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오공사 #12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많아서 하루가 꼬이고 도무지 풀리지 않으면 왜 이렇게 세상은 일방적일까에 대해 생각했다. 방향이 하나 뿐이란 건, 그 외에 길이 없다는 것. 일방적인 것으로 모두가 만족하기가 가능하겠냐고 물으면 내 대답은 no다.
기본적으로 일방적인 시간이 흐른다. 큰 산의 중턱에서 양 떼를 모는 양치기는 양이 어디로 갈지 계속 주의하면서 양을 몰아야겠지만, 양이 아닌 시간은 그냥 내버려 두기만 해도 그 길을 일정한 보폭으로 가고 있다. 가끔은 시간이 멈춰줬으면 하는 행복감에서도, 이 시간이 빠르게 지나쳐줬으면 하는 무력감에서도 시간은 일방적으로 본인의 맡은 바를 다 하고 있다.
이에 질세라 나도 일방적으로 그 시간을 대한다. 무기력에 질 때면 무기력한 채로, 조금 늦잠을 자고 싶을 땐 알람을 부정하면서. 시간을 의인화한다면, 꾸준한 너와 변덕스러운 나의 이야기로 시트콤이 만들어질 것이다. 너는 늘 흔들림이 없고, 누구보다 정직하기에 내가 사는 삶을 비웃진 않을까? 가끔 스스로에게 지고 너를 낭비하는 나에게 질리진 않았을까? 네가 사람이면 난 분명 너에게 열등감을 느낄 것이다.
난 일방적으로 태어났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며 우리의 어머니들은 일방적으로 우리를 낳았다. 꿈을 꾸는 것도, 꿈을 이루는 일도 다 일방적이다. 가끔 텅 빈 밤하늘처럼 공허해질 때면, 캄캄한 모자람이 날 집어삼킨 날이면 달에게 소원을 빌었고, 이뤄지는 소원이 하나도 없던 21살 여름밤에 나는 생각했다. 달은 가족이 없는데, 가족의 의미를 모를 텐데, 가족의 건강을 소원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달에게 더 나은 내가 되게 해달라고 하면 달은 그 의미를 알까? 달은 늘 그 자리에서 돌고 도는데 더 나은 것에 의미를 알까? 생각해보면 내가 웅얼거린 소원은 나만 이해할 수 있는 것 투성이었다. 매번 달에게 내 바람은 이해할 수 없는 수학 공식, 혹은 그 공식을 저마다의 숫자 값으로 대입해놓은 문제는 아녔을까? 나는 또 한 번 일방적이었다.
웃기지만 우리가 쌍방이라고 생각했던 사랑도 어쩌면 일방적이었다. 일방적인 태도의 속내는 늘 이기적이었다. 예를 들면 나는 네가 행복하길 바랬다. 웃는 널 볼 때 결국 내가 행복해서. 결국 나는 나를 위해 널 사랑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좋아하는 영화 장르가 다를 때, 고민 끝에 네가 좋아하는 영화를 선택한 건 너를 위한 게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로맨스를 보는 것보다, 네가 코미디를 보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나에게 더 큰 기쁨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널 아끼는 모든 일은 날 위한 일이다.
GIve and Take라는 말, 또는 아낌없는 배품도 다 파헤쳐보면 일방적이었다. 일방적인 삶이란 건, 어찌 보면 능동적이고 어찌 보면 수동적이다. 방향만 잘 정하면, 원하는 길에 닿을 수 있는 하이패스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혹은 알량한 고집으로 모든 걸 망칠지도 모른다. 또 일방적인 세상은 나를 쥐고 흔들 때도, 뜻밖의 행운을 가지고 올 때도 있을 것이다. 나는 계속 무한대 기호를 그리며 일방적인 삶을 영유한다. 나만이 종착할 수 있는 마지막까지도 삶은 일방적일 것이다.