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riter J Feb 26. 2023

EP.01 왜 그런 운동을 해요?

클라이밍 시작 계기

EP.01 왜 그런 운동을 해요?

클라이밍을 시작한 지 어느덧 1년 차. 열손가락은 굳은살이 가득하다. 태어나면서부터 몸치였던 나는 여전히 몸을 잘 쓰지 못해 양다리에 항상 멍이 들어있어 반바지 짧은 치마는 더 이상 꿈꾸지도 못한다. 이런 나를 보며 주위 사람들은 도대체 왜 클라이밍을 계속하냐고 말한다. 이유는 당연히 간단하다. 재미있으니까. 다른 운동을 할 때는 느낄 수 없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으니까 손이 아파도 다리에 멍이 들어도 운동을 멈출 수 없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추후 하나씩 이야기하기로 하고 오늘은 내가 왜 이 운동을 시작했는지 그 첫 시작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어렸을 적부터 나는 안전염려증이 누구보다도 심했다. 근데 이걸 또 안전염려증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게 내 안전염려증은 일상생활을 할 때는 멀쩡하다가 영화를 보면 심하게 발휘된다는 것이다. 내가 안전염려증이 있나?라고 첫 의심을 하게 한 영화는 바로 타이타닉이다. 희대의 명작이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미친 외모를 볼 수 있는 그 영화. 이 영화를 보고 다른 친구들은 모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외모를 칭찬하고 케이트 윈슬렛의 외모를 비하하기 바빴다. 하지만 나는 그 대화에 낄 수 없었다. 물에 빠져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직접 처음 눈으로 본 나는 너무나 큰 공포심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큰 충격에 집에 온 나는 엄마를 보자마자 물에 빠져 죽는 것보다 큰 고통은 없다며 그러니 수영을 배워야겠다고 울며불며 난리를 쳤다. 영화 잘 보고 와서 뜬금없이 난리를 치는 나를 보고 우리 엄마는 물 근처에 안 가면 빠져 죽을 일이 없다며 귀찮은 듯 소리치며 내쫓았다. 돈도 힘도 없던 나는 속으로 내 공포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를 미워했다. 하지만 나의 안전염려증은 또 엄청 하찮은 존재(?)라 영화의 내용이 희미해질수록 엄마에 대한 미움도 수영에 대한 열정도 사라졌다. (TMI를 발설하자면 결국 나는 해운대 영화를 보고 다시 물에 대한 두려움이 샘솟아 수영에 등록했다는...)     

 

 이런 약간은 이상한 안전염려증을 가지고 있던 내가 성인이 된 어느 날 엑시트를 보게 된 것이다. 무려 코미디 영화인 이 엑시트를 보고 나는 또 이상한 안전염려증이 발동되었고 무조건 임윤아와 조정석이 하는 저걸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클라이밍이라는 용어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건 바로 실현할 수 없었으니 도대체 저게 뭔지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하는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돈이 있는 성인이 되어도 뭐가 뭔지 모르면 할 수 없는 허망한 인생..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2020년 올림픽에서 나는 엑시트의 임윤아와 조정석이 하던 것이 클라이밍이라는 것을 드디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나의 안전염려증 덕에 이 운동에 대한 흥미는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그렇게 무탈하게 인생을 살고 있던 어느 평화로운 날 갑자기 아빠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셨고 나는 동생과 함께 아빠의 간병을 맡아하게 되었다. 호기롭게 시작한 간병은 결코 쉽지 않았으며 처음 겪게 된 낯선 환경이 주는 다양한 압박감에 극심한 스트레스가 나를 덮쳐왔다. (진짜 가족 간병을 하는 모든 사람들 존경한다.) 주변 사람들이 나의 건강을 걱정할 만큼 외적으로 내적으로 무너질 무렵 오랜만에 아는 동생 S 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의 소식을 전해 들은 S는 나를 위로하기 위해 그녀의 말을 꺼냈다. 자신의 아버지 역시 작년에 뇌경색으로 쓰러지셨으나 얼마 안 돼서 회복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주며 우리 아빠도 금방 건강을 회복할 것이라고 나를 위로했다. 그러면서 간병인인 언니의 건강도 꼭 챙겨야 한다며 자신은 클라이밍으로 극복했다고 이야기를 전했다. 언니가 관심이 있으면 자신이 도와주겠다는 이야기도 잊지 않았다. 그 시절 다른 사람들의 위로는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지만 같은 경험을 한 그 동생의 위로는 내 마음속에 깊은 안정을 주었다. 그 이후 다행히 아빠의 상태는 호전되어 6개월 만에 퇴원을 하셨고 이전과 같은 완벽한 상태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일상생활은 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간병인의 상황도 끝이 났고 아빠도 많이 좋아지시며 상황이 이전보다 많이 나아졌지만 나의 상태는 전혀 좋아질 기미가 없었다. 이런 나를 보고 사람들은 운동을 해보라고 권했다. 몸을 움직이다 보면 잡생각도 없어질 것이고 활력도 되찾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들의 말이 이해는 갔지만 나는 어떠한 운동에도 흥미가 들지 않았고 할 의지조차 가지지 못했다. 유일하게 하는 것이라곤 집에서 유튜브만 멍하게 쳐다보고 있는 것. 그러던 중 알 수 없는 유튜브 알고리즘님의 추천으로 클라이밍 영상들이 나의 알고리즘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금 와서 추측해 보건대 올림픽 시절 보던 영상들 덕택에 클라이밍이 알고리즘에 뜬 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 영상을 보다 보니 예전 동생이 했던 위로의 말이 떠올랐고 나는 바로 S에게 전화를 했다.     


“야, 나 클라이밍 배우고 싶어.”     

 

 영상을 보다 보니 과거 갖고 있던 안전염려증이 생각났고 저걸 배워야 내가 살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내 머리를 잠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빠의 뇌경색 이후 정말 오랜만에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든 것이다. 하지만 S의 입장에서는 내가 너무 뜬금없이 전화를 해서 저렇게 이야기했으니 얼마나 당황했을까? 그래서였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이 운동을 권했던 S는 생각보다 단호하게 이 운동의 단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언니 클라이밍은 생각보다 너무 힘든 운동이에요. 손에 굳은살은 기본이고 온몸에 멍이 들고 쉽게 늘지 않아서 많이 짜증 날 수도 있어요. 거기다 언니 성격을 제가 잘 모르니 이 운동이 금방 실증이 날수도 언니에게 하나도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어요. 그래도 하시겠어요? 하지만 그 모든 이야기들은 내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나는 모든 이야기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린 후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래도 할 거야!!”     


 그렇게 나와 클라이밍의 아름다운(?) 인연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 S는 이날을 회상하며 그날 내가 NO라고 답하면 어쩌나 조마조마했다고 한다. 그렇게 조마조마했는데 왜 시작하는 사람에게 장점보다 단점을 먼저 말했냐고 묻자 S는 사악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언니의 목소리에서 클창의 조짐을 느꼈거든요.”     


어쩌면 나만 몰랐을 뿐.. 클라이밍과 나는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 아닐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