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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ya Feb 24. 2022

마지막에 부른 내 이름을 따라 부른다

Where you at, 그녀 목소리

친구를 만나러 약속 장소를  가다 결국 핸드폰을 꺼내 지도앱을 누른다. 낯선 곳을 갈 때마다 느끼지만 난 정말 길치다! 짜증 난다! 화가 난다! 핸드폰 덕에 길 찾는 게 쉬워지기 전에는 약속 장소를 가다가 짜증 나서 집으로 돌아간 적도 있다. 다들 분주하게 지나가는, 사람들이 휙휙 지나가는 번화가에서 나 혼자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역시 오른쪽이 맞네!’ 원래 알았다는 듯이 위치를 확인하고 갈 길을 마저 가려는데 옆에 있던 휴대폰 가게에서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니 목소리를 잊고 싶지 않아서 마지막에 부른 내 이름을 따라 부른다’ 매우 정확하게 그 부분만 들렸다. 나중에 노래를 찾아보니 꽤나 시끄러운 댄스곡이었는데, 왜 노래가 끝나가는 후반부 그 부분만 귀에 박힌 건지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발걸음을 재촉하면서도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니 목소리를 잊고 싶지 않아서 마지막에 부른 내 이름을 따라 부른다’


어느 순간인가부터 엄마 목소리가 귀에서 잊혀지고 흔하디 흔했던 날 부르던 목소리조차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걸 인지하고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특유의 날 부르던 목소리, 말투, 억양이 생각나지 않아서 몇 번이고 나를 부르던 이름을 따라 불러봤다. 그래도 느껴지지 않는다. 엄마가 기분 좋을 때 날 부르던 ‘공주야’도 해보고, ‘막내야’, ‘막냉이’ 다양했던 억양을 생각해내려 애쓰며 따라 불러 봤다. 모르겠다. 다정했고, 화나 있고, 다급했던, 셀 수도 없이 시도 때도 없이 들리던 날 부르던 목소리. 때론 귀찮았고 지겨웠고 답답하게도 했던 날 부르던 목소리가 이젠 기억조차 안 나고, 나에겐 대답할 기회도 없다.

‘엄마’라고 부를 일이 없어 일부러 가끔은 집에 들어오며 찾아 불러보기도 했다. 혹시나 내가 부르면 답하던 목소리가 기억날까 싶었지만 역시나 헛수고였다. 십 년이 지났어, 5년이 지났어! 한두 해 지났을까 싶은데 이미 들리지 않았고 기억나지 않았다.

최대한 기억을 짜내고 날 부르던 목소리를 뭐라도 느껴보고 싶어서, 마지막 모습부터 기억을 거슬러 헤집고 가봤다. 가장 최근이면서 마지막으로 날 불렀던 목소리가 언제였던가 기억해 내려 애썼다. 일방적인 내 외침이 아닌, 내가 엄마와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눴던 게 언제 어디였던가.

