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달라진 기념일 보내기 : 아내의 이야기
챙겨야 할 기념일이 많아지는 동시에 제대로 챙기는 기념일이 없어진다는 점은 유부 남녀라면 누구나 끄덕일만한 결혼 후 소소한 변화 중 하나다. 연애할 때 깨알같이 챙기던 100일 단위의 기념일들과 포틴(fourteen, 14일) 기념일은 양가 부모님의 생신이나 명절 등 굵직한 행사에 언제인지 모르게 지나가게 된다. 그나마 서로의 생일과 결혼기념일 정도가 보통의 부부들이 챙기는 공식 기념일이지 싶다. 신혼 초에는 이런 변화가 나를 꽤나 섭섭하게 했다. 특히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같은 로맨틱한 포티 기념일이 얼렁뚱땅 넘어가버리는 것이 아쉬웠는데 이유는 "앞으로의 내 인생에 설렘은 더 이상 없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원래도 우리 커플은 기념일마다 여행을 간다거나 값비싼 선물을 주고받는다거나 하는 요란스러움은 없는 편이었다. 둘 다 글을 쓰는 걸 좋아했던 터라 기념일이면 편지를 주고받았고 좋아하는 식당에 가서 맛있는 밥을 먹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결혼을 하니 뭐랄까 이런 소소한 기념일 세리머니도 남사스럽게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던 중 결혼한 친구들이 모인 단톡방에 한 친구가 화두를 던졌다. "너희는 남편 밸런타인데이 챙겨주니?" 나만 가진 고민이 아니었구나 싶었다. 나를 포함한 친구들은 잠깐의 의견 조율 끝에, "(마음이 크게 내키진 않지만) 간단하게라도 챙겨주는 게 낫겠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얼마 전 SNS 피드에서 봤던 유명한 케이크 전문점의 밸런타인 에디션 컵케이크가 생각났다. 남편에게 밸런타인데이를 되찾아주고 싶은 마음 반, 컵케이크를 먹고 싶은 마음 반에 올해는 밸런타인 에디션 컵케이크를 선물하기로 했다.
올해 소소하게나마 기념일을 챙겨주고 나니 앞으로 계속 챙기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번 기회에 우리 부부에게 기념일을 되찾아주기로 했다. 일명 <부부 기념일 되살리기> 프로젝트. 일단 남편은 내 결정에 잘 따라와 줄 것이라 믿고 지극히 주관적으로 기념일과 안 기념일을 구분하고 기념일을 위한 부부 지침을 적어봤다.
[프로젝트 명] 부부 기념일 되살리기
[목적] 잊혀가는 기념일을 재정립하고, 부부간 행동 가이드를 정함
[기념일의 재정립] 올해부터 우리 부부가 챙기는 기념일은 둘의 생일(2), 밸런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2), 로즈데이(1), 결혼기념일(1), 크리스마스(1)로 총 7번의 날이다. 연애를 시작한 날을 기준으로 한 기념일은 굳이 챙기지 않기로 한다. 결혼기념일과 크리스마스는 양쪽이 같이 챙기는 기념일로 한다. 남편의 생일과 밸런타인데이는 아내가 남편을 위해 챙기고, 아내의 생일과 화이트데이, 로즈데이는 남편이 아내를 위해 챙긴다. 남편이 아내를 위해 챙겨야 하는 기념일이 하나 더 많은 이유는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다.
[부부 행동 지침] 같이 챙겨야 하는 기념일엔 꼭 1끼 이상의 맛있는 식사를 함께 한다. 한쪽이 다른 한쪽을 챙겨야 하는 기념일에는 5줄 이상의 카드와 기념일에 성격에 맞는 선물을 준비한다. 생일을 제외한 다른 기념일의 선물은 양쪽의 부담을 덜고자 5만원 이하로 한다.
보통의 연인이라면 둘 사이 적당한 긴장감, 헤어지고 집에 돌아오는 길 느껴지는 여운, 떨어져 있을 때의 보고 싶고 아쉬운 감정들은 모두 느껴봤을 것이다. 부부가 되면 이런 연애 상태일 때의 불편하면서도 달큰한 감정들은 서서히 사라진다. 돌이켜보면 나는 남편과 연애할 때 이런 아슬아슬한 마음들을 많이 힘들어했던 것 같다. 그냥 얼른, 지겹도록 불편한 사이가 되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편하고 안정적인 관계가 됐음 했다. 그런 내 간절한 소원이 이뤄져 지금 그남자와 부부가 된 지금에서야 다시금 연애시절을 그리워하는 건 어떤 마음일까.
정현주 작가의 「그래도, 사랑」에는 이런 유명한 구절이 있다.
깊어져요, 우리.
시간과 함께 낡아지지 말고.
우리의 사랑도 그렇게 될 수 있도록 기억하기로 해요.
오래 시간을 함께한다는 것의 가치를. 그 힘을.
기념일을 되살리고자 하는 나의 노력은 우리 부부가 낡아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안정적이고 편한 것도 좋지만 1년에 7번씩 기념일을 챙기면서 서로에 대한 마음이 얼마나 깊어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남편, 화이트 데이가 얼마 남지 않았소. 나는 사탕보다 초콜릿을 좋아한다오.
안녕하세요, 그여자입니다. ‘그남자’로 활동하는 남편과 연애와 결혼, 부부생활을 주제로 매주 글을 씁니다. 이 글을 읽는 아내들이 행복했으면 합니다. 남편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확인해주세요.
- 그남자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