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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딩더리치 Feb 14. 2024

디지털 골드, 비트코인

비트코인은 왜 디지털 골드일까?

 돈은 거의 모든 것을 다른 거의 모든 것으로 바꿀 수 있게 해주는 보편적인 교환수단이다. 여가보다 집안 청소가 더 우선인 아내가 남편의 쓰지 않는 플레이스테이션을 로봇청소기로 바꾸고 싶다고 하자. 이때 물물교환을 떠올린다면 수렵채집인의 사고방식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현대인이라면 먼저 플레이스테이션을 팔아 돈을 확보하고 이 돈을 통해 로봇청소기를 구매한다. 플레이스테이션이 로봇청소기로 바뀐 것이다. 


 이상적인 형태의 돈은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것을 다른 것으로 바꾸게 해줄 뿐 아니라 부를 축적할 수 있게도 해준다. 예컨대 곡물은 몇 년씩 저장할 수 있지만 그러려면 커다란 창고를 지어야 하고 쥐와 곰팡이, 물, 불, 도둑을 막을 필요가 있다. 돈은 그것이 종이든, 컴퓨터 비트든, 혹은 별보배고둥껍데기든, 이런 문제를 해결해 준다. 별보배고둥 껍데기는 썩지 않고, 쥐의 입맛에 맞지도 않으며, 불에 타지 않고, 금고에 넣어둘 수 있을 정도로 작다.


 부를 이용하려면 단순히 저장해 두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이 장소에서 저 장소로 이동시킬 필요가 있다. 어떤 형태의 부, 예컨대 부동산 같은 것들은 전혀 이동할 수 없다. 화폐가 없는 세상의 부유한 농부가 먼 지방으로 이주한다고 상상해 보자. 그의 부는 집과 논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농부는 이 중 어느 것도 가지고 갈 수가 없다. 이것을 많은 양의 쌀과 바꿀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많은 쌀을 수송하기는 쉽지 않으며, 수송비도 비싸게 들 것이다. 돈은 이런 문제를 해결해 준다. 농부는 재산을 팔고 지폐 몇 장과 신용카드를 챙겨서 어디든 쉽게 갈 수 있다. 


 금은 교환과 저장, 이동 중 특히나 저장 기능을 탁월하게 수행하는 훌륭한 화폐다. 다른 금속 대비 금은 녹슬거나 없어지지 않기 때문에 불변의 가치를 유지한다. 2500년 전 로마의 화폐로 쓰이던 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금으로서 가치를 지닌다. 게다가 금은 화학적 특성으로 인해 인위적으로 제조될 수 없다. 오직 정직하게 땅을 파고 채굴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 채굴 단가가 싸졌다고 하더라도 금은 매년 약 2퍼센트 수준으로만 증가하며 희소성을 유지하고 있다. 


 비트코인 역시 가치 저장 기능을 탁월하게 수행한다는 면에서 금과 공통점이 있다. 또한 2100만 개로 공급량이 정해져 있어 희소성을 지닌다는 점, 특정 주체가 통제하지 못한다다는 점, 상당한 자원을 투여해야만 획득이 가능하다는 점, 경제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인식하는 추종자들이 세계에 퍼져 있다는 등을 고려하면 비트코인은 디지털 금으로 불릴 자격이 있다. 단지 금이 물리적 실체가 있는 반면 비트코인은 디지털 세계 속에서만 존재하는 무형의 가치라는 차이가 있다. 


 개인의 경제 주권 측면에서 비트코인은 금보다 유용하다. 금과는 달리 비트코인은 권력의 횡포에서 벗어나 개인이 자유롭게 가치를 저장하고 국경을 초월해 가치를 이전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 유형 자산인 금은 국가의 통제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1930년대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국가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개인이 보유한 금을 몰수할 수 있다. 또한, 미국의 압력에 의해 반미 국가들의 환율이 요동치고 경제가 망가지는 과정에서, 반미 국가의 시민들은 재산을 지키기 어렵다. 정세가 극도로 불안해지면서 정부와 은행마저 신뢰할 수 없게 되고 내전이 발발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집 금고에 금괴를 보관하는 것은 그리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가치의 저장과 이동이라는 관점에서 비트코인은 훌륭히 제 기능을 한다. 아무에게도 허락받지 않고 네트워크에 참여해 자기 돈을 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트코인은 금과 확연히 다르다. 비트코인으로 가치를 저장한 개인은 개인 키만 알고 있으면 제3자의 간섭에서 벗어나 전 세계 어디든 전송할 수 있다. 실제로 베네수엘라를 떠나 해외로 이민 간 사람들은 돈을 번 뒤 본국에 남아 있는 가족들의 생활비를 대기 위해 비트코인을 활용한다. 베네수엘라 시민들은 부패한 국경 수비대나 막대한 수수료를 뜯어 가는 환전상을 거치지 않고도 비트코인을 통해 경제 주권을 가지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 결국 비트코인은 디지털 금으로 인정받을 것이다. 그리고 가치의 저장과 이동 측면에서 금보다 더 유용한 디지털 금으로서 활약할 것이다. 1519년 에르난 코스테스 일당이 멕시코를 침략했다. 이전까지 세계와 격리되어 있던 아즈텍인들은 침략자가 금에 집착하는 이유를 몰랐다. 금은 먹을 수도 마실 수도 없고 천을 짤 수도 없으며 너무 물러서 도구나 무기를 만들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그와 같은 시기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는 지금 비트코인을 인정하고 주도권을 잡기 위해 관련 제도를 정비하고 나섰다. 디지털 강국이라고 자칭하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비트코인에 대한 인식과 제도가 미흡하다. 하루빨리 디지털 금으로서 비트코인을 인정하고 관련 제도를 정비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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