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는 FIRE를 꿈꿉니다 : 아내의 이야기
우리 부부는 너무나 다른 소비 패턴과 경제관념을 가지고 있다. 우리를 빗대어 자주 사용하는 메타포가 하나 있는데 바로 <창과 방패>다. 당연히 여기서 내가 <창>, 남편은 <방패>다. 쉽게 말해, 나는 공격형이고 남편은 방어형이다. 평소 우리 부부가 가지는 생각과 행동방식을 대변하는 이 비유는 자산을 모으고 관리하는 데에서도 아주 찰떡이다. 나는 <쓰는 만큼 벌면 된다>는 주의이고, 남편은 <버는 만큼 아껴 쓰자>는 생각이다. 나에게는 소비가 줄일 수 없는 상수이고 수입은 내 노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변수인데 남편은 수입은 크게 달라질 수 없기에 돈을 모으기 위해서는 소비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편이다.
- 아내의 생각
수입(↑) = 소비(-) + 저금(↑)
- 남편의 생각
수입(-) = 소비(↓) + 저금(↑)
여기서 다행인 건 우리 부부 모두 저금을 높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평소 저축을 통해 자산을 미리 축적해놓지 않으면 추운 겨울이 찾아왔을 때 이솝우화 속 베짱이 꼴을 면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둘은 어찌 보면 같은 개미지만, 나는 베짱이를 동경하는 개미이고 남편은 베짱이를 한심하게 생각하는 개미라고 해야 할까. 파가 조금 갈리는 개미 둘이 만나 한 가정을 이루니 갈등과 마찰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남편은 내가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남편의 경우 갖고 싶은 류의 물건이 생기면 우선 인터넷 서치를 통해 그 제품의 시세를 파악하고 그다음부터는 최저가로 사기 위한 발품 손품 팔이에 들어간다. 인고의 노력 끝에 원하던 물건을 남들보다 저렴한 가격에 획득하고는 기뻐한다. 나는 원하는 물건이 생기면 가장 빨리, 편하게 그 물건을 획득하기 위한 노력을 한다. 그게 온라인 구매든 백화점이든 아울렛이든 크게 중요하지 않다. 가끔 물건을 구매하고 혹시나 해서 가격을 찾아보기도 한다. 싸게 산 것 같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조금 비싸게 산 것 같을 땐 그래도 당장 잘 썼으니 됐다고 생각한다.
결혼 준비를 하던 때 혼수를 알아보러 백화점에 갔다가 마침 침대 매장에서 신혼부부를 위한 세일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바로 카드를 꺼내 드는 나를 보고 남편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내가 카드를 꺼내려 가방을 열자 남편은 다른 곳도 둘러보자며 점원분께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벗어났다. 당시 나는 침대는 혼수 중 가장 넉넉한 예산을 잡아놓은 부분이었고 마침 프로모션이 진행 중이었으며, 신혼집 입주와 함께 바로 침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은 백화점은 마진율이 높고 같은 모델이어도 다른 경로로 구매하는 것이 훨씬 돈을 아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우리는 이사를 하고 한참 동안 침대 없이 바닥에 도톰한 이불을 여러 겹 깔고 자며 첫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남편은 침대의 재질과 유형, 브랜드와 가격대 등을 모두 파악한 이후에야 나에게 침대를 살 수 있는 허락권을 주었다. 나는 아울렛, 가구단지 몇 곳을 더 돌아다녔고, 프레임은 국내 브랜드 가구매장에서 매트리스는 해외직구로 구매해 최초 예산보다 1/3 정도 되는 금액으로 비슷한 스펙의 침대를 사는 데에 성공했다.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잔지 한 달이 다 되어가던 때였다.
