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의 기능으로 보는 비트코인
과연 화폐로 사용 가능할까?
화폐란 무엇인가? 흔히 주화나 지폐를 떠올린다. 그러나 화폐는 주화나 지폐가 아니다. 화폐는 '사물의 가치를 나타내며, 상품의 교환을 매개하고, 재산 축적의 대상으로도 사람들이 기꺼이 사용하려는 모든 것'을 말한다. 화폐의 형태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양하다. 별보배고동 껍데기는 아프리카, 남아시아, 동아시아, 오세아니아 전역에서 약 4천 년간 화폐로 쓰였다. 서태평양 미크로네시아연방에 속한 야프(Yap) 섬에서는 1500년간 석회암 덩어리를 화폐로 사용했다. 현대의 교도소나 전쟁포로 수용소에서는 종종 담배가 화폐의 역할을 했다. 심지어 담배를 피우지 않는 수인들도 담배를 지불수단으로 기꺼이 받아들였다. 이우슈비츠의 생존자 한 사람은 수용소에서 사용된 담배 화폐를 이렇게 묘사했다. "우리에게는 우리만의 화폐가 있었고 누구도 그 가치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것은 담배였다. 모든 물품의 가격은 담배로 제시되었다."
심지어 화폐하면 흔히 떠올리는 주화와 지폐는 오늘날 화폐의 형태로서는 드문 것이다. 세계 전체의 화폐 총량은 약 60조 달러지만 주화와 지폐의 총액은 6조 달러 미만이다. 돈의 90퍼센트 이상, 우리 계좌에 나타나는 50조 달러 이상의 액수는 컴퓨터 서버에만 존재한다. 그에 따라 대부분의 상거래는 하나의 컴퓨터 파일에 들어 있는 전자 데이터를 다른 파일로 옮기는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실제로 돈을 주고 받지는 않는다. 가령 집을 살 때 가방에 가득 찬 지폐로 지불하는 것은 범죄자밖에 없다. 사람들이 전자 데이터를 받는 대가로 재화와 용역을 기꺼이 거래하려 하는 한, 그것은 반짝이는 주화나 빳빳한 지폐보다 낫다.
돌덩어리, 조개껍데기, 곡식, 금속, 은행의 직인이 찍힌 종이, 전자 데이터...화폐는 더 작고 가벼운 동시에 보관이 용이한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리고 암호화폐라 불리는 새로운 전자 데이터, 비트코인이 등장했다. 기본적으로 전자 데이터이기 때문에 작고 가벼운 동시에 보관이 용이하다. 화폐로서의 기능만 잘 수행한다면 비트코인 역시 화폐로서 널리 사용될 수 있는 성질을 가졌다. 화폐는 교환의 매개수단, 가치저장의 수단 그리고 가치척도의 단위로 기능한다. 이 가운데 화폐의 핵심기능으로 평가받는 것은 교환의 매개수단이고, 가치저장과 가치척도로서의 기능은 화폐가 교환의 매개수단이기 때문에 발휘할 수 있는 기능이다. 비트코인은 화폐의 기능을 잘 수행하고 있을까?
교환 매개의 기능을 하는가.
화폐는 재화나 서비스를 교환할 때 교환 수단으로 쓰여야 한다. 2010년 5월 22일은 비트코인이 교환 매개로서의 가치를 처음으로 입증한 날이다. 사상 처음으로 비트코인을 주고 피자를 사 먹은 사례가 나타난 것이다. 그 후로 13년이 지났다. 일부 국가에서 합법적 결제 수단으로 인정받았으며, 전 세계 비트코인 결제 가맹점 수는 꾸준히 증가해 2024년 1월 9일 기준 6,336곳이 있다. 기업 차원에서도 디지털 자산을 결제 옵션에 포함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서 실제 사용 가능한 곳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사실상 교환 매개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테슬라는 2021년 3월 웹사이트에 모델S, 모델3, 모델X, 모델Y 결제 수단으로 신용카드뿐 아니라 비트코인 결제를 추가했다가 같은 해 5월 환경 문제를 이유로 비트코인 결제 서비스를 중단했다.
가치 저장의 기능을 하는가.
이상적인 형태의 화폐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것을 다른 것으로 바꾸게 해 줄 뿐 아니라 부를 축적할 수 있게도 해준다. 예컨대 금은 썩지 않고, 쥐의 입맛에 맞지도 않으며, 불에 타지 않고, 금고에 넣어둘 수 있을 정도로 작다. 더군다나 희소성이 있어서 보관해 두면 가치가 유지될 뿐 아니라 상승한다. 고대 이집트부터 현대 국가에 이르기까지 금은 수천 년 동안 가치 저장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비트코인 역시 마찬가지다. 썩지 않고, 쥐의 입맛에 맞지도 않으며, 불에 타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다. 더군다나 희소성이 있어서 보관해 두면 가치가 유지될 뿐 아니라 상승한다. 적어도 지난 10년 간은 그래왔다. 사실상 가치 저장의 기능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가치 척도의 기능을 하는가.
화폐는 재화나 서비스의 가치를 가격으로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대한민국의 통화인 대한민국 원을 통해 가치를 측정한다. 예컨대 애플의 아이폰15 가격은 125GB 기준 125만 원이고 현대자동차의 그랜저 가격은 풀옵션 기준 5600만 원이다. 화폐가 있기에 두 상품의 가치를 가격으로 나타낼 수 있고, 이 두 상품의 가치가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화폐의 가치가 일정해야 한다. 1원의 가치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변함없이 1원의 가치를 가져야만 재화나 서비스의 가치를 가격으로 측정할 수 있다. 문제는 비트코인의 가치 변동이 매우 크다는 것에 있다. 오늘은 자동차가 1비트코인이지만 내일은 2비트코인이라고 표시해야 할지 모른다. 사실상 가치 척도로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처럼 비트코인은 아직 화폐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가치 저장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으나, 가치 척도로서의 기능을 전혀 수행하지 못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화폐의 핵심인 교환 매개 수단으로써의 기능이 매우 제한적이다. 비트코인에 투자하고 있는 필자 역시, 중고 자동차를 거래할 때 상대방과 비트코인으로 거래하지 않을 것이다. 따로 디지털 지갑을 만들어야 하는 등 불편함과 함께, 실시간 가격 변동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비트코인은 가상화폐가 아닌 가상자산으로 그 성격이 변화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화폐인 달러는 아니더라도,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인정받는 자산인 금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 즉, 비트코인은 디지털 달러가 아닌 디지털 금으로 진화 중이다. 다음 포스트에서는 비트코인이 디지털 금으로 진화 중이라고 한 이유에 대해 논해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