳤기에 아 나도 저랬지! 하고 떠올랐을 뿐..) 내가 몇 개를 잡았더라? 10개는 넘게 잡았던 거 같은데.. 슬프게도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좀 남겨둘걸.. 첫 경험의 순간을 너무 허무하게 잊은 것 같아 아쉽다. 그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신기하게도 첫날의 기억은 없지만 둘째 날의 기억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일 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대망의 운동 이튿날. 양쪽 전완근에 약간의 근육통이 느껴졌으나 운동을 했으면 당연히 근육통이 생기는 거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터라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또한 어제는 낯선 곳에서 처음 하는 운동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면 오늘은 그 두려움조차 없었다. 그렇게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선 암장. 그곳엔 어제는 볼 수 없었던 초보자용 쌔삥 문제가 환한 모습으로 나를 반겨주었다. 우리 암장은 다른 암장들처럼 따로 홍보를 하지 않아 신입이 자주 없기에 초보자용 문제도 없다. 그래서 첫날 운동을 할 때도 문제 풀이 대신 벽에 붙은 홀드를 무작위로 잡고 돌아다녔다. 그런 나를 위해 센터장님께서 친히 새로운 문제를 하사해 주신 것. 총 38번의 손 홀드(우리 암장은 초보에게는 발 홀드는 오픈한다.)로 이뤄진 나만 풀 수 있는 나만을 위한 문제. 이 얼마나 황홀하고 멋있는 일인가? 왠지 운동을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팍팍 들었다.     


 확실한 숫자는 기억나지 않지만 첫날 나는 10~15개의 홀드를 연속으로 잡았다. 그런 나를 보며 S는 자신은 처음에 그 정도도 못했다고 언니 운동에 소질 있는데요? 하며 날 띄어주었다. 그런 말을 들으니 근자감이 뿜뿜 생겼다. 사실 여지까지 운동을 안 해서 몰랐을 뿐 나 클라이밍 숨은 고수였는지도? 이러다가 국가대표 되는 거 아니야? 한 번 꿈틀거리기 시작한 자신감은 그 끝을 모르고 치솟았다. 네. 저는 이런 인간입니다.     


 만땅 찬 자신감을 기반 삼아 운동을 시작하기 위해 홀드를 잡았다. 각 암장마다 시작 방법이 다르지만 우리 암장의 1번 홀드는 거의 허리선 아래에 존재한다. 그렇기에 양손으로 시작 홀드를 잡은 후 두 다리 모두 홀드를 찍고 엉덩이를 바닥에서 띄워야 문제를 시작할 수 있다.  어제 배운 그 시작 자세를 취하기 위해 홀드를 양손으로 잡았는데 어제는 느끼지 못한 낯선 감각이 느껴졌다. 어 이거 뭐지? 애써 낯선 느낌을 무시한 체 두 발로 홀드를 딛고 일어나려는데 엉덩이가 바닥에서 뜰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도대체 이거 뭐야!! 분명 어제는 했는데 왜 안 되는 거야!!! 그 이후에도 몇 번 더 시도를 했지만 누가 내 엉덩이에 본드를 붙여 놓은 건지 엉덩이에 무거운 추를 매달아 놓은 건지 여전히 내 엉덩이는 바닥에서 떨어질 생각이 없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티칭 하기 위해 뒤에 서계셨던 센터장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셨다. 그때 그 무안함이란.. 센터장님 그때의 그 눈빛 저 아직도 기억나요...     


 첫 장에서 말했지만 나는 안전염려증 덕에 상당히 다양한 운동을 경험했었다. 그동안 다양한 운동을 경험하며 잘한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단 한 번도 못한다고 소리를 들은 적도 없다. 거기다 분명 어제 S는 내가 자신의 첫날보다 운동을 더 잘했다고 했다. 그런 내가 시작도 못하다니.. 이 좌절감 뭔가요? 이 당혹감 무엇인가요? 낯선 감정에 나는 센터 구석에 앉아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 이 운동 계속할 수 있는 건가? 나 어제 한 달 수강료 냈는데 가서 환불해 달라고 할까? 암벽화 비싼 돈 주고 샀는데.. 이미 신어서 환불도 안 되는데.. 이건 또 어쩌지? 한 번 해보고 암벽화 살걸.. 이 멍청한 것.. 별의별 부정적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 머리를 뒤덮기 시작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S가 다가왔다.     


“언니 왜 그러고 있어요? 운동 안 해요?”

“S야.. 나 저 문제 시작도 못 하겠어.”

“어제 운동 열심히 해서 그래요. 할 수 있어요. 어제는 했잖아요. 다시 도전해봐요. 그럼 될 거예요.” (여기서 밝히지만 S는 자신에게는 한없이 냉혹하지만 남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다.)     


 S의 응원에 말에 힘을 얻은 나는 심기일전하고 그 문제를 다시 시도해 봤지만 비루한 엉덩이는 여전히 바닥에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 내 몸 하나 내 맘대로 하지 못하는 이 몸치를 어떻게 해야 할까? 더 큰 좌절감이 나를 덮쳐왔다.     


“어제 안 쓰던 근육을 써서 오늘 전완근이 힘을 하나도 못 받는 거야. 어제 하는 거 보니 이 정도는 할 줄 알았더니 전혀 못하네? 어제 운동도 많이 안 했잖아? 이것도 못하는 거 보니 몸에 근육이 하나도 없구먼. 여태껏 운동 한번 안 하고 살아왔지?”      


 어느새 다시 나의 뒤에 나타나신 센터장님의 독설 한마디. (우리 센터장님은 뼈 때리기 장인이시다) 아니라고 나의 깔짝이 운동 경력은 3년이 넘고 여지까지 내가 한 운동 종류가 수십 개라고 강력하게 외치고 싶었지만 엉덩이도 자기 의지로 못 드는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 초보자는 말이 없습니다.      


 그날 나는 그 문제를 시작하기 위해(운동을 하는 것도 아닌 단지 시작이다!!) 수십 번 시도를 하였으나 단 한 번도 엉덩이를 바닥에서 띄울 수 없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본 센터장님은 한숨을 쉬시며 그 문제보다 쉬운 난이도의 20개의 손 홀드로 구성된 아주 기초적이고 기초적인  왕초보용 문제를 새로 내주셨다. 거기다 이번 문제는 시작이 아예 서서 하는 동작이라 엉덩이를 떼기 위해 노오오오오력 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로 말이다. 안 그런 듯해도 언제나 배려해 주시는 센터장님 사... 사 아니 존경합니다.     


 그 이후 우리 암장엔 슬픈 전설이 하나 생기게 되는데... 신입들의 문제는 언제나 20개를 넘지 않고 스타트 홀드도 눈높이에 존재할 정도로 난이도가 엄청 쉬워졌다는 것! 그게 왜 그런 줄 알아? 그거 다 저 사람 때문이래.(쑥덕쑥덕) 그래요. 그게 바로 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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