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듣고 싶지 않은 그 소리
사람들은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한다. 비슷한 것이라 할지라도 본인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 남이 가진 것이 더 좋아 보인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그런 심리?! 어렸을 적 나 역시 남들이 가진 많은 것들을 부러워하고 탐내고 시기 질투 한 적이 있었다.
164cm의 신장. (지금은 165cm이다!!) 신장을 이야기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당한 키를 가지고 있다며 부러워했다. 하지만 당사자인 나는 인정할 수도 만족하지도 않았다. 키가 큰 애들은 모델 같아 이뻐 보였고 작은 애들은 아담해서 귀여워 보였으나 그 중간 키인 나는 이도저도 아닌 그런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하나하나 남들과 비교했기에 참으로 피곤하고 힘든 시절을 보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이가 들면서 이런 비교들을 점점 사라지게 되었다. 다름의 미학을 알게 되었으며 각자의 개성을 인정하게 되었다. 또한 노력으로 교정할 수 있는 것들은 노력으로 극복하려 했고 아예 교정이 불가능한 것들은 깔끔하게 포기하게 되었다. 복잡한 인생 비교까지 하면서 어렵게 살 필요 있어?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이렇게 글로만 보면 꽤나 성인군자 같은 삶을 살 것 같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건 여전한 안 비밀이다.
어쨌든 요즘은 웬만한 건 부러워하지 않으려고 하고 부럽지도 않다. 비교는 시간 낭비다!! 그 시간에 자기 발전을!! (이라 쓰고 운동이라 읽는다)이라 외치지만 신기하게 절대 포기 하지 못하는 것이 하나가 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너무나 갖고 싶지만 절대로 가질 수 없는 그것! 가지려면 다시 태어나는 것 밖에 방법이 없는 그것!! 바로 목소리이다.
분명 아주 어렸을 적 꾀꼬리 같은 목소리를 가졌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변성기가 왔을 때 아무 생각 없이 목을 함부로 썼고 그 이후 나의 목소리는 약간은 탁한 소리를 띄게 되었다. 혹자는 말한다. 허스키한 목소리가 매력이라고 말이다. 다른 의견들은 다 수용하고 이해하려 하지만 이 말만은 도대체 아직까지도 받아 들릴 수가 없다. 거봐! 여전히 쪼잔쟁이라니까?!
목소리에 관한 슬픈 에피소드도 참 많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 친구 집에 전화를 했는데 친구 부모님께서 남자인 줄 알고 친구를 바꿔주지 않은 일, 이와 반대로 남자친구 집에 전화를 걸었을 땐 사내자식이 왜 이리 힘이 없냐며 걱정 아닌 걱정까지 해주신 일 등등 목소리와 관련된 에피소드로 밤새워 말할 수 있는 사람. 그 사람 바로 여기 있습니다.
하지만 목소리는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 만족하진 않았지만 나이가 들며 크게 불편한 점이 없었기에 그냥저냥 살아가고 있었다. 물론 진짜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으면 이 글이 쓰지 않았겠지.. 일상생활에서 전혀 불편하지 않던 이 목소리가 클라이밍을 할 때 불편할 줄이야.. 아. 신이시여 평안하게 잘 살고 있던 저에게 왜 또 이런 시련을 주십니까?
남들이 보면 다 같은 클라이밍이지만 그 안에도 다양한 분야가 존재한다. 스피드 클라이밍, 볼더링, 그리고 리드. 내가 주로 하는 클라이밍은 리드를 기반으로 하는 지구력 클라이밍. 지구력 문제들은 다른 운동들에 비해 문제가 상당히 긴 편이다. 그래서 완등까지 빠르면 5분에서 길면 20분이 넘게 걸린다. 그래서 완등까지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호흡을 관리하는 것이다.
호흡법을 통해 심박수가 오르지 않게 하려 노력을 하지만 10분 넘게 벽에 매달리다 보면 호흡이 거칠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지사. 호흡이 거칠어지면 호흡법은 점점 통하지 않게 되고 크럭스 구간에 도달하면 원하지 않는 소리가 나게 된다. (나만 그럴 수도...)
