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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기자 Oct 24. 2021

부암동에 살아서 글을 씁니다

에필로그

 누군가 나한테 왜 글을 쓰냐고 물어보면, 부암동에 살아서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부암동에 살면 없던 창작 능력도 생기는 걸까. 물론 그건 아니다. 다름없는 일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없던 창작 능력을 만들어서라도 글을 쓰게 하는 이 동네에 힘은 무엇일까.


 부암동은 부동산에서 소위 ‘핫’하다고 하는 역세권이나 상권, 교육 등의 인프라 갖춰진 동네와는 거리가 멀다. 도심 속에 시골이라고 불리는 부암동은 청와대와 인접하기 때문에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있다. 편의점은 있지만, 쇼핑몰이나 마트는커녕 식료품 가게도 없고, 학원도 몇 개 없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이후에는 대다수 식당에서 배달이 되지만, 불과 2년 전만 해도 치킨, 피자, 자장면 외에는 배달도 잘 되지 않는 촌구석 같은 동네였다.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이다 보니 높은 건물이 없고, 곳곳에 자연이 있는 모습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다. 음식을 하다가 재료가 떨어져 뭐 하나 사려고 하면 언덕길을 내려가거나 산을 넘어야 한다. 그렇게 갔다고 해도 작은 가게에 그 재료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다못해 아이 친구 집에 놀러 가려고 해도 놀이터를 가려고 해도 산 하나는 넘어야 한다. 키즈카페? 그런 건 상상할 수도 없다.     


목인원에서 내려다본 부암동 풍경


 대신, 이런 것들은 있다. 새소리에 잠을 깰 수 있고 계절을 액자 삼아 풍경을 즐길 수 있다. 매일 걸어도 지겹지 않은 산책길이 있으며 1 급수 물이 흐르는 계곡이 있다. 골목마다 역사가 겹겹이 쌓여있어 이야기가 담겨 있고, 제각각 다르게 생긴 집들을 구경할 수 있다. 몇 걸음 걸으면 갤러리나 박물관이 있고, 한 집 건너면 무엇인가를 창작하는 작가나 예술가를 만날 수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간격이 있고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여유가 있다. 자주 가는 세탁소는 아이에게 용돈을 하라며 돈을 주기도 하고, 자주 가는 편의점에서는 돈을 안 받고 아이에게 과자를 주는 여유도 있다. 가끔 이웃에 사는 연예인과 인사를 할 수도 있고, 드라마 촬영 현장을 자주 구경할 수 있다. 그리고 다양한 종류의 고양이와 강아지를 볼 수 있다.     


 대치동 근처에서 독립을 하고 살았던 나는 남편의 고집으로 부암동에 신혼집을 얻으며 자리를 잡았다. 금방 이 공간을 사랑하게 되었으나 아이를 낳고 몇 년간은 이곳이 만만하지 않았다. 특히 영유아 시기에 어린아이를 키우기에는 참 불편한 동네다. “내가 왜 이곳에 와서 이런 고생을 하고 있을까” 생각을 해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 시간 그렇게 몸부림치며 견뎌낸 결과 지금 이곳에서의 삶이 감사하다. 만약 내가 원래 선택하려고 한 역세권에 교육열이 높은 뉴타운의 아파트에 살았다면 지금과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있었을까. 잘 모르겠다. 지금처럼 온전하게 내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을지 확신이 없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지금과 같은 용기를 얻고 글을 쓸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종종 한다.     


 생긴 데로 살아도 괜찮다는 걸 알게 해 준 동네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가장 자연스러웠던 일,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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