이와 비슷한 일들은 이후에도 여러 번 반복되었다. 전셋집이라 2년 뒤면 이사를 가야 하니 에어컨도 사지 말자고 할 땐 '확 그냥 엎어버릴까'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돈 때문에 우리가 크게 싸운 일은 없다. 이런저런 일로 결혼 후 싸움이 적지 않았던 우리가 돈 때문에 싸우지 않을 수 있던 이유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에게 남편의 이런 고집이 물론 성가시고 피곤한 일이긴 했지만, 나는 남편의 이런 부분을 본받아야 할 점이라고 생각했다. 돈을 절약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있는 남편을 보면서 결혼 전까지 흥청망청 생활했던 나를 반성하는 마음이 들었었다. 그리고 부모님 도움 없이도 괜찮은 출발을 할 수 있는 시드를 만든 남편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남편도 나를 많이 배려해줬다. 매달 꼬박꼬박 나가는 바이올린 레슨비를 이해해줬고, 지금은 코로나로 못 가지만 세신 마사지를 받는 것도 허락해줬다. 차를 구매할 때는 둘이 생각하는 모델이 두배 이상의 가격차이가 났기에, 여러 번의 조율 끝에 평균 가격 정도로 합의를 봤다.
김승호 회장은 <돈의 속성>에서 부자가 되기 위한 4가지 조건에 대해 얘기한다. 그 조건은 아래와 같다.
돈을 잘 버는 능력
돈을 잘 모으는 능력
돈을 잘 유지하는 능력
돈을 잘 쓰는 능력
부자가 되려면 일단 돈을 잘 벌어야 한다. 하지만 잘 벌기만 하고 흥청망청 써버리는 사람은 부자가 될 수 없다. 그렇다고 잘 모으기만 하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이라면 부자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잘 벌고, 잘 모을 줄 알아야 하며, 모은 자산을 잘 유지하면서도, 잘 쓸 줄 알아야 한다.
우리 부부는 함께할 때 이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게 된다. 나의 <창 : 공격적 성향>과 남편의 <방패 : 방어적 성향>는 서로에게 사용하게 되면 파국으로 치닫는다. 내가 <창>을 날카롭게 갈수록 남편의 <방패>는 두꺼워진다. 그럼 나는 그 두꺼워진 <방패>를 뚫고자 더 뾰족한 <창>을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창>과 <방패>가 공동의 목표를 가지는 순간 우리는 최고의 팀이 되는 것이다. 내가 시원하게 적진을 뚫고 나가면 남편은 날아오는 화살들을 방패로 잘 막아준다.
나는 남편이 더 큰 꿈을 꿀 수 있도록 부추긴다. 나는 언제나 원하는 음식을 맘껏 먹고 가지고 싶은 것들을 가지기 위해선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어진 것 안에서 잘 살면 된다고 생각하고 살던 남편은 나를 만나 삶이 풍요로워졌다고 얘기한다. 직장 외에 다른 일에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었고 투자라곤 은행 적금을 드는 것이 전부였던 남편은 퇴근하고 주식과 부동산 투자에 대한 책을 읽으며 공부한다. 나는 철없이 엄마의 신용카드를 들고 유럽 여행을 다녀오고 예쁜 옷을 갖고 싶어 주택청약 통장을 해지해버리는 사람이었다. 결혼 전 직장생활을 4년쯤 했음에도 불구하고 통장 잔고는 1년 일한 남동생보다 적었다. 남편을 만나 나는 충동적인 소비 습관을 절제하는 법을 배운다. 주변 사람의 말에 휩쓸려 쉽게 지갑을 열었던 나의 단순한 휴리스틱은 ‘이 소비가 진정 나에게 필요한 것인가.’를 생각하는 논리성을 장착하게 됐다.
돈을 잘 벌고 잘 쓸 자신이 있는 나는 돈을 잘 모으고 잘 유지하는 일에 둘째가라면 서러울 남편을 만났다. 그리하여, 우리 부부의 목표는 같다.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
안녕하세요, 그여자입니다. ‘그남자’로 활동하는 남편과 연애와 결혼, 부부생활을 주제로 매주 글을 씁니다. 이 글을 읽는 아내들이 행복했으면 합니다. 남편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확인해주세요.
- 그남자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