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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여자 Apr 11. 2021

감정 기복과 불안에 대하여

나를 감당할 수 있겠어? : 아내의 이야기

감정 충실파 vs 감정 절제파

스무 살이 되고부터 매년 적어왔던 내 다이어리엔 공통점이 있다. 1월 1일이면 새해 다짐을 적곤 했는데 빠짐없이 들어가는 한 줄. <마음을 중간으로 걷게 하기>가 그것이다. 내가 남들보다 감정의 폭이 크고 예민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이따금씩 많이 우울해지고 크게 기뻐하는 것이 내가 감정의 절제를 하지 못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런 나의 모습을 인정해주지 않았고 질책하고 바꾸고 싶어 했다.


반면, 남편은 감정이 일정한 사람이다. 분명 성격은 섬세하고 예민한 편인데, 어렸을 때부터 "남자는 이래야 해."라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그런가. 어렸을 때도 부모님께 화를 내거나 누구와 싸워본 일이 없다고 한다. 그는 감정을 드러내는 것보다는 절제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리 친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속 이야기도 잘 털어놓지 않는다.


이효리의 인터뷰에서 "남편 이상순은 감정 기복이 없는 반면 자신은 감정 기복이 큰 편이다. 내가 위아래로 왔다 갔다 기복을 겪게 되면 늘 같은 자리에 있어주는 남편과 어느 시점에서든 만나게 된다."라고 말한다. 내가 남편과 결혼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감정과 너무 비슷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와서 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나를 감당할 수 있겠어?

처음부터 남편과의 관계가 편안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감정이 들쑥날쑥한 것이 나의 부족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모습을 남편에게 최대한 보여주지 않으려 무진장 애를 썼다. 내 감정의 폭이 10이라면 남편에게 보여준 건 1 정도에 불과했던 것 같다. 나머지 9는 친한 친구들 몇몇과, 그리고도 털어내지 못했던 감정들은 온전히 나 혼자 끌어안아야 하는 부분이었다. 남편을 만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 왠지 모를 불안감에 왈칵 눈물이 쏟아지는 날이 몇 번 반복됐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교차했다. 이런 나의 미성숙하고 불완전한 부분을 남편에게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무서웠다. 벌거숭이 내 마음을 들키기 싫었다. 하지만 이대로는 이 관계가 지속되기 힘들겠다 생각이 들었고, 남편에게 불안함과 나의 어려운 감정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아직도 많이 고마운 건 이런 진솔한 얘기들을 꺼냈을 당시 묵묵하게 내 말을 경청해준 것,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충분히 괜찮고 좋은 사람으로 받아들여준 것이다. 별것 아닌 일에 화를 내거나 울음을 터뜨리는 나를 그만큼 웃음도 많고 즐거운 사람이니 괜찮다고 말해줬다. 그렇게 남편은 나조차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나의 모습을 묵묵히 수용해줬다. 안정적인 남편의 옆에서 나의 널뛰는 감정들이 차츰 안정을 찾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3년전 우울했던 어느 날, 남편이 적어 준 편지






늘 같은 자리에 있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감정이 일정한 남편을 만나 좋은 점도 있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 좋은 점 : 불안할 때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진정이 되고 심적 안정감을 준다.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화를 내더라도 묵묵하게 받아준다.
- 아쉬운 점 : 평소 감정 표현이 서투른 편이고 갈등 상황이 생기면 도망쳐버린다.
                  내가 느끼는 감정에 100% 공감을 해주지 못할 때가 있다.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을 적어보고 나니 이래서 남편에게 끌렸고, 또 이래서 남편과 많이 다퉜구나 싶다. 그는 힘든 일이 있더라도 좀처럼 자신의 입으로 얘기하지 않는다. 예민한 나는 금세 남편의 감정을 캐치하나, 무엇 때문에 힘든지 말하지 않으니 참으로 답답하다. 여기서 나는 꼬치꼬치 왜 그런지 묻다가 다툼이 생긴 적이 많다. 또, 지나친 감정 절제를 실천하려는 남편은 갈등 상황 회피성향이 매우 강하다. 자신이 화가 날 것 같으면 바로 피해버린다. 나는 화를 조금 내더라도 빨리 갈등 상황을 정리해버리고 싶어 하기 때문에 여기서 우린 또 부딪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을 만나게 되어 정말 감사하고,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나이는 들었지만 미처 여물지 못한 나의 서툰 감정과 불안함은 남편을 만나 비로소 성숙해지고 안정감을 얻는다. 든든한 <키다리 아저씨>를 만난 <주디>처럼, 같은 자리에 늘 있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불안을 극복하는 원동력이다.


고맙소 남편!




안녕하세요, 그여자입니다. ‘그남자’로 활동하는 남편과 연애와 결혼, 부부생활을 주제로 매주 글을 씁니다. 이 글을 읽는 아내들이 행복했으면 합니다. 남편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확인해주세요.


- 그남자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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