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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 J Apr 24. 2024

EP.39 구멍은 손바닥에도 생깁니다.

- 근자감으로 얻은 상처

 얼마 전까지 인정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확실해진 사실 바로 내가 운동중독자란 것!! 요즘 나의 일주일 루틴을 보면 이렇다. 수요일과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집에서 항상 풀업 연습을 한다. 그리고 월요일과 토요일은 폴댄스 학원에 가고(시간이 되면 수요일에도 간다) 월화목금은 클라이밍을 하러 간다. 이 정도만 해도 주변에서 기함을 토하는데 날씨가 좋아 요즘은 화목에는 러닝을 뛴다. 그렇다. 요즘 나의 일상은 운동에 의한 운동을 위한 날들이다.   

  

 처음 이 루틴을 만들고 체력이 심하게 달렸다.(모든 운동 후 낮잠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아니 도대체 건강하자고 운동하자는 건데 하루가 다르게 지치고 힘든 내 모습에 이게 맞아? 했지만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차츰 이 모든 상황에 적응해 나가는 것은 물론 눈에 띄게 체력이 좋아졌다. 이러려고 운동하는 것이지요. 바로 이게 운동의 맛 아니겠습니까?      


 사실 체력이 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꽤 오랜 기간 체력은 부족한 것이라고 믿고 살아왔던 1인이라 혼자서는 체력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무지렁이의 체력의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차린 것은 우리 암장 사람들이다.      


 여전히 모든 동작에서 헤매고 완등은 여전히 머나먼 이야기인 나에게 암장 사람들은 예전보다 몸이 가벼워졌다며, 힘도 덜 들어 보인다고 했다.(특히 어깨 힘이 좋아졌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처음 한 두 사람이 이야기했을 때는 그저 입바른 소리겠거니 했는데 날이 갈수록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거의 매일 체력이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예전과 다른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몇 달 전까지 슬럼프를 겪고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한판만 해도 전완근이 터질 것 같고 두 번 다시는 못 붙을 것 같았는데 요즘은 가뿐히 두세 판은 도는 것은 물론 집에 갈 때도 지쳐서 가는 것이 아닌 룰루랄라 노래를 부르며 가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이전엔 집에 거의 기어갔다)      


 오! 생각해 보니 진짜 체력이 늘었잖아?! 역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구나. 클라이밍을 하기 전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한다고 듣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내가 내 입으로 직접 이런 말을 하다니. 믿을 수 없다. 하긴 운동 헤이터를 운동에 미친 자로 만든 것이 클라이밍 아니던가. 역시 너란 운동은 죽어도 버릴 수 없는 마약 같은 존재다.      


 체력이 늘었음을 인지함과 동시에 억누르고 있었던 근자감 녀석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반전은 이 근자감 녀석은 절대 암장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존재감 0%라는 것. 왜냐면 이곳에는 나보다 운동을 못하는 사람이 1도 없기에 이 녀석은 절대 단 한 번도 이곳에서는 나온 적이 없다. 이 녀석도 눈치라는 것이 있긴 하거든요. 근데 왜일까? 이 녀석이 체력이란 밥을 먹고 정신머리를 어디다 팔아버렸는지 암장에서도 슬슬 자신의 존재감을 어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음.. 이거 위험한데?     


 하지만 위험하다고 말리면 내가 아니지. 나란 사람. 감정에 항상 지는 나약한 사람 아니던가? 어느 순간 근자감은 또 다른 운동의 원동력이 되어갔다. 그래서 평소 도전하지 못했던 조금 어려운 난이도의 문제들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어? 생각보다 어렵지 않잖아?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들이 어느새 근자감의 먹이가 되어 그 녀석은 무자비하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우리 암장에는 극악의 난이도의 문제가 있다. (물론 나의 기준에서) 깡통이 달려있는 벽에 있는 일명 깡통 문제와 말도 안 되는 각도를 자랑하는 오버행 벽에 존재하는 일명 오버 문제. 암장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이 문제들은 존재해 왔지만 그 문제들은 나와는 관련이 없기에 단 한 번도 쳐다볼 생각도 풀 생각도 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놈의 근자감이란 녀석이 대뜸 말하는 것이 아닌가? 야 너도 할 수 있어!!      


