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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여자 Mar 20. 2021

편지 잘 써주는 예쁜 남편

부부사이 마음을 글로 전하는 법 : 아내의 이야기

18년 3월 26일의 메모

 오빠는 순간의 감정과 느낌을 예쁜 언어로 잘 표현한다.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폰 메모장에 이런 글이 남아있다. 아마도 그에게 감동의 편지를 받았던 날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남편이 남자친구이던 시절, 그를 만나면서 가장 좋았던 점 중 하나는 그에게 받는 편지였다. 그는 내가 아는 어떤 남자 사람보다 편지를 잘, 그리고 자주 써주는 사람이다. 지금은 1년에 몇 번 특별한 날에만 써주고 있지만 연애 초반에 그는 거의 매일 편지를 적어주곤 했다. 물론 여기서 편지는 <누구에게>로 시작해서 한 페이지를 빼곡히 채우고 <누구로부터>로 끝이나는 일반적인 형식을 갖춘 것이 아닐 때도 많았다. 카톡으로 보내는 한 줄의 짧은 메모이기도, 때론 낙서같이 그려진 나를 닮은 그림에 달린 말풍선이기도 했다.





마음을 전하는 가장 좋은 방법, 편지

어렸을 때 일기쓰기 숙제를 힘들어했었다. 초등학생의 삶이 뭐 그리 특별할 게 있었겠나. 하교 후 동생과 놀고, 학원에 다녀오고, 숙제하고 나면 끝이었던 하루를 글로 매일 적는 일은 내게 곤욕이었다. 엄마는 일기쓰기 숙제에 스트레스를 받는 내게 “일기가 꼭 줄글의 형식을 필요는 없어. 그림을 그려도 되고, 시를 적어봐도 된단다.” 그 때부터였을까. 나는 종종 줄글의 일기 대신 짧은 시를 쓰기도 했고 소설 속 주인공을 상상하며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독후감을 대신하기도 했다.


남편의 편지는 신기하게도 나의 어린시절 일기처럼 형식에 구애받지 않되, 그 안에 자유로이 마음을 온전히 담는다. 한 번은 제빵 수업을 듣던 내게 오늘은 어떤 빵을 만드느냐 묻길래 <쌀식빵>을 만든다고 하자 <쌀식빵>을 만드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쓴 시를 보내준 적이 있었다. 이렇게 그 날의 대화에서 등장하는 사소한 주제들이 그가 쓰는 시의 주제가 되었다. 그가 나를 꼬시는 데 있어서 5할은 그의 글이, 3할은 그의 그림이 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연애할 때 만큼은 내 삶의 주인공이 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기에 우리는 끊임없이 연애를 하게 되는 것”이라고 곽정은님이 모 방송에서 말씀하신 걸 들은 적이 있다. 그는 나를 매일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사람이었다. 지친 퇴근 길에 혹은 막 잠에서 깨부스스한 정신에 읽게되는 그의 편지는 삶의 연료이자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되고싶게 하는 선한 에너지가 되었다.



이번 글을 마치며,

주고받은 편지가 많아 나중에 기회가 되면 남편과 우리의 편지를 모아서 책으로 만들어도 좋겠단 얘기를 했다. 생각만해도 무척이나 기대가 되는 멋진 일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고민이 된다. 치고 박고 치열하게 싸운 다음날 울며 “너는 나를 자꾸 화나게 한다.”, “같이 못살겠다.”, “그래도 이번엔 내가 잘못했다.”, “미안하다.” 갈겨적은 편지가 절반 이상이다. 우리가 주고받은 편지에 아마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싸움>, <다툼>, <화>, 그리고 <미안>이 아닐까 싶다. 적나라한 이야기가 모두 박제되어있는 편지들은 다시 읽기가 부끄럽고 불편하기도 하다. 그래도 우리 관계가 여기 오기까지 지나쳐간 살벌한 역사의 한 순간들이므로 소중히 보관한다.







안녕하세요, 그여자입니다. ‘그남자 활동하는 남편과 연애와 결혼, 부부생활을 주제로 매주 글을 씁니다.  글을 읽는 아내들이 행복했으면 합니다. 남편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확인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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