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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이 파산하면 비트코인은?

야프 섬의 화폐로 비트코인 이해하기

비트코인과 가장 유사한 형태의 화폐는 서태평양 미크로네시아 연방에 속한 야프(Yap) 섬의 라이(Rai)다. 가운데에 큰 구멍이 뚫린 원반 형태의 돌인 라이는 야프섬 주민들이 쓰는 화폐이다. 라이의 원재료인 석회암은 야프 섬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근처 팔라우 섬에서 이를 채굴한 뒤 카누를 통해 들여와야 한다. 무거운 돌인 라이를 나르고 야프 섬으로 들여오는 과정이 몹시 힘들기 때문에 라이의 공급량을 인위적으로 늘리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러한 특성은 라이가 바람직한 화폐로 기능할 수 있게 해 준다. 실제로 19세기 서양의 제국주의자들이 야프 섬을 침략하기 전까지, 라이는 수백 년 이상 야프 섬의 화폐로 문제없이 쓰였다. (출처: 디지털 금으로 진화하는 비트코인)


갑자기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섬의 화폐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비트코인과 유사한 형태의 화폐를 통해 비트코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위 글만 봐서는 라이가 마치 현대의 동전과 같다고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다. 라이는 돌화폐로서 그 가치가 크기와 무게로 매겨진다. 처음에는 작았지만 그 크기와 무게가 점점 커져서 현재 남아 있는 라이는 대부분 웬만한 타이어보다 크다. 돌화폐가 아니라 거의 바위화폐라고 불러야 할 정도다. 크고 무거우니 이동 자체가 용이하지 않다. 심지어 어떤 라이는 무게가 4톤 가까이 나가는데 매번 거래할 때마다 무거운 돌을 움직일 수는 없는 법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야프섬 주민들은 기발한 방법을 생각해 냈다. 라이 소유권의 이전을 주민들에게 공개적으로 알리는 방식을 채택한 것이다. 돌화폐를 주고받지 않고 둔 채 "저 라이는 이제부터 누구 거"라고 선포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이를 전승하는 방식으로 거래를 완성한다.


이것이 바로 비트코인과 유사한 점이다. 탈중앙화를 지향하는 비트코인은 은행처럼 거래 기록을 남기고 신용카드사처럼 결제를 승인하는 중앙 기관이 없다. 대신 분산원장 기술을 사용하여 비트코인 네트워크의 모든 참여자가 거래 정보를 보관하게 된다. 예를 들어 A가 B에게 비트코인을 전송했다면, 그 과정을 여러 채굴자가 경쟁적으로 검증하고, 이상이 없는 거래로 인정된 비트코인에는 소유권 이전이 기록된다. 이 기록은 모든 네트워크 참여자들이 공유하는 거래 내역에 업데이트됨으로써 거래가 완료된다. A가 B에게 비트코인을 보냈다는 사실을 모든 네트워크 참여자들이 인지하므로 해당 비트코인에 대한 소유권자에 대한 정보를 모든 참여자가 공유하게 된다. 따라서 은행과 같은 제3자가 개입하지 않아도 거래가 이루어지고, 지불 및 결제 시스템이 유지된다. 비트코인을 이용한 거래의 핵심 사항은 야프섬의 거래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통화(비트코인)의 소유권에 관한 정보를 모든 참여자가 공유하는 것이다.


왜 이런 방식을 채택했을까. 사람들이 완벽하다고 믿고 있는 기존 중앙집중형 시스템에 사실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중앙집중형 시스템은 원장을 관리하는 제3의 기관을 설립하고 해당 기관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는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계좌를 관리하는 은행, 결제승인하는 신용카드사가 대표적이다. 여기에는 특정 기관이 원장을 조작 또는 개인정보를 유출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시스템 오류 및 처리 속도 저하를 예방하고, 외부로부터의 악의적인 공격 및 조작 시도를 방지할 수 있다는 신뢰가 중요하다. 그런데 이 신뢰가 무너지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개인정보 대량 유출사건이다. 2013년 6월 경 KCB 신용평가사 직원 한 명이 카드사로 파견을 나가 주요 카드사(국민, 롯데, 농협)의 고객 개인정보를 유출시켰다. 카드사는 무려 7개월 동안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 중앙집중형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엄청난 피해를 몰고 온다. 실제로 신용카드사 개인정보 유출 사건의 경우 대한민국 경제 인구의 약 75%가 피해를 본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중앙집중형 시스템에서는 중앙 기관을 설립하여 운영하는데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중앙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훼손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감독과 감시 등 규제를 제도화하는 과정에서 비용이 발생하고, 전산 시스템의 오류 및 해킹 등이 발생하여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규모 인력과 설비를 투자하는 과정에서 비용이 발생한다. 자영업자가 편의점을 개업하기는 쉬워도 은행이나 신용카드사를 개업하기는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규모 조직을 설립, 운영하기 위한 비용은 당연히 이용자의 높은 수수료 부담으로 전가된다. 현금을 인출할 때의 출금 수수료, 신용카드의 결제 수수료 등이 그것이다. 


이에 비해 분산원장 기술은 효율성, 보안성 측면에서 장점을 가진다. 신뢰할 수 있는 중앙 기관을 설립, 운영하기 위한 인력 및 자원 투입이 불필요하고 시스템 오류 등을 예방하고 해킹 등 보안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설비 투자비용도 절감이 가능하다. 모든 정보가 집중된 중앙 서버가 없고 이를 담당하는 조직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해킹 등의 악의적인 공격으로부터 안전하며, 원장이 모든 참가자에게 공개되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정보 유출 소지가 없다. 뿐만 아니라 중앙 기관의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면 전체 서비스에 문제가 발생하는 중앙집중형 시스템과 달리 일부 참가 시스템에 오류 또는 성능저하가 발생하더라도 전체 네트워크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는 점에서 안정성 역시 뛰어나다. 


따라서 중앙집중형 시스템에 문제가 있을 때마다 비트코인은 주목받을 것이다. 실제로 2023년 3월 미국에서 실리콘밸리은행을 비롯한 은행이 줄줄이 파산했을 때 비트코인은 10% 가까이 급등했다. 중앙화된 은행의 부실은 탈중앙화된 코인, 특히 비트코인의 장점을 부각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앙집중형 시스템에 문제가 생길 것으로 예측된다면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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