 아마 평소에 나였으면 근자감의 이야기를 가볍게 무시했겠지만 지금의 나는 예전과 다르지 아니한가? 체력도 좋아졌고, 어깨 힘도 좋아졌고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그렇게 무식하게 그 문제들에 하나 둘 도전하기 시작했다. (근자감 녀석이 너무 큰 것도 문제다.)     


 문제를 푸는 동안 수 십 번 떨어지긴 했지만 어쨌든 마지막 홀드를 잡을 수 있었다. 장족의 발전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것 맞죠? 내가 깡통문제를 풀다니! 오버 문제에 도전하다니! 나이가 들면서 발전이란 건 더 이상 내 사전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봅니다. 나도 발전하고 있어 엄마!!     


 그렇게 점점 운동에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신감이란 무엇인가? 운동이란 단어와 절대 어울려서는 안 되는 단어 아니던가? 물론 충분한 연습과 충분한 체력 등 기초가 탄탄한 자신감은 언제든 환영이다. 하지만 나에게 생긴 자신감은 그 모든 것들을 뛰어넘어 생긴 멍청한 자신감이다. 그래 사실 자신감이 아니지. 허영 덩어리 근자감이지.     


 그렇게 허영 덩어리 근자감이 점점 커지던 어느 날 평소와 같이 암장에 도착해 자신감을 뿜뿜 거리며 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근자감은 또 나를 속였다. 오늘도 그 어려운 모든 것들을 할 수 있으리라고 말이다. 어느새 근자감의 노예가 된 나는 의심도 없이 난이도 있는 문제에 도전했고 크럭스 구간에서 악!! 소리와 함께 떨어졌다.      


그리곤 손에 커다란 구멍을 얻게 되었다. 또 왠 헛소리냐고요? 하지만 사실인걸요.     


 아주 예전에도 말했지만 클라이밍은 주로 손을 쓰는 운동이기에 손가락 혹은 손바닥 힘이 부족한데 홀드를 억지로 잡으면 마찰력에 의해 손이 찢어진다. 자신의 체력보다 높은 단계의 문제를 계속 풀다 보니 나도 모르게 손의 힘은 점점 줄고 있었고 그것을 인정하기 싫어 홀드를 억지로 잡고 문제를 풀다 보니 손에 구멍(상처)이 생긴 것이다. (이것을 구멍이라 부르는 이유는 구멍처럼 손이 파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큰 구멍은 초보 시절에도 생기지 않았었는데!! 얼마나 무리를 했으면 손이 이렇게 되었을까? 이 상황에 한숨이 나면서도 웃음이 났다. 멍청한 근자감에 속아 자신의 한계도 모르고 운동한 자신에게 한숨이 났으나 근자감 덕분에 크럭스 구간에도 무서워하지 않고 칠 수 있는 자신에 감동하여 웃음이 났다. (예전 같았으면 시도조차 하지 않고 그냥 떨어졌다.)      


좋으면서도 싫고 미우면서도 사랑스러운 근자감 녀석. 이 녀석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도 근자감 녀석아 당분간은 우리 멀리하자. 손에 구멍도 구멍인데. 무릎이 너 때문에 멍이 너무 많이 들었다고 그만 좀 꺼져 달라고 전해달래. 우리 조금만 아주 잠시 조금만 멀어졌다가 다시 만나자. 그때까지 좀만 자중하고 있어. 내가 곧 다시 찾아갈게! 그땐 내가 체력도 기술도 좀 더 보충에서 근자감이 아닌 자신감으로 변화시켜 줄게!! 기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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