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전쟁의 열기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오랫동안 업계의 절대 강자로 자리 잡아온 엔비디아와, 데이터·플랫폼·AI 기술을 모두 갖춘 구글이 드디어 정면으로 맞붙은 것이다. 구글은 자사 블로그에서 “우리는 더 이상 외부 칩 공급에 의존하지 않는다”고 선언하며 엔비디아 중심의 GPU 생태계를 직접 겨냥했고, 엔비디아는 “구글의 성공이 반갑지만, 여전히 한 세대 앞선 플랫폼은 엔비디아”라고 받아치며 신경전을 이어갔다. 기술 경쟁을 넘어 AI 칩 시장의 주도권을 둘러싼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충돌이 예상보다 훨씬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더 높은 성능, 더 낮은 전력, 더 합리적인 가격을 갖춘 AI 칩을 향한 기대가 커지면서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이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AI 칩 설계는 엔비디아가 독주해왔지만, 이제는 구글과 메타, 테슬라 같은 빅테크가 각자 칩 개발에 뛰어들며 시장은 자연스럽게 다중 체제로 확장되고 있다. 칩을 설계하는 회사가 많아질수록, 실제로 칩을 만들고 메모리를 공급하는 단계에서 일이 막히기 쉽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한국 기업들이 강점을 가진 분야라는 점이 눈에 띈다.
한국 반도체는 이미 충분히 준비되어 있었다. HBM, LPDDR, GDDR 등 여러 메모리 기술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기업들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다. 샘 올트먼이 한국을 찾아 월 90만 개 규모의 메모리 공급을 논의한 사실이나, 삼성전자가 테슬라로부터 23조 원 규모의 AI 칩 생산을 맡게 된 소식은 이러한 변화가 단순한 흐름이 아니라 거대한 방향 전환임을 보여준다. 구글 TPU의 부상은 이제 엔비디아 중심 생태계에 균열이 생겼다는 의미를 넘어, AI 칩 산업의 중심축이 설계에서 제조로 서서히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다.
결국 AI 패권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조용하지만 가장 확실하게 빛나는 곳이 있다. 바로 메모리와 제조를 책임지는 한국 반도체 기업들이다. 구글과 엔비디아의 충돌은 거대한 전쟁의 시작처럼 보이지만, 그 뒤편에서 새로운 기회를 가장 먼저 발견할 주체는 어쩌면 우리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