그건 엄마가 하늘나라로 가기 이틀 전 새벽, 다른 환자들은 다 잠든 병원 침대였다. 나는 간이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고 있었다. 병원의 새벽은 나름 고요한 편이지만 보호자는 쉽사리 잠들기 쉽지 않다. 단순히 차가운 돌바닥 위 얇고 조그만 매트리스 때문만은 아닌 그 특유의 낯설고 적응되지 않는 적막과 슬픔과 고통이 밴 공기가 있다. 그날은 누군가의 보호자가 열심히 코를 골고 있었고 엄마는 아픈 신음 섞인 숨소리를 얕게 내고 있었다. 난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틀었다. 아직은 절망과 죽음이 다가오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노래를 속으로 따라 부르고 있었는데 조용하던 엄마가 뭔가 소리를 냈다. 급히 이어폰을 빼고 일어나 침대 옆에 서니, 엄마가 원망과 화가 난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내 이름을 몇 번이나 불렀는데 내가 들은 채도 안 하고 자고 있었다고 화를 냈다. 짜증과 원망이 섞인 날 부르던 목소리는 이어폰에 묻혀 나에게 닿지 않았던 것이다. 날 원망하던 엄마에게 속삭이듯 ‘왜 안 자고 일어났어, 다들 자니 조용히 해야 해, 쉿!’ 이렇게 말하고 앙상한 어깨를 쓰다듬어 줬다. 사실 난 속으로 엄마를 원망하고 있었다. 오빠나 아빠가 어쩌다 아주 어쩌다 보호자로 있을 때는 잘 잔다고 했는데, 왜 내가 보호자로 있을 때만 유난히 날 부르고 아프다고 칭얼대는지 차별하는 엄마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내가 편하니 그러겠지, 아프니 그렇겠지, 얼마나 힘들까 싶다가도 내가 제일 편하다지만 나만 만만하게 여겨 저러는가 싶은 마음이 들어왔다. 나도 오전엔 일하러 가야 하는데 나도 피곤하고 힘든데.
난 자꾸 말하고 싶어 하는 엄마를 굳이 달래며, 자야 한다고 속삭였다. ‘왜 그래?’ 귀찮아하는 내 말투를 눈치 못 챘을 리가 없다. 그런데도 엄마는 그날따라 애기처럼 계속 칭얼댔다. ‘무서워, 잠이 안 와, 자면 못 일어나, 죽을 까 봐 무서워, 아파서 잠이 안 와, 무서워’ 반복해서 중얼대는 엄마는 마약성분이 들어간 지독한 진통제를 맞고 있었지만 암세포가 장을 뚫고 있는 극심한 고통이 지속되고 있었다. 오래도록 물도 무엇도 삼킬 수도 없었기에 쉽게 앉지도 못했고 심지어 제대로 누워있을 수도 없었다. 평소의 엄마는 극심한 고통으로 뒤틀린 몸을 이리저리 말아가며, 고통이 너무 심하니 차라리 하늘나라로 가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그런 그녀가 그날은 어쩐 일인지 죽을까 무서워 눈을 감을 수가 없다고 했다. 횡설수설하는 엄마를 보며, 진통제가 너무 세서 취해서 저런가 싶었기에 애써 달래며 재우려고 했다. ‘엄마 눈을 감아봐, 무서워도 한번 감아봐, 내가 옆에 있을게’ 엄마는 눈을 쉽사리 감지 못했다. 재우려는 나를 원망스럽게 쳐다봤다. ‘자, 그럼 내가 기도해줄게, 자 눈 감아봐, 한번 해봐’ 이러면서 앙상한 두 손을 맞잡게 하고 눈을 감으라 재촉 하자 그제야 겨우 불안한 눈을 감고 내가 기도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조용히 기도했다. ‘주님, 엄마 마음에 평안을 주세요, 눈을 감고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아프지 않게 하루를 시작하게 해 주세요, 제발 평안을 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눈을  뜨고 엄마를 보니, 이미 날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엄마는 어둠이 무서워서 잠시도 눈을 감을 수 없었던 거다. 한숨이 나오려 했지만 참고 말했다. '엄마, 아멘 해야지 아멘.’ 그제서야 엄마는 날 빤히 쳐다보며 아기처럼 ‘아 멘, 아 멘, 아멘’을 세 번이나 꿈뻑꿈뻑 말했다. 내가 알던 엄마의 목소리도 말투도 눈빛도 아니었다. 말갛고 투명한 느낌. 이제 막 말을 배우는 아가가 채근하는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듯이 말해내던 나의 엄마인 그녀의 ‘아 멘, 아 멘, 아 멘’ 그 목소리만 귓가에 어렴풋이 들린다.
차라리 그 새벽 잠 못 드는 엄마를 붙잡고 대화가 되지 않아도 밤새도록 도란도란 얘기 나눠주는 다정한 '막냉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난 엄마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을까? 애써 기억해 내려 애쓰지 않아도 날 부르던 목소리가 느껴질까? 그 수많았던 늦잠 자는 날 깨우던 화가 가득했던 ‘문딩이자식’ 이라도 듣고 싶다.

오늘도 날 부르던 다정한 그녀의 목소리를 애써 기억해 보려 한다.
‘네 목소리를 잊고 싶지 않아서 마지막에 부른 내 이름을 따라 부른다’ (Song by Nuest ‘Where you at')


오늘의 당부: 부모님의 일상을 많이, 최대한 자주 동영상으로 찍어 놓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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