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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기자 Oct 24. 2021

부암동에는 집집마다 지하실이 있다

기생충의 그 지하실?

 우리 빌라에는 집집마다 지하실이 있다. 그러고 보면 부암동, 구기동, 신영동, 평창동 집을 보러 가면 집마다 지하실이 하나씩 있었다. 지하실 크기도 제법 커서 아파트 알파룸 두 세배 규모로 짐도 넣을 수 있고 서재나 공부방으로 쓰는 집도 있었다.     


 우리 빌라를 분양할 당시부터 살았던 어르신의 말에 따르면 80년대 후반 부암동, 구기동, 평창동에는 ‘중앙하이츠’, ‘현대’ 등등의 이름을 달고 빨간 벽돌의 빌라들이 많이 지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그때 만들어진 빌라에는 지하실을 대다수 만들었다고 한다. 그 당시 만들어진 고급빌라에서는 지하실을 운전기사 대기실로 썼다고 한다. 90대에 들어서는 일부 집들은 싱크대를 넣고 화장실을 만들어 상명대학교 대학생 자취방으로도 내주고, 전세로 집을 내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우리 집 지하실에도 주방으로 썼을 싱크대와 볼일만 해결할 수 있는 작은 화장실이 있었다. 이후에는 대다수 창고로 쓰면서 집을 두거나 다용도 공간으로 쓴다고 한다.    


 단독주택에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지하실이 있다. 다용도 공간으로 쓰기도 하고, 바를 만들거나 당구대를 놓아 사람을 불러 파티를 하는 집들도 봤다. 어느 집이나 지하실은 유용했다. 특히 창작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미술 재표나 작품을 보관할 수도 있어 요긴했다. 물건을 판매하거나 재료를 저장해야 하는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도 지하실은 중요했다. 지하실을 보고 집을 결정했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때로는 페인트칠을 하고 공간을 인테리어 해서 책을 읽거나 공부방으로 쓰는 집도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집들도 쓰지 않는 아이 물품이나 미리 산 용품들을 임시적으로 두기에 좋았다.


하늘이 맑은 어느 날, 부암동


 어느 날 나는 궁금해졌다. 도대체 지하실이 왜 있는 걸까. 청와대 근처라 전쟁이 나면 제일 먼저 공격을 받는 공간이지도 않는가. '방공호처럼 전쟁이 났을 때 대피하는 곳 아니야?'라는 나름의 합리적인 의심을 했다. 영화 기생충을 보고는 그 의심은 더 구체적으로 변했다. 그래, 이건 분단의 아픔이 드러나는 공간이야. 종종 남편에게 생생한 눈빛으로 그런 이야기를 늘어놓고는 했다. 아니, 김신조도 이 동네로 내려왔잖아. 그때 법으로 지하실을 반드시 만들라고 하지 않았을까. 별소리를 다 하며...


 그런데 알고 보니 지하실이 있었던 이유는 산을 따라 집을 지었기 때문이다. 언덕길에 건물을 짓다 보니 기울기가 있는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지하 공간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종로구청 건축과에서 친절하게도 알려줬다. 나의 어설픈 추측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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