자 이쯤 되면 감이 오시는가? 클라이밍과 목소리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말이다. 왜 클라이밍을 하며 목소리를 싫어하게 되었는지 말이다.
호흡이 거칠어진 이후 크럭스 구간에서 돌파를 위해 몸을 움직이면 신기하게 목에서는 알 수 없는 아저씨의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헉!! 혹은 악!! 주로 이런 소리를 동반하며 나오는 이 목소리는 심지어 엄청나게 우렁차다. 몰랐다. 내 목청이 이렇게 좋은지 말이다. (이렇게 목청이 좋으면 노래도 잘해야 하는데 노래는 못하는 미스터리!!)
우리 암장의 위치는 지하 1층. 하지만 내가 운동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 우리 암장 사람들은 빌딩 입구에서부터 알 수 있다고 한다. 어디선가 우렁찬 목소리로 악! 윽! 헉! 소리가 나는데 이럴 경우 100%의 확률로 내가 운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초반엔 센터장님께서 담배를 피우시러 1층에 올라가셨다가 놀라서 뛰어 내려오시기도 한다. 누가 다쳐서 내는 소리가 아닌가 하고 말이다. 아하하. 오늘도 아줌마는 1 부끄러움 적립 합니다.
처음엔 인지하지 못했다. 내 목소리가 얼마나 크고 특이한지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촬영 된 영상을 돌려보며 들리는 그 이상한 목소리를 듣고 좌절하고 말았다. 이렇게 크다고? 그리고 이렇게 이상하다고? (정말 아저씨가 내는 단발의 비명 소리가 난다.)
그날 이후 결심했다. 아무리 호흡이 후 달려도 아무리 어려운 크럭스 구간이 도달하여도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겠다고 말이다. 이 소리를 내는 것 자체도 참으로 쪽팔린 일이지만 이 목소리를 듣고 운동하는 다른 암장 회원들은 무슨 잘못을 했단 말인가? 아무런 잘못도 없는 그들에게 고막 테러를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렇게 결심 한 다음 날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고 운동을 하리라 마음먹었다. 다른 날과 다르게 경건하고 굳은 마음을 가지고 오늘은 절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는다!!라고 다짐을 한 후 문제를 풀어나갔다. 그리고 도달한 크럭스 구간!! 최대한 의식해 소리를 내지 않고 홀드를 잡으려는 순간!!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떨어지고 말았다.
처음엔 그냥 힘이 없어서 호흡이 달려서 그런 줄 알았다. 그래서 다시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고 그 홀드를 잡으려 했으나 그 홀드는 결코 잡히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른 암장 회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다시 한번 아저씨를 소환했다. 그러자 너무나 쉽게 잡히는 홀드.
헐! 이게 뭔가요? 목소리가 삼손의 머리카락 같은 거였다니!! 목소리를 안 내니 홀드를 못 잡는다니 이게 말입니까 방구입니까!!!! 이렇게 오늘도 1 좌절을 또 적립하게 되었다.
문제를 다 풀고 좌절모드로 앉아있는 나에게 암장의 회원들이 찾아왔다. 오늘은 왜 또 좌절 모드냐? 묻는 그들에게 이 모든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다들 크게 웃으며 자신들은 상관없으니 소리를 내며 운동을 해도 된다고 했다. (단, 센터장님은 절대 소리 내지 말라고 하셨다. 너무 부끄럽다고... 인정.....)
이 이야기는 무려 1년이 넘은 이야기이지만 여전히 운동을 할 때면 걸쭉한 목소리를 가지신 아저씨가 소환된다. 더군다나 요즘 푸는 문제의 난이도가 상승하여 이 아저씨는 더 자주 소환이 되곤 한다. 가끔 센터장님께서도 문제를 못 풀고 있는 나를 발견하시면 “야 아저씨 소환해!! 그럼 할 수 있어!!”라고 하시기도 한다. 여전히 부끄러움 1 적립하는 아줌마는 오늘도 웁니다.
듣고 싶지 않지만 들어야만 하는 그놈 목소리. 이 놈 목소리 안 내고 운동 잘하는 법은 없는 걸까? 아시는 분 답 좀 알려주세요. 평생 은인으로 모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